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우물 사업”을 위장해 9억여원의 테러자금을 모금해 송금한 사례가 국내에서 적발돼 한국이 국제 테러단체의 자금 통로가 되고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경기남부경찰청 안보수사과는 지난달 28일 우즈베키스탄 국적 A(29)씨를 테러방지법·테러자금금지법·기부금품법 등 위반 혐의로 수원지검에 구속 송치했다. A씨는 2018년 3월 국내 대학에 유학생 비자로 입국한 뒤 중퇴했다. 이후 2022년 6월부터 지난달까지 ‘Y’ 자선단체 모금으로 위장해 암호화폐 테더(USDT) 62만6819개(한화 약 9억5276만원)를 모금했다. 국내에서 적발된 테러 자금 송금 규모로는 사상 최대라고 한다.
KTJ가 등장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한 중앙아시아 국적 유학생 B씨는 KTJ에 77만원 상당의 암호화폐를 보냈다가 지난 7월 부산지법 항소부에서 ‘공중 등 협박목적 및 대량살상 무기확산을 위한 자금조달행위의 금지에 관한 법률(테러자금금지법)’ 위반 혐의로 1심과 같이 징역 10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KTJ에 약 80만원을 보낸 우즈베키스탄인 불법 체류 노동자 C씨도 지난 9월 울산지법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이처럼 국내에 머무르는 외국인이 해외에 있는 테러단체로 돈을 보냈다가 적발되는 경우가 이어지고 있다. 국내에 암약해 온 테러단체 조직원이나 추종자가 잇따라 검거되는 것이다. KTJ의 경우 오사마 빈 라덴이 이끌던 알카에다의 시리아 지부인 알누스라 전선의 지시를 받아 자금·무기·인력을 공급하거나 및 테러 행위를 직접 수행하기도 하는 곳으로 알려졌다.
A씨의 경우 자선단체 지원을 사칭해 직접 테러 자금을 모은 것으로 조사됐다. 그는 경기도에서 축구 동호회를 운영하며 자국인들을 상대로 돈을 받거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난민 사진을 올리며 “지하드(성전)를 하자”고 선동하기도 했다. 그는 2022년 KTJ에 가입했고, 자국에서 수배 및 추적을 받자 한국으로 도주한 것으로 파악됐다. 타국으로까지 와 테러를 목적으로 한 자금을 모은 것이다. A씨는 경찰 조사에서 “KTJ는 테러단체가 아니다”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비교적 소액을 테러단체에 보낸 B씨와 C씨의 경우 지인이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텔레그램을 통해 알게 된 단체 조직원의 설득에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파악됐다. 자금세탁방지기구(FATF·Financial Action Task Force)가 지난 7월 펴낸 보고서에 따르면 이처럼 비영리조직 지부를 사칭하거나 해외에 있는 조직원을 이용해 송금을 받는 방법으로 테러자금을 조달하는 행위는 자국 내에서 정상적인 금융시스템을 이용할 수 없는테러단체들이 자주 사용하는 방식이라고 한다.
‘테러 자금 금지법’은 테러 자금을 모아 제공·보관할 경우 10년 이하 징역 및 1억원 이하 벌금형에 처하도록 규정한다. 법원은 그간 “테러단체에 자금을 제공하는 행위는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하는 범죄를 꾀하고, 이를 실행하는 테러단체의 존속을 돕는 것으로서 엄하게 처벌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판단을 계속해 왔다.
경찰 등 수사기관 또한 사안의 중대성을 고려하며 강도 높은 수사를 진행해왔지만, 이들이 개인 차원에서 범행을 저지르거나 암약할 수 있는 점 등을 고려하면 보다 다양한 방안으로 제재를 가할 필요가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수정 서강대 유로메나연구소 교수는 “유튜브 등을 통해 극단주의에 경도돼 돈을 보내는 경우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SNS 등으로 (조직원들과) 쉽게 연결될 수 있기 때문에 언제 어디서든 유사 사례가 이어질 수 있으니, 적발되면 무거운 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걸 적극적으로 알릴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희수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명예교수는 “A씨의 경우는 조직에 속해 계획적으로 범행을 저질러 왔지만, 다른 사례들은 개인적 차원에서 이뤄진 만큼 좀 다르게 볼 필요가 있다”며 “B씨나 C씨의 입장에서 보면 이들은 계획적으로 알카에다를 지원하기 위해 돈을 보냈다기보다는 자신들의 신념, 또는 가족 등 거절할 수 없는 관계에 있는 사람의 권유 등에 따라 공동체 사회에 돈을 보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그럼에도 테러조직에 돈을 보내는 일은 불법이기에 정부 당국에서 세심하게 추적하고, 관련 세력을 분리하려는 시도는 계속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