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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슨 황, 잡스와 달랐다…엔비디아 '5조 달러' 제국된 비결

중앙일보

2025.10.30 13:00 2025.10.30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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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영국 국빈 방문 중,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와 대화하다가 문득 고개를 돌려 말했다.

" “젠슨, 당신이 세상을 장악하고 있잖아, 난 당신이 여기서 뭘 하고 있는지 모르겠어. 다만 우리 둘 다 당신이 맞기를 바랄 뿐이지.” "

그 자리에 동석한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를 향해서였다. ‘인공지능(AI)의 록스타’에 이끌려 수조 원 규모 투자를 단행하고 공장을 세우는, 전 세계 경영자 및 AI 투자자들의 심정을 대변하는 말이었다.

 젠슨 황 엔비디아 CEO가 지난 9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영국 국빈 방문에 동행했다. AFP=연합뉴스
엔비디아가 지난 29일(현지시간) 세계 최초로 시가총액 5조 달러(약 7100조원)를 돌파했다. 이날 주가는 전일 대비 2.99% 오른 207.04달러로 마쳤고, 시총은 5조300억 달러에 이르렀다.



애플보다 빠르다

기술 생태계를 장악한 엔비디아의 압도적 지위, 창업자의 열광적 인기 등은 ‘모바일의 제왕’ 애플과 비견된다. 그러나 엔비디아는 애플이 달성한 주요 기록을 보다 빠르게 달성하고 있다.

애플 시총이 1조 달러(2018년 8월)에서 4조 달러(2025년 10월)가 되는 데에는 7년 2개월이 걸렸다. 엔비디아는 단 2년 1개월 만에 1조 달러→4조 달러가 됐고, 다시 5조 달러가 되는 데에는 단 110일이 걸렸다.
정근영 디자이너

이는 기술과 자본이 온통 엔비디아로 쏠린 현실을 반영한다. 29일 뉴욕타임스(NYT)는 하버드대 경제정책학 제이슨 퍼먼 교수를 인용해 “엔비디아의 칩으로 꽉 찬 데이터센터에 대한 지출이 올 상반기 미국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의 92%를 차지했고, 이게 없었다면 경제성장률은 0.1%에 그쳤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애플보다 깊다

기술 제국을 감싸는 건 생태계로 둘러싼 해자(moat, 방어용 인공 연못)다.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는 아이폰·맥북·아이패드 등 기기와 앱스토어로 이어지는 생태계를 구축했고, 후임자 팀 쿡 CEO는 이를 워치·이어팟 같은 웨어러블 기기와 아이클라우드 등 구독 서비스로 살찌웠다.

엔비디아는 해자를 더 깊게 파고 있다. 2007년 GPU를 쉽게 프로그래밍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 플랫폼 쿠다(CUDA)를 출시해 대학·연구소에 무상 배포해 AI 연구자를 여기에 길들였고, 2019년 멜라녹스 인수로 초고속 네트워킹 기술을 확보했다. 지난 2~3년 간은 옥토AI, 런AI 등 AI 모델이 GPU에서 잘 구동되게 하는 소프트웨어(SW) 스타트업을 왕성하게 인수해 SW 장벽도 높이 쌓았다.

이는 ‘훈련에서 추론으로’, ‘AI 추론 단계의 분리 처리’ 같은 AI 분야 흐름에 맞는 신제품을 엔비디아가 가장 먼저 내는 비결이기도 하다. AMD 등 GPU 경쟁사들이 기를 써서 따라가면 다시 저만치 앞서가는 ‘민첩한 진격의 거인’인 셈이다.

엔비디아는 올해 들어 인텔(반도체), 오픈AI(AI 서비스), 노키아(통신), 웨이브(자율주행), 팔란티어(AI 분석) 등 주요 주자와 투자 및 계약을 잇달아 체결했다.



잡스와는 다르다

‘괴팍하고 까다로운 천재’로 불렸던 스티브 잡스와 달리, 황 CEO는 사람의 마음을 잘 얻는 협상가로 알려져 있다. 29일 워싱턴포스트는 그를 “트럼프 대통령이 귀를 기울이게 만든, 예상 밖의 인물”이라고 평했다. 이민자를 받아들이고 중국 수출을 늘려야 한다는, 대통령과 정반대 주장을 공공연히 하면서도 대통령의 마음을 사로잡았다는 거다.
젠슨 황 CEO가 지난 4월 미국 백악관 트럼프 대통령 앞에서 대미 투자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UPI=연합뉴스

트럼프 2기 출범 직후 대통령은 엔비디아를 ‘독점 기업’으로 백안시했으나, 황 CEO가 직접 워싱턴과 소통에 뛰어들자 바뀌었다. 한 빅테크 업계 전직 임원은 중앙일보에 “황 CEO가 백악관에서 ‘미국 반도체 제조 부흥’을 엔비디아가 어떻게 주도할지 브리핑했고, 대통령이 크게 만족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라고 말했다.

직원을 잘 해고하지 않으며 설 명절 때는 중국·대만 지사를 방문하고, 두 자녀가 모두 엔비디아에 재직하는 것도 여타 미국 기업 방식과는 다르다. 특히 제품 마케팅을 맡은 딸은 주요 경영전략을 결정하는 그룹에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심서현([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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