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김나연 기자] 배우 박중훈이 자신의 연기인생에 있어 큰 영향을 미친 안성기에게 깊은 감사를 표했다.
3일 방송된 채널A '절친 토큐멘터리 - 4인용 식탁'에서는 배우 박중훈이 절친 허재와 김민준을 자신의 집에 초대했다.
이날 박중훈은 허재와 고등학교 동창생임에도 대학 학번이 차이나는 이유에 대해 "제가 재수했다. 참 부끄러운 얘기인데 제가 첫 해에 중앙대 아닌 다른데 연극영화과 시험을 쳤다. 근데 면접날을 착각하고 못갔다. 자동 불합격 됐다. 제가 생각해도 제 인생에 가장 어�侍� 날이었다. 그래서 재수해서 중앙대 간 것"이라고 비하인드를 전했다.
이어 "1년동안 재수하니 (허재와) 연락할 일이 없었다. 아날로그 시절이니 연락이 끊겼다. 학교 가는데 저기 키큰놈이 가더라. 연극영화과 입학했다 하니까 그때 표정이 콧웃음을 치더라"라고 말했다. 허재는 "중앙대 연극영화과를 들어왔다길래 이게 사기치나 싶었다. 근데 자기가 '깜보' 영화하에 출연한다더라. 몇백대 1인데 뽑혔다고 했다"고 말했다.
박중훈은 "대학교 1학년때부터 16mm 학생 영화 찍고 조명, 배우 하다가 삐삐도 없으니 수제명함 만들었다. 1학년때부터 현장에 나간 선배들 찾아다니면서 만나는 사람한테 뿌리고 다녔다. 오디션 기회 달라고. 그러던 중에 '깜보' 오디션 와달라 해서 했는데 몇마디 안 물어보고 가라더라. '연락할게요' 했는데 연락이 안 와서 한참 뒤에 갔다. '연락 안 와서 왔다'고 했다. '(캐스팅) 안 된거야' 했는데 제가 그럼 영화사에 나올수있게만 해달라 해서 한두달 넘게 잔심부름 했다"고 데뷔 당시를 떠올렸다.
그는 "그리고 저한테 한번만 (오디션) 기회를 달라 한 다음에 한 시간 동안 별 걸 다했다. 나중엔 팬티만 입고 록키 흉내도 내고 의상도 갈아입고 했다. 부끄러움이 없어서가 아니라 다른게 눈에 안 보였다. 그 다음날 영화사 갔더니 '너로 결정했다', '생전 처음 하는 사람을 결정한거니 네가 잘해야한다'해서 시작한게 '깜보'였다. 운이 좋았다"며 "두 번째 주연 작품이 '미미와 철수의 청춘 스케치'인데 1등한거다. 이제 세상 떠난 강수연 배우랑 같이 했다. 21살에 흥행 1등 했으니 정말 저는 세상을 업고다녀도 고마울 정도였다"라고 데뷔와 동시에 일약 스타덤에 올랐던 과거를 전했다.
이후 故최진실과 '나의 사랑 나의 신부'를 함께해 큰 사랑을 받았던 박중훈은 "기억 많이 난다. 다른 여배우가 물망에 올랐었고 제가 좋아했다. 근데 누가 최진실이라는 배우가 있는데 그 배우로 하자더라. 제가 반대를 했다. 영화사하고 감독님이 그러지 말고 해보자 해서 찍었다. 연기를 너무 잘하더라. 너무 예쁘고 깜찍했다. 개봉할쯤 돼서는 최진실 씨 인기가 더 좋아졌다. 어떤 포스터는 최진실 얼굴이 크게 나오고 제가 작게 찌그러져서 있다. 몇달사이 신드롬이 나버리더라. 그리고 몇년뒤 '마누라 죽이기'도 같이 하고 인연이 깊다"고 말했다.
