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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키오 회장이 망가뜨린 ‘GR 야리스’ 전시물이 말해 주는 것 [토요타 테크니컬 센터 시모야마 르포](2)

OSEN

2025.11.04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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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OSEN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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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SEN=토요타시(일본), 강희수 기자] ‘토요타 테크니컬 센터 시모야마(Toyota Technical Center Shimoyama)’의 2층 라운지에 오르면 널찍한 전시공간이 펼쳐진다.

그런데 맨 앞줄에 선 차가 좀 이상하다. 여기저기 생채기가 나 있고, 전면 유리창엔 심각하게 파손된 흔적도 보인다. 좌측 사이드 미러는 아예 고개가 안쪽으로 휙 꺾여 있다.

외부 손님을 맞이하는 얼굴로는 썩 어울리지 않는다. 배경 설명이 필요하다.

사고 차는 토요타 모터스포츠의 상징 ‘GR 야리스’다. 그리고 그 차 옆에는 토요다 아키오 회장의 전신 입간판이 서 있다. ‘모리조’라는 예명으로 직접 모터스포츠 드라이버로 활동하고 있는 아키오 회장이 모터스포츠 유니폼을 입고 엄지손가락을 치켜든 채 환하게 웃고 있다. 마치 망가진 차를 자랑스러워 하는 듯한 모양새다. 

맞다. ‘GR 야리스’를 이 지경(?)으로 만든 주인공은 바로 토요다 아키오 토요타그룹 회장이다.

아키오 회장 입간판 반대쪽에는 사고의 과정을 설명하는 보드가 서 있다. 제목은 ‘모리조가 단련한 GR 야리스’다. ‘달리고 부수고 고친다의 상징’이라는 부제도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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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문처럼 아키오 회장은 ‘GR 야리스’ 개발 과정에서 직접 테스트 드라이버로 참가했다. 토요타 자동차 내에서 아키오 회장은 ‘마스터 드라이버’로 통하고 있다. 기업의 최고 의사 결정권자이면서 최고 수준의 모터스포츠 드라이버 자격을 갖춘 인물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개발 과정에서 일어나는 사고 자체는 사실 그리 중요하지 않다. 그룹의 최고 의사 결정권자가 마스터 드라이버로 개발 과정에 직접 참가했다는 것이 핵심이다. GR 라인업을 생산하고 있는 ‘토요타 GR 팩토리’의 견학코스에 가면 공장 안내서에 ‘부서져줘서 고마워’라는 문구가 등장한다. 테스트 과정에서 망가진 부품은 더 강한 부품으로 개선돼 드라이버를 더 강하게 만들어 준다는 논리다.

‘토요타 테크니컬 센터 시모야마’에 전시된, 사고난 GR 야리스는 곧 GR의 개발 철학이 된다.

[사진]OSEN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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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경위를 봐도 차에 결정적 결함이 있었던 건 아니다.

GR 야리스에는 VSC(Vehicle Stability Control)라는 이름의 차체 자세 제어 장치(현대차 기아는 ESC, Electronic Stability Control라 함)가 있는데 통상의 랠리 주행에서는 이 장치를 끄고 운전한다. 아키오 회장도 당연히 VSC를 끄고 테스트에 참가했다. 그러다 잠시 시동을 껐다가 다시 켜는 과정이 있었는데, 일반적으로 이 경우 안전을 위해 VSC가 다시 켜진다. 

아키오 회장은 이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고, VSC가 꺼진 줄 알고 비탈길에서 급격한 코너링을 하다가 VSC가 작동하면서 차가 전복되고 말았다. 일순간 땅과 하늘이 뒤바뀌자 아키오 회장과 동승한 코드라이버는 서로 소통하며 침착하게 차에서 탈출했다. 차에는 롤 케이지가 장착돼 있어서 두 사람은 모두 멀쩡한 모습으로 나와 너털웃음을 지었다.

사고와 탈출의 전 과정은 차량내 카메라에 그대로 녹화됐고, 아키오 회장은 이 영상조차 테크니컬 센터 방문자들에게 공개하도록 했다. 

GR 야리스 사고차가 던지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사고 경험은 숙련 인력과 직원들의 안전 프로토콜 강화를 위한 중요한 기반이 된다.”

토요다 아키오 회장은 2019년 ‘토요타 테크니컬 센터 시모야마’를 개장하면서 이런 말을 했다. “약 3,000명의 GR과 렉서스 개발팀, 테스트 드라이버들이 이곳에서 자동차를 운전하고, 브레이크를 테스트하며, 개선 작업을 진행할 예정입니다. 저희가 더 많이 운전하고, 더 많이 차를 부술수록, 자동차는 완성도가 높아집니다. 저는 마스터 드라이버로서 시모야마 도로를 운전하며 많은 시간을 보내길 기대하고 있습니다.”

아키오 회장의 이 같은 철학은 ‘토요타 테크니컬 센터 시모야마’의 핵심 부서인 ‘처완기능양성부(The Advanced Technical Skills Institute Division)’ 멤버들에 의해 한층 정교하게 다듬어진다.

한자음으로 읽은 ‘처완기능양성부’는 용어는 생소하지만 최고의 테크니컬 드라이버를 양성하는 부서라는 뜻으로 해석이 된다. 센터를 탐방한 기자들을 차에 태우고 고난도 서킷을 고속으로 주행했던 이들이 바로 이 부서 소속원들이다.

