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잇따라 국빈 방한해 이재명 대통령과 만났다. 양자회담과 식사 등 기본적인 일정은 같았지만 ‘디테일’은 차이가 났다.
이 대통령과 트럼프는 APEC 정상회의를 이틀 앞둔 지난달 29일 오후 국립경주박물관에서 정상회담을 했다. 회담은 확대오찬을 포함해 오후 2시39분부터 오후 4시6분까지 87분간 진행됐다.
오후 6시30분부터 경주 힐튼호텔에서 진행된 리더스 만찬에서도 2시간 가량 같이 식사했다. 트럼프는 이튿날인 30일 다시 미국으로 떠났는데, 1박 2일간 한국에 머무르는 동안 약 207분간 함께한 것이다. 이날 이 대통령은 황금빛 훈민정음 문양 넥타이를 착용했고, 트럼프는 푸른색 넥타이를 갖추고 회담장에 나왔다. 이 대통령은 황금색을 좋아하는 트럼프의 취향을, 트럼프는 한국 여당의 상징색이 푸른색인 점을 고려했다는 해석이 나왔다.
2박 3일간 한국에 체류한 시진핑이 이 대통령과 함께한 시간은 더 길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31일 오전 10시2분쯤 APEC 정상회의가 열리는 경주 화백컨벤션센터에서 시진핑을 영접했다. 양국 정상은 양일간(지난달 31일~지난 1일) 각각 약 2시간가량 진행된 APEC 정상회의 1·2세션에 모두 참여했다. 지난달 31일 경주 라한셀렉트에서 열린 정상 만찬(약 2시간 30분)에서도 함께 했다.
본격적인 국빈 일정은 지난 1일이었다. 오후 3시48분부터 오후 5시25분까지 열린 한·중 정상회담(97분), 소노캄 호텔에서 진행된 친교 일정과 만찬(120분)까지 합치면 두 정상은 2박 3일간 약 607분 동안 함께 했다. 지난달 31일 APEC 정상회의 때 붉은색 넥타이를 했던 시진핑은 정상회담에선 푸른색 넥타이로 바꿔 맸다. 이 대통령도 푸른색 넥타이를 착용하면서 양국 정상이 같은 색 넥타이를 맨 모습이 연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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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엔 평화, 시진핑엔 수교 33주년 강조
지난달 29일 한·미 정상회담 오찬장 테이블 위엔 꽃 ‘피스 릴리’(Peace lily, 평화의 백합)가 놓였다. ‘PEACE!(평화)’란 문구를 그려 넣은 디저트 접시도 등장했다. 트럼프가 ‘분쟁지역 해결사’라는 별칭을 좋아한다는 점을 고려한 장식이었다. 향후 북한 문제에서 미국의 역할을 강조하려는 의도도 있어 보였다.
트럼프의 고향인 뉴욕의 성공 스토리를 상징하는 사우전드아일랜드 드레싱을 곁들인 신안 새우가 전채요리로 등장했고, 메인메뉴 갈비찜을 거쳐 금가루를 뿌린 브라우니가 마지막을 장식했다. 역시 트럼프의 ‘금 사랑’을 반영한 선택이었다.
이날 오후 경주 힐튼호텔에서 이 대통령이 주재한 ‘리더스 만찬’에는 호주, 싱가포르, 태국, 캐나다 등 정상이 참석했는데, 이 대통령의 좌측에 사실상 주빈인 트럼프가 앉았다. 만찬엔 천년한우 등심, 구룡포 광어 등 양식 코스요리가 나왔다.
1일 경주 소노캄 호텔에서 열린 이 대통령과 시진핑의 국빈 만찬엔 마라 전복 볶음과 닭강정이 등장했다. 한국인이 좋아하는 중국 향신료인 마라와 중국에서 인기 있는 한국 닭강정으로 양국의 우정과 조화를 표현했다고 대통령실은 설명했다.
자연송이와 한우 떡갈비 구이에 이어 삼색 매작과와 삼색 과일이 나왔는데 올해 양국 수교 33주년을 기념하는 의미를 담았다고 한다. 시진핑이 즐겨 마시는 몽지람주도 만찬주로 등장했다. 앞서 이 대통령과 시진핑은 지난달 31일 경주 라한셀렉트 호텔에서 열린 APEC 정상회의 환영 만찬에서도 나란히 앉았다. 당시 만찬엔 나물 비빔밥과 갈비찜, 캐러멜 디저트 등 동·서양 요리가 고루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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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총 금관, 바둑판으로 취향 저격
이 대통령은 정상회담 전 트럼프에게 천마총 금관 모형을 선물하고 무궁화 대훈장을 서훈했다. 이 대통령이 “대한민국 국민의 감사와 존경을 담은 선물”이라며 금관을 건네자 트럼프는 “대단히 감사하다. 소중히 간직하겠다”고 답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원래 선물은 별도로 외교부가 미국에 전달할 예정이었는데, 트럼프 대통령이 에어포스 원에 직접 싣고 가겠다고 했다”고 설명했다.
트럼프는 야구 배트와 야구공 선물로 화답했다. 야구 배트에는 워싱턴 내셔널스 소속 딜런 크루즈 선수의 친필 서명이, 야구공에는 트럼프 대통령의 인장이 각각 담겼다. 미국 선교사들이 처음으로 한국에 야구를 소개한 역사에서 비롯된 양국의 깊은 문화적 유대와 공동의 가치를 상징한다고 미국 측은 전했다.
시진핑을 위한 이 대통령의 선물은 본비자 나무로 만든 바둑판과 나전칠기 자개원형쟁반이었다. 양 정상이 모두 바둑을 좋아하는 점, 2014년 방한 때 한국이 바둑알을 선물했다는 점을 고려했다고 한다. 대통령실은 “바둑판 위에 한·중 양국의 인연이 아름답게 펼쳐지기를 기원하는 의미를 담았다”며 “한국과 중국이 세계 바둑계를 주도하고 있듯 양국이 좋은 관계를 지속해 나가길 기원하는 의미도 있다”고 했다.
시진핑은 샤오미 스마트폰 2대 및 옥으로 만든 붓과 벼루로 화답했다. 중국 측 관계자는 샤오미 폰을 가리켜 “디스플레이는 한국 제품”이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이 “통신 보안은 잘 됩니까”라고 농담을 건네자 시진핑은 “백도어(뒷문)가 있는지 확인해 보라”고 답해 웃음이 터지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