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발생 3년이 지난 31일 밤, 서울 용산구 이태원엔 ‘불금’을 즐기는 인파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핼러윈을 맞아 영화나 만화 주인공처럼 차려입은 사람, 귀신이나 괴물 분장을 한 사람이 거리를 채우며 축제 분위기가 한창이었다. 식당과 클럽이 모여 있는 이태원 세계음식거리에선 약 25m 간격으로 경찰관과 용산구청 직원이 경광봉을 흔들며 인파를 향해 “멈추지 말고 계속 걸으라”고 안내했다.
3년 전 참사가 발생한 골목 인근은 이날도 ‘병목 현상’이 발생했다. 자동차 한 대가 지날 수 있을 정도 폭의 길 가운데엔 우측통행을 유도하는 임시 중앙분리대가 세워져 있었다. 길 양옆엔 식당에 들어가려는 대기 줄이 생겨 시민들이 보행할 공간이 비좁았다. 인파가 가다 서다를 반복하거나, 뒷사람 발걸음에 앞사람이 차이는 경우도 여럿 보였다.
이날 오후 8시30분쯤부터 이태원 거리는 본격적으로 붐비기 시작했다. 인파 상황을 알리는 도로 전광판 문구는 이때쯤 ‘보행 원활-Not Crowded(붐비지 않음)’에서 ‘보행 주의-Pedestrian Caution’으로 바뀌었다. 서울시 실시간 도시데이터에 따르면 이날 오후 10시 기준 이태원 관광특구엔 최대 2만6000명이 몰렸다.
인도에서 온 여행객 데이브아시쉬 자드(34)는“핼러윈 명소라는 이태원에 대해 검색하다가 여기서 참사가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며 “곳곳에 경찰이 많이 배치된 건 좋아 보인다”고 말했다. 대학생 김모(21)씨는 “지하철역부터 골목까지 경찰 통제가 많이 이뤄져서 비교적 질서가 유지되는 것 같다”며 “사람이 많이 가는 홍익대나 성수에도 이렇게 관리가 돼야 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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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11시부터 지하철 이태원역 무정차 통과
이날 오후 10시30분쯤 용산구청은 안전문자를 보내 “이태원역 주변 인파 운집으로 안전사고가 우려된다”며 “진입 자제 및 차량 우회 바란다”고 안내했다. 11시부터는 지하철의 이태원역 무정차 통과를 시행했다.
같은 시각 홍대엔 약 11만명의 인파가 몰리면서 혼잡 상황이 빚어졌다. 핼러윈 코스튬을 입은 사람들이 곳곳에서 사진을 찍기 위해 멈춰 서면서 일부 보행자와 부딪히는 경우가 종종 발생했다. 도로에서 차와 사람이 뒤엉키거나, 오토바이가 인파 사이를 지나가는 등 아슬아슬한 장면이 여럿 포착됐다. 유모차에 자녀를 태우고 홍대를 찾은 백모(39)씨는 “거리에 오토바이와 사람이 많이 있어서 피해 다녔다”고 말했다.
클럽이나 식당이 모여 있는 거리는 통제 요원이 많이 배치되면서 비교적 통행이 원활한 편이었다. 다만 길거리 버스킹이 열리는 일부 장소에선 제대로 통제가 이뤄지지 않아 보행자 동선이 꼬이는 모습도 보였다. 휠체어를 타고 있던 몽골 출신 바야자르칼 몽크찡(18)은 “(안전요원이) 빨리 이동해야 한다고 해서 다소 무섭기도 했다”고 했다.
정부는 지난 24일부터 다음 달 2일까지를 ‘핼러윈 인파 관리 특별대책 기간’으로 지정하고, 인파가 몰릴 것으로 예상되는 지역을 집중적으로 관리하고 있다. 구청 직원과 경찰, 소방 인력도 현장에 배치돼 혹시 모를 비상 상황 가능성에 대비하고 있다. 이태원에 배치된 한 경찰관은 “아침까지 밤새 상황을 지켜볼 것”이라고 말했다.
이태원·홍대 등 주요 지역 안전 관리를 빈틈없이 하는 한편 다른 지역에서의 혹시 모를 사고에도 즉각 대응할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한다는 전문가 의견이 나온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그동안의 경험을 통해 사람이 붐비는 장소에 대한 데이터 집계는 잘 돼 있지만, 이것만으로는 사고 예방에 한계가 있을 수 있다”며 “인파를 예측할 수 있는 체계를 보강하고, 주요 지역이 아닌 곳에도 순찰이 모자라지 않도록 준비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