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가 관세 관련 세부 사항 협상을 타결한 다음 날인 30일 미국 측이 한국 정부 발표와 배치되는 주장을 했다. 협상 타결 뒤 또 양측 간 이견이 노출된 만큼 양해각서(MOU) 문안 확정까지도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부 장관은 이날 엑스(X·옛 트위터)에 “반도체 관세는 이번 합의의 일부가 아니다”라고 썼다. 또 “한국은 자기 시장을 100% 완전히 개방하는 데도 동의했다”고도 했다.
이는 전날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이 반도체 관세에 대해 “우리의 주된 경쟁국인 대만에 대비해서 불리하지 않은 수준의 관세를 적용받기로 했다”고 한 것과 다른 입장이다. 김 실장이 시장 개방과 관련해 “민감성이 높은 쌀, 소고기 등을 포함하여 농업 분야에서 추가 시장 개방을 철저히 방어했다”고 밝힌 것과도 반대되는 주장이다.
대통령실은 이날 한국 정부의 발표가 맞다고 강조했다. 김남준 대통령실 대변인은 “발표 내용은 양측의 합의를 바탕으로 한 것이고 관련 문서는 마무리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시장 개방과 관련해선 “한국 시장은 이미 모든 미국산 상품에 개방돼 있다. 이번 합의를 통해서 추가로 변경된 사항은 없다”고 했다. 정부는 현재 농축산물 시장의 99.7%가 미국에 개방됐다고 설명한다.
지난 7월 31일 한·미가 관세 합의를 한 직후에도 비슷한 상황이 있었다. 당시 김 실장은 “(대미 투자액 3500억 달러 중) 대부분이 대출과 보증”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한국은 미국이 소유하고 통제하는 투자에 3500억 달러를 제공할 것”이라며 사실상 전액 현금으로 직접 투자를 하는 것처럼 밝혔다. 투자 수익 배분과 관련해서도 러트닉 장관은 “수익 90%를 미국이 가져간다”고 했고, 김 실장은 “(미국이 가져간다는 90%는) 재투자 개념”이라고 했다.
정부는 미 측이 입장을 바꾼 것이라고 주장했고, 새로운 쟁점들로 인해 7월 초기 합의 뒤에도 세부 협상 타결까지 90일이 걸렸다.
김 실장이 전날 “통상과 관련된 MOU는 거의 문안이 다 마무리돼 있다”고 했지만, 최종 문안 확정까지는 시간이 소요될 것이란 전망도 그래서 나온다.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도 “미국과는 끊임 없이 협상해야 한다”며 “‘MOU 문안을 며칠 안에 마무리할 수 있다’고 단정할 순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특히 러트닉의 엑스 글과 전례에 비춰 반도체 관세와 관련해선 미국이 새로운 요구를 할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다.
이런 관문을 넘은 뒤에는 국내 절차가 남아있다. MOU 문안을 확정한 뒤 한국 정부는 3500억 달러 대미 투자 펀드 신설과 운영에 관한 특별법안을 국회에 제출하게 된다. 정부는 신속한 발의를 위해 의원발의 형태로 입법을 추진할 계획이다.
김 실장은 “(한·미 합의에) MOU를 이행하기 위해 법이 제정돼야 하고, 법이 국회를 통과해야 한다는 조항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는 미·일 관세 합의와는 다른 절차다. 미·일은 지난달 4일 관세 관련 MOU를 맺고, 16일 미국의 고시를 통해 바로 15%로 관세 인하가 시작됐다.
한·미는 관세 인하는 펀드 관련 특별법이 국회에 제출되는 달의 첫날로 소급해서 적용하기로 합의했다고 김 실장은 전했다. 한·미 정부는 MOU와 별도로 관세 협상 관련 팩트시트(설명자료)를 마련하고,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과 러트닉 장관이 공식 서명을 할 예정이다. 한국 정부는 이 자료를 토대로 국회에 한·미 합의 내용을 설명하고, 특별법 처리를 요청할 방침이다. 정부는 다음 달엔 특별법을 국회에 제출한다는 계획이다. 다만 MOU 문안 확정이 늦어지면 이런 작업도 연동돼 늦어질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