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한국에서 열리는 미ㆍ중 정상회담에서 ‘무역 전쟁 휴전’ 선언이 나올 공산이 커졌다. 양국이 지난 25~26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가진 5차 고위급 무역 회담에서 상당한 의견 접근을 보면서다. 중국은 희토류 수출 통제 조치를 일정 기간 유예하고 미국은 내달 1일부터 중국에 부과하겠다고 한 100% 추가 관세를 철회하는 데 잠정 합의를 봤다고 한다.
미ㆍ중 고위급 무역 회담에서 미 정부 대표단을 이끈 스콧 베센트 재무부 장관은 26일(현지시간) 미 NBC 인터뷰에서 “중국이 (미국과) 무역 협정을 체결할 준비가 돼 있다고 보느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말할 수 있다. 미ㆍ중은 30일 한국에서 양국 정상들이 논의할 수 있는 틀(프레임워크)을 마련했다”고 답했다. 이어 “미국이 중국에 100% 추가 관세를 부과하지 않을 것으로 보느냐”는 물음에 “(추가 관세 부과를) 예상하지 않는다. 또 우리는 중국이 논의했던 희토류 수출 통제에 대해 일종의 유예 조치를 얻어낼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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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정상회담 훌륭한 만남 될 것”
베센트 장관은 “최종 조건은 양 정상 간 회담에 달려 있다”는 얘기를 덧붙였지만 발언 전반은 청신호에 가까웠다. 베센트 장관은 ABC 인터뷰에서도 “(쿠알라룸푸르에서) 지난 이틀간 마련된 실질적인 틀을 바탕으로 이번 양국 정상회담은 매우 훌륭한 만남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며 “중국이 위협한 희토류 수출 허가 제도를 1년간 유예하고 재검토하기로 한 것으로 안다”고 했다.
또 당초 11월 10일 만료 예정인 양국 간 초고율 상호 관세 유예를 연장하기 위한 논의를 그 전에 가질 예정이었지만 이제 그 회의가 필요하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미국과 중국은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무역 분쟁 국면에서 각각 145%, 125%까지 치솟던 상대방에 대한 관세를 지난 5월 협상을 거쳐 115%포인트씩 90일간 낮추기로 했고, 지난 8월 이를 다시 90일간 연장하기로 합의했다. 합의 효력 만료일인 11월 10일 이전에 양국 정부가 재연장 여부를 논의할 계획이었는데, 베센트 장관 발언은 쿠알라룸푸르 협상에서 재연장에 잠정적으로 합의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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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세폭탄 유예 만료일 논의도 불필요”
중국 관영 신화통신도 26일 “양국은 미국의 중국 해사ㆍ물류ㆍ조선업에 대한 (무역법) 301조 조치와 상호 관세 중단 기간 연장, 펜타닐(일명 ‘좀비 마약’) 관세와 법 집행 협력, 농산물 무역, 수출 통제 등 양국이 함께 관심을 가진 중요 경제ㆍ무역 문제에 관해 솔직하고 심도있으며 건설성이 풍부한 교류ㆍ협상을 했다”며 “각자의 우려를 해결하는 계획에 관해 기본적 합의를 이뤘다”고 보도했다.
베센트 장관,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무역대표부(USTR) 대표가 이끄는 미국 정부 대표단과 허리펑 국무원 부총리, 리청강 상무부 부부장 겸 국제무역담판 대표가 이끄는 중국 정부 대표단은 지난 25일부터 이틀간 양국 간 경제ㆍ무역 전반의 쟁점을 논의했다. 미국은 중국에 ▶희토류 수출 제한 완화 ▶펜타닐 제조 및 유통 단속의 실질적 강화 ▶미국산 대두 수입 재개 등을 요구하고, 중국은 미국에 ▶초고율 관세 철회 ▶첨단 기술 및 핵심 소프트웨어 수출 통제 완화 ▶‘하나의 중국’ 원칙 재확인 등을 요구한 것으로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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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 미국산 대두 수입 금지 풀 듯
중국의 미국산 대두 수입과 관련해 베센트 장관은 CBS 인터뷰에서 “세부 사항을 언급하진 않겠지만 올해와 향후 몇 년간 미국의 (대두 재배) 농가들은 이번 협정에 매우 만족하게 될 거라고 말씀드릴 수 있다”고 했다. 중국이 미국산 대두 수입 금지 해제에 동의했다는 뜻으로 읽힌다.
최종 결단은 30일로 예정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정상회담에서 내려지겠지만, 양국 정부의 잇따른 유화적 메시지를 감안하면 상당한 수준의 합의안이 나올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4일 아시아 순방을 위해 탑승한 대통령 전용기에서 가진 기자 간담회에서 미ㆍ중 무역 협상 타결 가능성과 관련해 “중국이 양보해야 하고, 우리도 그럴 거라고 본다”고 했었다.
양국이 파국을 피하는 쪽으로 잠정 합의의 틀을 마련한 것은 100% 추가 관세(미국)와 희토류 수출 통제(중국) 등 초강수를 실제 단행할 경우 닥칠 수 있는 부담이 매우 크고 현실적으로 지속 가능하지도 않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말레이시아 방문 이후 일본에서 2박 3일을 보낸 뒤 29일 한국을 국빈 방문하며, 시 주석은 30일 경주 아시아태평양정상회의(APEC) 참석 차 한국을 국빈 방문한다. 두 정상이 30일 한국에서 대좌하면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첫 정상회담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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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숨 돌린 미, 한국에 압박수위 높일까
미ㆍ중 간 무역 분쟁이 정상회담을 목전에 두고 빠른 속도로 해소 국면으로 접어들면서 한ㆍ미 무역 협상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가 관심사다. 한ㆍ미 양국은 3500억 달러(약 500조 원) 규모 대미 투자 펀드의 구성과 집행 방안을 놓고 이견을 좁혀오긴 했지만, 양국을 모두 만족시키는 합의안 마련에는 이르지 못한 상태다. 미국이 최대 난제로 꼽히던 대중(對中) 협상의 큰 고비를 넘긴다면, 한국 정부에 대한 막판 압박 수위를 더욱 높일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재명 대통령은 26일 공개된 블룸버그 통신 인터뷰에서 “투자 방식, 투자 금액, 시간표, 우리가 어떻게 손실을 공유하고 배당을 나눌지 이 모든 게 여전히 쟁점”이라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24일 한국과의 무역 협상을 두고 “타결이 매우 임박해 있다”고 한 것과는 거리가 있는 상황 진단이다.
양국은 외환시장에 미치는 충격 등을 감안해 한국의 직접투자 금액을 2000억 달러 수준으로 좁히는 데는 공감대를 이뤘다고 한다. 다만 미국은 250억 달러를 8년에 걸쳐 분할 투자하는 방안을 요구한 반면 한국은 200억 달러 미만의 범위 내에서 10년 이상 장기 투자하는 안을 제시하며 대치 중인 상황이다. 투자 대상 결정 권한과 투자 수익 배분안을 놓고도 양국은 팽팽한 줄다리기를 이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