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가 한국의 핵추진 잠수함(핵잠) 도입에 큰 틀에서 합의했지만, 세부 내용에서 다소 엇갈린 입장을 보이고 있다. 한국은 핵잠을 자체 건조 및 운영하기 위한 연료 확보에 방점을 두고 있는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화답한 요지는 ‘핵잠을 미국에서 만들라’는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한·미 정상회담에서 “핵연료 공급 승인”을 요청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튿날 “한국의 핵잠 건조를 승인했다”며 “한국은 미국 필라델피아조선소(필리조선소)에서 핵잠을 건조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런데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지난 1일 “다양한 언급이 있어서 혼란스럽지만 우리는 주로 연료 부분에 미국의 도움을 청했다”며 “우리가 승인받은 건 연료”라고 명확히 했다. “(연료를) 군사적 목적으로 써야 하기 때문”이라면서다.
핵잠 도입에는 큰 틀에서 공감대를 형성했지만, 결이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는 셈이다. 한국은 조선 강국으로서 핵잠을 건조할 기술적 기반은 이미 상당 수준 갖추고 있다. 핵연료 사용에 대한 미국의 협조만 얻으면 시간은 걸려도 본격적인 기술 개발과 건조에 착수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미국이 한국에 자체적인 연료 생산 권한을 부여하지 않은 채 봉인된 형태로 핵연료를 공급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그러나 이는 곧 핵잠 운용을 상당 부분 미국에 의존하게 돼 자주적 운용이 어렵다는 뜻이 된다.
이병철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사실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에서 건조하라’는 발언은 이 대통령의 ‘핵연료 공급 요청’과는 무관한 동문서답”이라며 “한국이 농축 권한을 확보하지 못한 채 봉인된 형태로 연료를 공급받는다면 만에 하나 미국이 공급을 중단할 경우 수조원을 들인 핵잠이 자칫 고철로 전락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실제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이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인지도 불분명하다. 한국이 ‘연료 공급 승인’을 요청했는데 ‘건조를 승인할 테니 미국에서 하라’고 한 맥락이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만으로는 단순히 미국산 핵잠을 구매하도록 하겠다는 것인지, 한국이 미국 내에서 직접 건조하도록 허용받는 것인지, 혹은 기술 이전과 공동개발을 의미하는 것인지 구체성이 없다.
또한 핵잠을 건조하려면 필리조선소가 미국 국내법상 방산업체로 지정돼야 하는데 이럴 경우 한화오션의 자율성이 제약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필리조선소의 인프라가 미흡한 측면도 있다. 강동길 해군참모총장은 지난달 30일 국회 국방위 종합국정감사에서 “잠수함을 건조하려면 수천t을 견디는 강화 콘크리트 기반과 은닉형 대형 건조물이 필요한데 필리조선소는 그런 시설이 없다”고 설명했다.
결국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의 자주적 핵잠 구상을 실질적으로 지지하기보다는 미국 내 조선업을 부흥시키려는 의도의 연장선에서 한국의 핵잠 도입을 승인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한국의 구상을 사실상 되치기한 것”이라며 “정부는 1500억 달러 규모의 마스가 프로젝트 투자를 협상 카드로 삼아 핵잠은 한국에서 직접 건조하고 농축우라늄 사용권 등 권한을 확보하는 방향으로 협상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