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오는 5일로 예정된 관세 정책에 대한 연방 대법원의 재판 개시를 앞두고 “우리(트럼프 행정부)가 패배한다면 미국은 거의 제3세계 수준으로 전락할 수 있다”며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신께 기도하자”고 2일(현지시간)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국제비상경제권법(IEEPA)을 근거로 각국에 상호관세를 부과하며 관세를 압박 수단으로 삼아왔다. 그러나 현지 법원은 1심(5월 연방국제통상법원)과 2심(8월 연방항소법원)은 “IEEPA가 대통령에게 수입 규제 권한을 부여하지만, 관세 부과 권한은 부과하지 않는다”며 상호관세 부과를 위법으로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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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세로 성공적 협상…없어지면 무방비”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자신의 소셜미디어(SNS)에 “다음 주 관세 재판은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중요한 사건 중 하나”라며 “중국 및 많은 나라들과 성공적으로 (무역)협상을 할 수 있었던 것도 공정하고 지속 가능한 합의를 끌어낼 수 있는 협상 카드로서 ‘관세’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1·2심 법원에서 위법이라고 판결한 관세 부과를 통해 상대국을 압박해 일방적인 협상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는 의미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어 “관세를 사용할 수 없게 된다면 우리는 전 세계 다른 모든 나라들, 특히 ‘주요국’과의 경쟁에서 상당히 불리한 위치에 놓일 것”이라며 “이는 무방비 상태가 되는 것”이라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당초 대법원 재판에 직접 출석할 뜻을 밝혔지만, 이날 플로리다 팜비치에서 백악관으로 돌아오는 전용기 안에서는 “수요일 법원에 가지 않겠다”며 기존 입장을 번복했다. 불참의 이유에 대해선 “결정의 중대성을 흐리지 않고 싶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관세가 없고 우리가 관세를 자유롭게, 전면적으로 사용할 수 없다면 국가 안보 측면에서도 엄청난 피해를 보게 될 것”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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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협상 요구 가능성…“다른 수단으로 가능”
CNN은 “대법원이 트럼프의 손을 들어주지 않으면 트럼프의 경제 전략 전반이 근본적으로 흔들릴 수 있다”고 전망했다. 실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폭스와의 인터뷰에서 “패소 판결을 내리면 이미 받은 돈(관세)을 기업들에게 돌려줘야 할 것”이라며 우려를 표했다.
미 세관국경보호청(CBP)에 따르면 9월 23일까지 기업들이 납부한 관세는 약 900억 달러(약 128조 7900억원)로, 이는 2025회계연도 전체 관세 수입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특히 관세를 지렛대로 대규모 투자를 요구하거나 시장을 개방하게 하는 내용의 각국과 맺은 협상에 대해 당사국들이 재협상을 요구하거나 보복 관세로 맞설 거란 관측도 나온다.
이와 관련 캐롤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은 폭스 인터뷰에서 “우리는 대안을 가지고 있다”며 비상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밝혔다.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 무역대표(USTR) 대표도 지난달 30일 뉴욕 이코노믹클럽 연설에서 “만약 그렇지(합헌 판결을 하지) 않더라도 같은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했다. 실제 이번 대법원의 판결은 IEEPA에 근거한 상호관세의 적법성만을 따진다. 무역확장법 232조에 따른 자동차·철강 등에 대한 품목별 관세를 판단 대상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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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세 지지율 33%로 최저…트럼프 지지율 41%
워싱턴포스트(WP)와 ABC가 지난달 24~28일 입소스에 의뢰해 진행한 여론조사(성인 남녀 2725명·오차범위는 ±2.8%P)에 따르면 미국인들의 관세 정책에 대한 지지율이 33%에 그쳤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 41%보다 8%P 낮다.
특히 관세에 대한 지지율은 경제(37%), 이민(43%), 이스라엘 문제(46%), 범죄 정책(44%), 우크라이나 문제(39%), 연방정부 운영(36%) 등 개별 항목 중 가장 낮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연일 마가(MAGA·Make America Great Again)의 핵심 정책인 관세를 내세워 자신의 성과를 홍보하고 있지만, 물가 상승에 직면한 미국인들은 관세에 대해 부정적 인식을 하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실제 미국의 온라인 대출업체 렌딩트리가 미국 소비자들이 지난해 연말 구매한 선물의 물량을 기준으로 분석한 결과 미국 소비자들과 소매업체가 관세로 인해 소비가 집중되는 연말에 지출해야 할 추가 비용이 406억 달러(약 59조원)가 될 것으로 전망됐다. 늘어난 비용의 70%는 소비자가 부담하는 구조로, 소비자 1명이 평균 132달러(19만원) 정도를 더 쓰게 될 거란 계산이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5월 관세가 물가 상승을 유발할 거란 우려에 “어린이들은 (크리스마스 때) 인형 30개 대신 2개만 받을 수도 있고, 그 2개도 몇 달러 정도 비쌀 수도 있다”며 관세로 인한 서민의 부담 증가를 대수롭지 않게 표현했다가 비판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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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 지방선거…공화당 일제히 고전
이런 가운데 오는 4일 뉴욕시장과 버지니아·뉴저지 주지사 선거에서 공화당은 고전하고 있다. 모두 민주당 우세 지역이긴 하지만,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처음 치러지는 ‘미니 지방선거’에 대해 CNN은 “트럼프 대통령과, 그에 맞서기 위한 전략을 고민하는 민주당 양쪽에 모두 일종의 시험대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유고브에 조사에 따르면 뉴저지와 버지니아 주지사 선거에서 민주당 마이키 셰릴 하원의원과 애비게일 스팬버거 전 하원의원은 공화당 후보를 각각 9%P와 14%P 포인트 앞섰다. 뉴욕에선 민주당 조란 맘다니 뉴욕주 하원의원이 선두다. 아틀라스의 조사에서 맘다니 의원은 40%의 지지율로 민주당 출신의 무소속 앤드류 쿠오모 전 뉴욕주지사(34%)는 물론 공화당 커티스(24%) 후보를 모두 앞섰다.
다만 ‘극좌’란 평가를 받는 맘다니에 대해선 민주당에서도 내년 지방선거에 중도층을 아우르려는 구상에 방해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하킴 제프리스 민주당 하원 원내대표는 CNN에 “맘다니를 민주당의 미래로 보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트럼프 대통령도 이날 CBS 인터뷰에서 “그는 사회주의자가 아닌 공산주의자”라며 “그가 당선되면 대통령으로서 뉴욕에 돈을 주기가 어렵다”며 공세 수위를 높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