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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日 이은 98년 母子의 헌신…日 훈장 받은 '고향의 집' 윤기 이사장

중앙일보

2025.11.02 2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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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와 목포 시민들 덕입니다. 그저 영광일 뿐입니다.”

일본 정부로부터 3일 2025년도 추계 서훈으로 욱일쌍광장(旭日双光章) 훈장을 받은 윤기(일본명 다우치 모토이·83) 사회복지법인 마음의 가족 이사장이 연신 “감사하다”는 말을 쏟아냈다. “보통 재일동포 2세들이 고생을 많이 한다는데, 복이 많은가보다”며 그가 맨 처음 꺼낸 이야기는 일본인 어머니 윤학자(다우치 지즈코·1912~1968)였다.
일본 정부로부터 3일 훈장(욱일쌍광장)을 받은 윤기 사회복지법인 마음의 가족 이사장. 마음의 가족 홈페이지 캡처
일본 조선통독부의 관리의 딸인 모친은 일제강점기 목포 정명여고에서 음악을 가르쳤다.우연한 기회, 자원봉사를 나간 곳이 공생원. 윤기 이사장의 부친으로 전도사였던 윤치호(1909~?) 선생이 1928년 10월 목포 유달산 자락에 난파선 목재로 만든 고아원 시설이었다. “하늘나라에선 일본인도 조선인도 구별이 없다”는 말과 함께 결혼을 허락받은 두 사람은 아들 윤기를 낳았다. 해방 후 1949년에 촬영한 사진엔 그가 공생원 아이들과 똑같이 맨몸에 바지만 입고 앉아있는 모습이 기록돼 있다. 한국 전쟁이 터지고, 전란 속에서도 아이들 먹을 것을 구하러 나간 남편이 돌아오지 않았지만, 윤학자 여사는 한국에 남아 아이들을 돌봤다. 그에겐 ‘3000명 고아의 어머니’란 말이 따라붙었다.
공생원을 일굴 윤치호 선생과 일본인 아내 윤학자(다우치 지즈코) 여사. 고향의집 홈페이지 캡처

윤 이사장은 “어머니는 목포 사투리로 ‘삼천 고아를 키운 것은 내가 아니다잉, 목포시민이다잉’이라고 했다”면서 “인정 많은 목포에서 살아서 행복했다고도 하셨다”고 회상했다. 한일국교정상화가 이뤄지고 3년 뒤인 1968년, 모친이 세상을 뜨자 목포시민들은 시민장으로 애도했다. 모친이 병석에서 일본어로 “매실장아찌(우메보시)가 먹고 싶다”고 한 것이 NHK를 타고 일본 전역에 방송된 뒤, 오부치 게이조 전 총리가 전화를 걸어 감사 인사를 전한 사실도 유명하다. 오부치 총리는 매실로 유명한 자신의 고향의 매실나무 20그루를 공생원에 기증했는데, 한·일 우호의 상징인 이 나무는 지금도 공생원 앞마당을 굳건히 지키고 있다. 오부치 총리는 1998년 김대중 대통령과 ‘김대중-오부치 선언(21세기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으로 양국 교류의 물꼬를 튼 바 있다.

모친의 뒤를 이어 공생원을 꾸려오던 윤 이사장이 일본에서 새롭게 싹을 틔운 것은 어르신들을 위한 돌봄시설이다. 잇단 재일동포들의 고독사 소식에 모친이 숨을 거두기 전 고향 음식인 매실장아찌를 그리워했던 것을 떠올렸다. 일본 땅에 남아있는 재일동포를 위한 어르신 시설을 만들기 위해 발 벗고 나섰다. 그는 “김치도 있고, 아리랑도 있는 고향의 집을 만든 것은 일본의 도움 덕”이라고 했다. 1984년 아사히신문에 “한·일이 이제 평화로운 관계 됐으니 재일동포들도 평화롭게 살게 해주자. 일본인 어머니 다우치를 목포시민들은 시민장으로 추모해주지 않았냐”는 기고문을 내면서 일본 사회가 움직였다. 1989년 오사카에 처음 문을 연 ‘고향의 집’이 처음 문을 열자 사람들은 그에게 “기적의 집”을 열었다고 했다. 그는 “당시 재일동포 1세대 어르신들이 ‘쥐구멍에도 볕 들 날이 있다’고 좋아해줬다”고 당시 일을 떠올렸다. '고향의 집'은 고베와 교토, 도쿄에서도 문을 열어 일본인과 재일동포들을 위한 우호의 시설로 자리잡았다.

그는 한국을 위해 헌신한 어머니를 한마음으로 추모해준 목포 시민들의 이야기를 또다시 꺼내 들며 “국적과 국가를 넘어서 인간이 우선하는 사회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배웠다”고 했다. 그러면서 “어머니와 목포에서 배운 것을 평생의 숙제로 삼고 있다”며 “또 다른 꿈을 꾸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일이 함께 하는 평화와 아이들을 위한 인재 양성이다. 그는 “지구촌의 미래 주인공인 아이들을 돕는 일에 두 나라가 협력하도록 하는 것이 새로운 목표”라고 말했다.




김현예([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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