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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 8명 시골학교의 반전…"홈스쿨링 아이들이 돌아왔어요" [이슈추적]

중앙일보

2025.10.26 13:00 2025.10.26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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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1일 오전 경남 합천의 쌍백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아이들이 자전거를 타며 '놀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안대훈 기자

“하나, 둘, 셋, 출발!”(선생님)
“간다아아아~.”(아이들)
지난 21일 오전 경남 합천의 쌍백초등학교. 1·2교시 수업을 마친 뒤 30분간의 ‘놀이 시간’을 만끽하는 아이들로 학교 운동장엔 활기가 넘쳤다. 학년 구분 없이 삼삼오오 모여 흙 놀이를 하거나 정글짐에 올랐다. 파랑·분홍·하얀 헬멧을 쓴 아이들은 선생님 신호에 맞춰 자전거 경주를 벌였다. 네발자전거를 탄 1학년 막내는 2~6학년 형·누나들의 두발자전거를 앞서 나가며 해맑게 웃었다. 올해 들어 학생 수가 2배 넘게 늘어난 쌍백초 분위기다.

지난 21일 낮 12시쯤 경남 합천의 쌍백초등학교에서 수업을 마친 학생들이 점심 식사를 먹으려고 급식소로 달려 가고 있다. 안대훈 기자


‘폐교 위기’ 시골학교…전교생 2배↑ “활기 되찾아”

쌍백초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여느 시골 학교와 마찬가지로 폐교를 걱정했다. 지난 2월 6학년 3명이 졸업하면, 올해 학생 수는 두 자릿수(11명)에서 한 자릿수(8명)로 뚝 떨어질 처지였다. 지난해 2·3학년은 학생이 없어 빈 학급이었다. 한 명 있던 3학년 학생이 전학 가면서 새로 발령 온 3학년 담임은 갑자기 맡을 반이 사라졌다. 전체 5학급(특수학급 포함)으로 학급 수가 적어 교감도 없었다. 2032년 개교 100주년을 맞기도 전에 “학교가 통폐합되거나 없어질 판”이란 우려가 있었다.

이랬던 쌍백초에 지난 3월 ‘대반전’이 일어났다. 무려 9명의 새 학생이 학교를 찾은 것이다. 전교생이 8명에서 17명으로 훌쩍 늘었다. 덕분에 모든 학년에 반이 생겼다. 교감이 부임했고, 보건교사까지 배치됐다. 최근엔 타 지역에서 1명 더 전학 왔다. 학교는 기존 교무실을 방과 후 수업 공간으로 바꾸는 등 아이들을 위한 공간으로 학교를 재배치했다.

윤점규(56) 쌍백초 교장은 “함께 뛰어놀 친구, 형·누나, 언니·오빠, 동생이 많아지니 아이들 얼굴이 확 밝아졌다. 여럿이 함께하니 공부든 놀이든 아이들이 하고자 하는 의욕이 커졌다”고 했다.

지난 7월 경남 합천의 쌍백초등학교 학생들이 학교 텃밭에 직접 기른 감자를 수확해 들고 있다. 학교에선 생태환경교육의 일환으로 학교텃밭가꾸기 활동을 진행 중이다. 사진 합천 쌍백초


‘홈스쿨링 아이들’ 학교로 데려와

올해 쌍백초의 학생 수 증가는 ‘홈스쿨링(재택 교육)’ 가정의 아이들을 학교로 돌아오게 한 사례여서 더욱 주목받았다. 존폐 위기를 겪는 시골 학교 간에 기존 학생을 뺏고 뺏기는 ‘제로섬’이 아닌, 학교 밖 아이들에 집중한 결과여서다. 실제 경남교육청은 지난 14일 “홈스쿨링 학생들이 공교육 안에서 배움의 자리를 찾을 수 있도록 이끌고 학부모의 신뢰를 회복함으로써 교육 본연의 역할을 되살렸다”며 적극 행정 최우수 사례로 선정했다.

