미국 시카고에 사는 제임스 밀러(55)는 최근 한국을 방문해 서울을 관광한 뒤 가족들과 강원도 속초로 향했다. 설악산국립공원을 오르기 위해서다. 그는 “서울 외에 갈 곳을 찾다가 설악산이 아름답고, 오르기도 어렵지 않다는 말을 듣고 방문하게 됐다”며 “산행을 마치고 맛있는 한국 음식도 먹으면서 만족스러운 하루를 보냈다”고 말했다.
K-등산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국립공원을 찾는 외국인이 급증하고 있다. 국립공원공단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국립공원의 외국인 탐방객 수는 88만 5282명을 기록했다. 2년 전인 2022년(16만 5767명)보다 5배 이상 늘었다. 올해에도 9월까지 58만 2077명의 외국인이 국립공원을 방문했다. 국립공원공단 관계자는 “집계되지 않은 외국인들까지 감안하면 실제 탐방객 수는 더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
경주·설악산 가장 많이 방문
올해를 기준으로 외국인들이 가장 많은 방문한 국립공원은 32만 2482명을 기록한 경주국립공원이다. 김당우 경주국립공원사무소 탐방시설과장은 “불국사와 석굴암을 보고 경주에서 유명한 황리단길에 가는 코스는 외국에서도 소문이 많이 났다”며 “최근에는 APEC을 맞아 외국인 방문객들이 더 많아졌다”고 말했다.
‘한국의 요세미티’로 알려진 설악산국립공원이 11만 1164명으로 두 번째로 외국인 탐방객이 많았다. 이어 한라산국립공원(7만 1959명), 북한산국립공원(2만 9204명), 한려해상국립공원(1만 7517명) 순이었다.
외국인들이 국립공원을 많이 찾는 건 입장료가 무료로 바뀐 데다가, 탐방로가 잘 정비돼 있어 등산에 대한 부담도 크지 않다는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김밥 등 음식을 챙겨 도심형 국립공원인 북한산국립공원에 오르고, 내려와 막걸리를 마시는 건 서울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들의 필수 코스 중 하나다.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소셜미디어(SNS) 등 온라인을 통해 국립공원을 알게 돼 방문한 외국인들도 많다고 한다. 현병관 설악산국립공원사무소장은 “인스타그램 속 설악산의 아름다운 단풍 풍경을 보고 찾아왔거나, 챗GPT 같은 AI가 한국을 오면 가야 할 곳으로 설악산을 추천해줘 방문했다는 외국인들이 최근에 눈에 띄게 많아졌다”고 말했다.
━
손전등 없이 밤에 등산했다가 탈진해 구조
외국인 탐방객이 급증하면서 국립공원 내에서 각종 사건·사고도 잦아지고 있다. 특히, 지정된 탐방로를 벗어나 비법정탐방로를 다니거나 제대로 된 준비 없이 산행에 나섰다가 구조되는 경우가 있다.
지난 17일에도 러시아 관광객 5명이 야간 등산용 손전등 같은 산행 장비를 준비하지 않고 설악산 대청봉에 올랐다가 체력이 고갈돼 구조됐다. 올해 초에는 북한산국립공원 정상에서 외국인들이 무리를 지어 담배를 피우는 모습이 포착돼 논란이 되기도 했다.
설악산국립공원사무소는“구글이나 다른 포털 사이트에서 알려주는 길 중에는 법정 탐방로가 아닌 길도 있기 때문에 국립공원공단의 공식 탐방 가이드를 확인해야 한다”며 “가능하면 한국인 동반자를 데리고 등반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