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롤링썬더' 채널에는 "“아빠 이 정도면 나 잘 살았지?” [신여성] EP.09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는 방법"이라는 제목의 영상이 업로드 됐다.
이날 이경실과 조혜련, 이선민은 지난 9월 25일 세상을 떠난 故전유성에 대한 추억을 꺼냈다. 조혜련은 "신영이가 (故전유성) 돌아가시기 며칠 전부터 병원에서 함께하셨다. 그러고 나서 장례식장에서 만났는데 신영이가 계속 내 앞에서 오빠와의 추억을 얘기하더라"라고 운을 뗐다.
그는 "(故전유성이) 맨날 남 퍼주고 후배들 챙기고 이러니까 신영이가 맨날 잔소리한거다. 운전하고 가면서 옆에 유성오빠가 타고 있었는데 '교수님 맨날 그렇게 챙기고 그런거 너무 하지마세요'라고 얘기하다가 차가 끼어드니까 '아이씨' 하면서 험한소리가 나왔나보다. 그랬더니 유성오빠가 '야 너는 진짜 사람들한테 그렇게 험한소리 하지마. 욕하지 말고 알았어?'라고 해서 '알았어요' 했는데, 차가 또 끼어들었나보다. 유성이 오빠가 '이런 X발'하고 그 말 끝나자마자 욕을 하더래. 신영이가 '왜 욕하지말라더니 욕해요' 했더니 '너보고 욕하지 말라 그랬지 나보고 욕하지 말라 그랬냐?'라고 '내로남불' 에피소드를 전해 웃음을 자아냈다.
이에 이선민은 "전유성 선배님은 누구한테 피해를 줬다거나 이런게 전혀 없으시니까"라고 말했고, 이경실은 "그럼. 돌아가시고 나서 우리 선배지만 이렇게 끊임없이 미담이 나오는 선배는 정말 없는 것 같다"라고 감탄했다.
그러자 조혜련은 "오빠가 돌아가시기 5일 전에 전화가 온거다. '전유성'으로. 내가 오빠가 몸이 안 좋으신걸 아는데 (전화기에) '전유성' 뜬걸 보고 '오빠' 했더니 '나 곧 죽어' 이렇게 얘기하고 오라는 얘기는 못하더라. '나 곧 죽어'이러는 거다. '오빠, 알아. 오빠 많이 아프시죠?' 그러고 며칠 안에 오빠를 만나러 가고 그랬다. 언니도 가고 그랬잖아"라고 故전유성의 임종 직전을 떠올렸다.
이경실은 "'유퀴즈' 녹화 끝나고 갔다. 사위분이 전화를 받으실거란 생각이 들어서 오빠는 전화 못 받으실거라고 생각하고 전화드렸는데 오빠가 받더라. '오빠가 전화받네?' 그랬더니 숨을 굉장히 가쁘게 쉬실때라 '어' 막 이래. '오빠 나 오빠한테 지금 갈게' 그랬더니 '어' 하고 끊었다. 끊었는데 바로 다시 전화왔다. 그때 '유퀴즈' 녹화 끝나고 비가 엄청 많이 올때였다. 전화가 또 와서 '힘든데 오지마. 비도 많이와' 막 이러는거다. '아니야 오빠 나 오빠 보고싶어서 가. 갈거야 무슨 소리야. 오빠 갈테니까 걱정하지마. 전화 끊어 오빠 힘들어' 그랬더니 '그래 그럼 와'이러더라. 산소호흡기 꼽고 계시는게 100m 달리기 하는 상황이래. 숨을 '하아 하아' 이렇게 쉬고 계시니까"라고 폐기흉때문에 숨쉬기도 힘들었던 상태를 전했다.
그는 "환자복을 이렇게 젖히고 여기 물수건 2장을 덮고 계셨다. 그걸 신영이가 물수건을 계속 갈아주고 있더라"라고 말했고, 조혜련도 "방송, 생방송 전부 다 다른사람에게 맡기고.."라고 뭉클함을 전했다. 이경실은 "(일을) 쉬고 그렇게 하고 있었다. 깜짝 놀랐다. '신영아 네가 어떻게 여기 와있어' 그랬더니 '제가 교수님 돌봐 드려야죠' 이러더라. 너무 고맙더라"라고 애틋함을 드러냈다.
[사진]OSEN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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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민은 "저도 장례식장 첫날에 갔었다. 저희 코미디언의 조직이라는게 정말 다시한번 느꼈던 게 한참 원로 선배님부터 해서 저보다 후배인 친구들하고도 연이 닿아있다. 후배들 활동을 다 보고 계신다. 모든 선배님들이. 얼마나 끈끈한지"라고 감탄했고, 조혜련은 "그럼. 우린 하나다"라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 "신영이가 얘기하는데 오빠가 돌아가시기 몇 시간 전에 10만원을 봉투에 넣어서 '신영아 기름 넣어' 그랬대"라고 울컥했다. 이경실은 "신영이가 계속 왔다갔다 했으니까"라고 설명했고, 조혜련은 "10만원이면 좀 부족하다. 10만원이면 톨게이트비랑 단가가 안 맞다. 15만원은 줘야하는데 휴게소에서 커피도 사 먹어야하고. 좀 짜긴 짜더라"라고 농담해 웃음을 자아내며 분위기를 전환시켰다.
특히 조혜련은 故전유성을 보며 돌아가신 아버지를 떠올렸다고. 그는 "사실 저같은 경우에는 아버지가 지금으로부터 22년 전에 돌아가셨다. 아버지가 떠나가실때 아빠도 유성 오빠처럼 폐가 안 좋았다. 내가 유성이 오빠를 보는데 우리 아버지의 마지막 임종을 보는 것 같더라. 전 아버지의 임종을 �H다. 진짜 호흡을 그렇게 못하셨다. 그래서 내가 그 여운이 떠나지 않는게 내 아버지 같았다. 너무 마르셨고, 호흡을 그렇게 가파르게 하면서도 정신은 멀쩡히 살아계셔셔 이야기를 다 하셨다. 아버지가 우리한테 그랬다. '미안하다'고. 그게 마지막 임종의 메세지였다. '미안하다' 하고 숨이 끊어지는걸 봤다. 얼마나 우리에게 미안해 하셨는지에 대한 그 마음을 그때 느낄 수 있었다"라고 눈시울을 붉혔다.
그는 "아버지가 서라벌 예대를 나오셨다. 연극 영화과를 나오셨다. 유성 오빠랑 똑같다. 그 끼를 내가그대로 물려받았는데도 아빠가 우리한테 해주지 못했다는 것에 대해 항상 불만이었다. 왜 엄마만 저렇게 고생시키는지, '아버지 뭐해요?' 이러면서. 아빠를 어디서 부딪혀도 아는척도 안 하고 도망다니고 이랬다. 그런 아빠에 대한 후회와 아픈 상처가 너무 컸다. 근데 그 마음이 그대로 유성오빠한테 전달이 돼서 앞에서는 티 못내지 않나. 오빠 아직도 살아계시고 버티고 계신데. 근데 그 마음이 그대로 와닿더라. 아빠가 우리한테 미안해 했던 마음을 우리한테 이야기하려고 했는데 우리가 그걸 받아들이지 않았던거다. '아빠랑 이야기해봤자 뭐 남는게 있어' 이러면서 '됐어요, 대화도 안 통하는거'라고 했다. 그게 그렇게 후회가 되더라. 이야기 하려면 귀기울여주는 그런 자식이 돼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아버지를 떠나 보낸 뒤 겪었던 후회를 전해 안타까움을 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