홈스쿨링 아이들의 학교 복귀 만족도도 높았다. 쌍백초 4학년 이선교 군은 “학교에 오면 하루가 금방 가는 것 같아요”라며 “자전거 타는 것도 배우고, 학교 텃밭에서 내 손으로 고추·가지·방울토마토도 키웠어요. 방과 후 시간에 영어·악기·컴퓨터도 다양하게 배울 수 있어 좋아요”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제일 기억에 남는 건 1학기에 1박 2일로 학교에서 갔던 독서 캠프였어요. 동생들·형들·선생님들과 함께 책 읽고 놀고 저녁에 잠도 잤는데, 다시 가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경남 합천의 쌍백초등학교에 학생들이 텃밭에서 직접 키운 채소를 나누고 있는 모습을 촬영한 기념 사진이 걸려 있다. 학교에선 생태환경교육의 일환으로 학교텃밭가꾸기 활동을 진행 중이다. 안대훈 기자
경남 합천의 쌍백초등학교 텃밭에서 학생들이 직접 키운 배추 등이 자라고 있다. 안대훈 기자


“학부모 생각 존중하며 끊임없이 설득”

이런 결과를 낳기까지 현 윤점규 교장의 노력이 컸다고 한다. 교육 당국에 따르면 지난해 9월 쌍백초에 온 윤점규 교장은 부임하자마자 홈스쿨링 가정을 자주 방문하며 학부모 설득에 나섰다. 윤 교장은 앞서 합천교육지원청에 장학사로 근무할 때부터 당시 김갑진 교육장과 함께 홈스쿨링 학생의 학교 복귀를 위해 발품을 팔았다. 하지만 당시 학부모들의 공교육 불신이 커 설득하기 쉽지 않았다.

윤 교장은 이들 학부모의 교육 방식 등을 존중하며 학교 교육 방침과의 절충점 찾으려 노력했다. 오전에 학부모가 원하는 교육을 홈스쿨링 학생들이 받을 수 있게 등교 시간을 조정(9시→10시 30분)해준 게 대표적이다. 또 기존 학생들과 병행해 원활한 등교가 이뤄질 수 있게 교육지원청 지원을 받아 통학 버스를 1대 더 지원받았다. 또 학생의 학습 수준·성향을 고려한 맞춤형 학습 지원 방안, 또래 관계 형성 등 구체적인 지원책도 제시했다.

이 과정에서 윤 교장은 “대도시와 달리 한 반에 학생이 서너명이어서 아이들을 세심하게 살필 수 있다. 공간만 학교로 바뀔 뿐이지, 사실상 이만한 홈스쿨링이 어디 있습니까”라며 “넓은 운동장과 균형 잡힌 식단 그리고 원어민 강의 등 다양한 교육도 받을 수 있다. 같이 아이들을 키우자”는 취지로 조심스레 설득했다.

지난 17일 경남 합천의 쌍백초등학교에서 열린 '학부모 초청 공개수업' 이후 윤점규 교장(사진 가운데) 학부모들과 대화하고 있다. 사진 합천 쌍백초


학부모도 학교로…“이젠 부모들이 학교 홍보 나서”

윤 교장은 학부모와 학교에 ‘학부모 사랑방’도 만들었다. 학부모들이 학교를 별도의 공간으로 구분 짓지 않고, 언제든 편하게 찾아올 장소로 바꾸기 위한 노력이었다. 학교와 장벽이 사라지면서 학부모들은 급식 모니터링, 학교 행사 등 학교 일에 적극 참여 중이다.

또 윤 교장이 교사 시절 탁구부 감독을 맡았던 경험을 살려 ‘학부모 탁구 동아리’의 ‘탁구 스승’으로 나서며 학부모들과 관계도 돈독해졌다. 윤 교장은 “이젠 학부모들이 학생 수를 늘리려고 만나는 사람마다 ‘아이들 없냐’고 묻는 등 홍보대사 역할을 한다”며 미소를 지었다.
경남 합천의 쌍백초등학교 체육관에서 윤점규 교장(사진 가운데)이 학부모들에게 탁구를 가르치고 있다. 사진 합천 쌍백초



안대훈([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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