하지만 박중훈은 돌연 유학을 떠났던 바. 그는 "촬영하고 바쁘고 인기 있는건 좋은데 눈뜨고 눈 감을때까지 내 뜻대로 사는게 아니다. 찍고 인터뷰 하고 어디 갔다 촬영하고 돌아오면 그냥 (잠들었다). 이렇게 멍하니 살다간 어떡하지? 하다가 생각좀 하고싶고 영어도 공부하고 싶었다. 지금생각하면 지적 허세지만 뉴욕대에서 석사학위 따보자. 폼도 나겠다 생각하고 유학 갔다. 석사 하고 거기서 아내 만났다. 여러가지로 저한테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이어 아내와의 첫만남을 묻자 "주말에 어떤 바를 갔다. 일본식 핫한 바였다. 바에서 바텐더를 1주일에 한번씩 알바를 했다더라. 그사람이 저랑 얼굴이 비슷하다. 제가 마음에 들어서 미국이니 영어로 '알 유 코리안?' 했더니 '아임 코리안'이라더라. '한국말 하세요?' 했더니 한국말 못한다더라. 재일교포3세라 첫번째 언어가 일본어다. 몇주를 갔는데 데이트가 성사가 안 됐다. 그러고 말았는데 한달 뒤에 대학교 카페에 앉아있는데 들어왔다. 서로 놀랐다. 그래서 경계심이 풀어졌다. 데이트가 성사돼서 결혼했다. 인연이 이렇게 되는구나 싶었다"라고 러브스토리를 전했다.
유학을 다녀온 박중훈은 '투캅스'로 또 한번 대박을 쳤다. 그는 "안성기 선배님하고 저하고 감사하게도 국민 배우라는 얘기를 해주시는데 그 소리를 듣게 된 게 '투캅스'때였다. 투캅스가 국민적인 축제같은 영화였다"고 말했다. 또 '인정사정 볼것없다'에 대해서는 "격투신을 태백 폐탄광 앞에서 찍은건데 눈 뜨고 눈 감을때까지 열흘간 비를 맞았다. 나중엔 빗물이 못이더라. 이때만해도 30대 초반이니 힘이 남을때니 했는데 보기만해도 이거 찍고 토하고 했다. 힘들어서"라고 고충을 토로했다. 하지만 "저한텐 바꿀수없는 영화가 됐다"고. 그는 "이 영화를 '양들의 침묵' 조나단 감독이 보고 할리우드 가게 됐다. 저한텐 중요한 감사한 영화다. '매트릭스'에서도 이 영화를 오마주해서 찍고 했다. 배우하며 좋은일 많았다"고 밝혔다.
[사진]OSEN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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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박경림은 "영화 인생에서 떼려야 뗄수없는 한분 있지 않냐. 안성기 선배님이 '투캅스', '인정사정 볼것없다', '라디오스타' 등 4편 같이했지 않냐"라고 물었고, 박중훈은 "저한테는 진짜 둘도 없는 분이다. 동반자이기도 하고 저한테 여러가지 의미다. 아버지 같기도 하고. 제가 풍선이라면 안성기 선배님이 날아가는 풍선 끈에 돌을 매달아 주셨다. 만약 그 돌이 없었으면 날아가다 터졌을 것 같다. 아시다시피 지금 몸이 좀 많이 안좋다. 얼마전에 선배님한테 그랬다. '선배님이 계셔서 제 인생이 참 좋았습니다' 했더니 힘이 없어서 가녀리게 빙긋 웃으시는데 그냥 마음이 좀 많이 그렇더라. 눈물이 터질것 같은데 꾹 참느라 혼났다"라고 현재 혈액암 재발로 치료 중인 안성기의 근황을 전하며 울컥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는 "어느날 안성기 선배님이 저한테 그러더라. 친했지만 제가 지난 오랜시간 동안 실수했을수도 있지 않냐. '내가 네 아버님때문에 더 각별하다'더라. 아버님이 저 몰래 영화 상영회 뒤풀이때 안성기 선배 찾아가서 허리 숙이고 종훈이좀 잘부탁한다고 그렇게 많이 인사했다더라. '내가 네가 실수할때도 마음이 너그러운 이유는 돌아가신 아버님때문'이라고 했다"고 남다른 인연을 전했다.