‘처완기능양성부’는 토요오카 사토시 부장. /한국자동차전문기자협회 제공.

‘처완기능양성부’는 토요오카 사토시 부장. /한국자동차전문기자협회 제공.


‘처완기능양성부’는 토요오카 사토시 부장이 이끌고 있다. 아키오 회장이 GR 야리스로 사고를 낼 때도 현장에 있었던 인물이다. 마스터 드라이버인 모리조(아키오 회장)와 협력해 양산차 GR 야리스를 개발한 주역이다. 또한 토요타 가주 레이싱이 참가하는 전일본 랠리 선수권에서 오랜 시간 팀 감독으로서 사람과 차를 단련하는 활동을 주도했다.

토요오카 부장은 (사)한국자동차전문기자협회 소속 취재진과의 인터뷰에서 “처완기능양성부에는 65명 정도의 인원이 있는데, 한 마디로 차의 맛을 양념하는 사람들이다. 이 멤버들은 최고 전문가 그룹인 ‘탑건’ 아래에 S2, S1, 고급, 중급, 초급 등의 등급이 있어 승급 과정을 거치며 최고의 반열에 오를 수 있도록 조직이 구성돼 있다”고 부서를 소개했다.

이들은 스스로를 ‘모리조의 최전방 전투부대’로 여기고 있다.

토요오카 부장은 “우리는 모리조의 생각을 읽고 구체화하는 최전선 부대다. 그런데 내가 이 부서 부장을 맡고 있지만 진짜 부장은 모리조다. 모리조와 테스트 드라이브 경쟁을 했는데, 내가 졌기 때문이다. 60명 남짓한 작은 조직이지만 모리조가 스스로를 부장이라고 말할 정도로 이 부서에 대한 애정이 깊다. 모리조와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을 감사히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토요오카 부장은 진짜로 모리조와 경쟁해서 졌을까? 회장이기 때문에 전력을 다하지 않은 건 아닐까? 짓궂게도 확인 질문이 들어갔다.

그러자 토요오카 부장은 “GR 야리스가 전복됐던 그 코스에서 정말 진지하게 모리조와 경쟁을 했다. 그런데 내가 조심성이 많아서 그런지 6초나 뒤지고 말았다. 이후 노력해서 1.7초를 줄였는데, 앞으로 4.3초를 더 만회해야 내가 진정한 부장이 된다”며 웃었다.

야부키 히사시 처완기능양성부 주사. /한국자동차전문기자협회 제공.

야부키 히사시 처완기능양성부 주사. /한국자동차전문기자협회 제공.


이 곳 드라이버들은 모리조처럼 차를 망가뜨려야 칭찬을 받게 되는지도 궁금했다.

인터뷰에 참여한 야부키 히사시 처완기능양성부 주사는 “과거에는 차를 망가뜨려서는 안 된다는 중압감이 있었다. 하지만 ‘망가뜨리고 다시 고친다 그러면서 강해진다’는 모리조의 철학이 천명된 뒤부터는 한결 부담을 덜었다. 차를 망가뜨리면 엔지니어들은 원인을 분석하고 고치면서 차가 더욱 강해진다. 망가진 부품도 분석을 통해 더 강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그렇다고 “일부러 망가뜨리기 위해 일을 하는 건 아니다”고 농담을 한 뒤 “고객들이 실제 운전을 하다보면 다양한 환경에 맞닥뜨릴 수 있기 때문에 그런 가정을 고려해서 테스트를 한다”고 말했다.

2025 재팬모빌리티쇼에서 메인 이벤트가 됐던 ‘센추리 브랜드’ 신규 출범에 대해서는 아직 본격적인 개발 그림이 잡히지 않은 것으로 보였다.

센추리 브랜드 차량들은 어떤 맛으로 길들일 것인가를 묻는 질문에 토요오카 부장은 “센추리를 시작하겠다고 막 발표한 시점이라 아직은 구체적인 방향성을 잡지는 못했다. 하지만 모리조는 오직 일본 장인들이, 일본에서만 만들 수 있는 차로 센추리 모델을 규정한 바 있다. 아마도 방향성이 모리조의 머리 안에는 있겠지만 개발자와 테스트 드라이버에게는 아직 전달이 되지 못했다. 향후 논의하면서 조절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차를 개발하다 보면 경쟁 브랜드의 차들도 경험하게 되는데, 최근에 인상 깊었던 차로는 현대차의 ‘아이오닉 5N’을 꼽았다.

야부키 주사는 “과거에는 다양한 종류의 유럽 차를 사서 분석했다. 당시는 유럽 차를 따라잡는데 집중했지만 지금은 우리가 갖고 있는 지표에 따라 우리가 만들기 위한 차에 더 집중하고 있다. 최근에는 현대차의 ‘아이오닉 5N’을 타 봤는데 정말 충격을 받았다. 모리조도 비슷한 충격을 받고는 ‘아이오닉 5N’에 지지 않는 차를 개발하라 지시하셨다. 현대차 N 브랜드 매니지먼트실 박준우 상무와는 차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교류도 하고 있다”고 말했다. /[email protected]


강희수([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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