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 가자전쟁 이후 국내 언론 중 처음으로 가자지구 내 현장취재
이스라엘 철군선 '옐로라인'서 본 가자시티…'폐허' 표현 무색할정도로 처참
인기척 없고 떠돌이 개들만 눈에 띄어…이스라엘 "전쟁 결과 보게 될 것" 안내
[가자를 가다] 끝없는 콘크리트 잔해…잿빛 지옥으로 변한 가자시티
연합뉴스, 가자전쟁 이후 국내 언론 중 처음으로 가자지구 내 현장취재
이스라엘 철군선 '옐로라인'서 본 가자시티…'폐허' 표현 무색할정도로 처참
인기척 없고 떠돌이 개들만 눈에 띄어…이스라엘 "전쟁 결과 보게 될 것" 안내
(셰자이야[가자지구]=연합뉴스) 김동호 특파원 = 눈앞에서 저 멀리 지평선까지, 눈을 돌리는 곳마다 건물 잔해 더미가 끝없이 이어졌다.
콘크리트 골조는 원래 형태를 짐작할 수 없을 정도로 바스러졌고, 돌덩이들 사이로 삐져나온 철근 다발은 빗질하지 않은 머리카락처럼 엉겨 붙었다. 흙먼지가 뿌옇게 낀 하늘 아래로 잿빛 지옥이 펼쳐졌다.
5일(현지시간) 낮 연합뉴스는 가자지구 북부의 가자시티에 인접한 셰자이야 현장을 취재했다.
한국 언론이 가자지구 안쪽으로 진입한 것은 2023년 10월 7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이스라엘 기습으로 전쟁이 발발한지 2년여만에 최초다.
연합뉴스를 비롯해 폭스뉴스, 프랑스24 등 전세계 14개 매체 취재진은 이스라엘 남부의 나할오즈 검문소에 모여 이스라엘군에 동행하는 취재 일정을 시작했다.
취재진은 미리 공지 받은 대로 각자 두꺼운 방탄헬멧과 방탄조끼로 '중무장'한 상태였다.
이스라엘 관계자는 "여러분들은 이제 가자시티와 셰자이야의 무너진 건물들, 바로 '전쟁의 결과'를 보게 될 것"이라고 말하고는 취재진을 트럭 2대에 나눠 태웠다.
이내 차량이 위아래로 크게 덜컹거리며 달리기 시작했다. 이 길로 육중한 탱크가 오가며 길 곳곳이 패였을 터다.
얼마 지나지 않아 높은 울타리에 이르렀다. 이스라엘과 가자지구의 국경 역할을 하는 '그린라인'이었다.
수십m 거리를 두고 두 겹으로 선 철조망 경계선을 지나 10여분을 더 가자 목적지에 도착했다. 그린라인에서 불과 1.7㎞, 자동차로 속도를 내면 2분만에 닿는 거리라는 설명이 따라왔다.
이날 취재진은 이스라엘과 가자지구의 경계선 '그린라인'을 넘어 휴전 합의에 따른 이스라엘군 철수선 '옐로라인' 바로 앞에 위치한 이스라엘군 주둔지를 방문했다.
언덕 꼭대기에 건설된 이스라엘군 주둔지에 서니 가자시티가 한 눈에 들어왔다.
한때 인구 약 100만명이 모여 살던 도시였지만, 시야에 들어온 가자시티에서는 전혀 인기척도 느낄 수 없었다. 이상하리만치 고요한 것이 섬뜩할 정도였다. 기지 주변의 떠돌이 개들이 눈에 보이는 유일한 생명체였다.
구글 지도에 시장이나 이슬람사원 같은 눈에 띌법한 건물들이 표시된 장소들을 살펴봤지만, 눈에 보이는 것은 납작하게 주저앉은 콘크리트 무덤뿐이었다.
각자 카메라를 향해 마이크를 들고 선 기자들은 한결같이 "이제껏 많은 분쟁 지역을 다녀봤지만, 이렇게까지 처참한 폐허가 된 곳은 처음 본다"고 말했다.
기자는 사진을 촬영하기에 적절한 장소를 찾아다니던 중 발밑에 무언가 '와그작'하고 밟히는 것을 느꼈다. 고개를 내려보니 소총·기관총 탄피, 유탄 등이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었다.
불과 지난달까지도 이스라엘이 가자시티 장악을 목표로 강도높은 지상전을 벌이며 공습과 교전이 한창이었다는 사실이 머릿속에 새삼 다시 떠올랐다.
취재진과 동행한 이스라엘군 대변인 나다브 쇼샤니 중령은 "우리 바로 앞이 셰자이야 전장이었다"며 "하마스가 땅굴에 인질들을 숨겨두고, 모든 민가에 폭발물을 숨겨두던 지역"이라고 말했다.
쇼샤니 대변인은 이 주둔지 바로 앞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구상에 따라 그어진 이스라엘군의 철수선 '옐로라인'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전날에도 이스라엘군 진영인 이 옐로라인 안쪽에서 다량의 무기와 폭발물이 발견됐다며 "하마스는 매일같이, 어떨 때는 하루에 두번씩도 휴전 합의를 어기고 있다"고 비난했다.
지상전이 한창이던 약 두 달 전 이 주둔지 입구까지 하마스가 파둔 땅굴 입구를 발견해 부랴부랴 해체하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이 땅굴은 서쪽 가자시티 시내 쪽으로 수백m, 북쪽 이스라엘 텔아비브 방면으로 약 3㎞ 뻗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막사 생활이 무료했는지 이스라엘 장병이 한둘씩 취재진에게 다가와 말을 걸기도 했다. 촬영 중이던 기자를 향해 "저격수(sniper)"라고 외치며 장난을 치는 경우도 있었다.
한 군인은 지난달 이스라엘을 방문했던 트럼프 대통령의 중동특사 스티브 위트코프, 트럼프 대통령의 맏사위 재러드 쿠슈너 등이 이곳 주둔지도 찾았었다며 "방송이 내 얼굴도 찍어갔다"고 자랑했다.
이스라엘군이 허락한 취재 시간은 약 1시간30분만에 끝났다. 주둔지 밖으로 나가는 허용되지 않아 주민 인터뷰 등은 시도조차 하지 못했다.
이스라엘과 하마스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제시한 '가자지구 평화 구상'에 따라 지난달 9일 휴전에 전격 합의했다. 현재까지 집계된 이스라엘 측 사망자는 약 2천명, 하마스 측이 주장하는 팔레스타인 사망자는 6만8천여명이다.
휴전 합의에 따라 하마스는 생존 인질 20명을 전원 석방했고 남은 인질 시신 28구 중 21구를 송환한 상태다. 이스라엘도 자국에 수감됐던 팔레스타인 수감자들을 다수 풀어줬다.
하지만 시신 인도 절차가 일부 지연되자 지난달 28일 이스라엘은 이를 '합의 위반'으로 규정하고 만 하루동안 가자지구 공습을 재개하는 등 긴장감은 여전한 상태다.
전쟁 기간 가자지구 남부로 피란갔던 팔레스타인 가자시티 주민 수십만명이 돌아왔지만 아직 재건 단계는 시작도 되지 않은 가운데 기존 생활 터전을 잃고 어려움을 겪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