배우 데뷔 외에는 아버지의 말을 거스른적 없다는 박중훈은 "그때는 배우한다고 그러면 '딴따라'라고 하고 저희 아버지는 공무원을 하셔서 아버지 대를 이어서 공직자가 되길 원했다. 나중에 배우가 되고 제가 제 일을 열심히 하니까 아주 최고의 지원자가 되셨다"며 "하루는 갑자기 오시더니 너한테 미안하다, 반대해서. 이렇게 될줄 몰랐다 하면서 '내 복을 네가 다 가져가라' 그런말씀 하시더라. 이런말씀 왜 하시나 했는데 그러고 한두달뒤에 심장마비로 돌아가셨다. 제가 할리우드 진출 꿈이 있었다. 그게 현실성 없는 꿈이었고, 그런 꿈을 아버지가 잘 알고 계셨다. 근데 아버지 돌아가시고 몇달 뒤에 거짓말처럼 할리우드에서 영화하자고 연락왔다. 꿈같은 얘기"라고 털어놨다.
그는 "찍으면서 감독님한테 얘기했다. 제 역할 이름을 제 아버지 이름으로 해달라고. 아버지 이름이 '일상'이었는데 촬영하는 6개월동안 아버지 이름 들으며 영화 찍었다. 아버지가 도와주셨구나 이런 생각 들었다"라고 뭉클함을 전했다.
어느덧 두 번째 서른을 맞이하게 된 박중훈은 "저는 건강을 잘 유지한다는 전제 하에 나이드는게 좋다. 한번도 안 살아봤지 않냐. 신기하기도 하고. 내가 60이 된다는게 자랑스럽다. 내가 환갑이 되다니. 지나놓고 생각하니 최근 쓴 책도 '후회하지마'다. 20대부터 소신이 '내 인생에 반성은 있되 후회는 없다' 이러고 살았는데 이 나이 되니 후회되는게 너무 많더라. 20, 30대때는 세상사람들이 다 나만보는줄 알았다. 세상이 내 중심으로 돌아간다 생각했다. 근데 사람들이 얼마나 참아줬을까. 다시 한번 산다면 그런면은 아쉽다 생각 든다. 누가 소원 얘기하라 하면 다시 옛날로 돌아가서 미안한사람한테 사과하고 싶다"라고 미숙했던 시절을 돌이켜 봤다.
박중훈은 "이런 이야기를 '쏘리맨'이라는 제목으로 영화 시나리오로 쓰려고 몇달 고민하기도 했다. 2, 30대때 너무 뜨거웠다. 화날때 화내고. 그때 내가 좀 더 성숙하게 감정표현했으면 싶다. 안성기 선배님과 장동건 후배가 단한번도 남하고 다투는걸 못봤다. 언성 높아지는것도 못봤다. 근데 자기가 표현할수있는 감정은 다 전달하는 마법사다. 저거 하나는 배우고싶다 싶었다. 그게 인품이다. 다시 한번 돌아간다고 하면 더 다르게 살수있을 것 같다"라고 말했다.
또 그는 에세이 출간 이유를 묻자 "아무 생각 없었는데 후배 차인표가 작가로도 아주 빛난다. 이 후배와 종종 보는데 인표가 운동 마치고 식사할 때 불쑥 '형님 살아온 얘기 책으로 써보시죠' 했다. 갑자기 어려운 얘기지 않나. 제가 30대 중반때 일간지에 일주일간 칼럼을 쓴적 있다. 그때 끝나고 책 내자는 얘기 있었는데 '책은 60쯤 내는거지' 하고 안 냈다. 이 시간이 왔는데 아직도 자신없더라. 근데 하도 권유해서 하게 됐다. 안그랬으면 안썼을 것"이라고 비하인드를 전했다.
그러면서 "그리고 이젠 너무 오랜시간 연기를 안 해서 배우로서 관객들에게 인사드리고 싶다. 제 마음이 그렇다. 다시 연기를 하게 되면 스스로에게 얘기하고 후배들한테도 얘기하는데 '유명한 신인배우'가 되고싶다. 실제로 그렇게 마음 먹고 있다"고 각오를 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