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1일 싱가포르 마리나베이 샌즈(사진) 컨벤션 센터. 12만㎡ 규모의 센터는 세계 각국에서 모여든 기업인으로 북적였다. 여기서 만난 캐나다 생명공학기업 ‘콘리스 글로벌’의 숨리타 바트 대표는 매년 두세 번 이곳을 찾는다고 했다. 그는 “동아시아 지역을 중심으로 사업을 확장하려고 하는데 여기선 모든 게 가능하기 때문”이라며 “도시 자체가 새로운 구매처 발굴, 생산·연구 연계 등이 가능한 ‘국제 거점’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회의·행사·전시에 공연·관광까지 망라하는 마이스(MICE) 산업은 싱가포르 내수 경제를 지탱하는 핵심축으로 자리 잡았다. 지난해 마리나베이 샌즈 컨벤션 센터에서만 2200건 행사가 열렸고, 120만 명이 참석했다. 마리나베이 샌즈 건물 단 한 곳에서 고용·구매 등 내수에 기여한 금액이 지난해 21억9000만 싱가포르달러(약 2조4000억원)에 이른다.
이를 가능케 한 건 2005년 싱가포르 정부가 추진한 ‘복합리조트(IR)법’이다. 당시 전 세계를 휩쓴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사스)이 싱가포르 경제를 위기로 내몰자, 정부는 규제의 벽을 과감하게 허무는 IR법안을 내놨다. 투자, 고용, 부동산 개발 등 전방위로 제한을 풀었다. ‘금단’으로 꼽혔던 내국인 카지노까지 복합리조트 내 허용할 정도의 파격이었다.
세계 금융위기 여파로 2008년 1.9%, 2009년 0.1%까지 추락했던 싱가포르의 경제성장률은 마리나베이 샌즈와 리조트월드 센토사가 개장한 2010년 14.5%로 뛰어올랐다(세계은행).
미·중 갈등 여파로 동아시아 국제도시로서 홍콩의 위상이 주춤한 사이 싱가포르는 IR법을 토대로 최근 특수를 다시 누리고 있다. 싱가포르국립대 경영대 이관옥 교수는 “싱가포르에서 ‘제2의 건설붐’이 일고 있다”며 “마리나베이 샌즈와 창이 국제공항 증축과 맞물려 대규모 투자가 몰렸고, 정부 역시 도심 용적률 상향 등 규제 완화를 통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싱가포르의 올해 2분기 기준 건설과 부동산 부문 산업은 전년 대비 각각 6%, 5.2% 성장했다.
싱가포르의 성공 모델은 아시아 주요국으로 확산하고 있다. 일본은 2016년 일찌감치 ‘통합형 리조트(IR) 추진법’을 제정했다. 이를 토대로 1조3000억엔(약 12조3000억원) 투자를 받아 오사카 서부에 위치한 인공섬 유메시마에 복합리조트를 2030년까지 건립하기로 했고, 지난 4월 첫 삽도 떴다. 지난 1월 태국 정부는 치앙마이·푸켓 등 4곳에 복합리조트를 건립하는 내용의 ‘통합 엔터테인먼트 사업법’을 승인했다. 필리핀도 가세했다.
한국은 ▶수억 명의 배후 인구 ▶국제공항에서 차로 20~30분 거리의 입지(인천·부산·제주) ▶주류로 떠오른 K팝과 K뷰티·K푸드 ▶세계 4위 규모의 제조 산업 등 싱가포르를 뛰어넘는 조건을 갖췄지만, 복합리조트 경쟁에선 크게 뒤처져 있다. 관련 기관 간 각기 다른 이해관계, 여러 부처에 걸친 이중삼중 규제 탓이다. 물론 잠재력은 확인됐다. 지난 2017년 인천 영종도에 외국인 카지노와 호텔·테마파크·전시·공연 등 공간을 갖춘 파라다이스시티가 개장했다. 이곳 고용 인원만 13만 명(누적 기준)에 달한다.
서원석 경희대 호텔관광대 학장(한국관광학회 회장)은 “한국이 도태되지 않으려면 싱가포르를 모델 삼아 IR법 제정, 시범사업 추진 등을 통해 복합리조트 산업 육성을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