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닫기

"공정성 훼손"→"경영 재량" 정반대 판결…이상직 '이스타 채용 비리' 항소심 무죄 왜

중앙일보

2025.11.05 22:34

  • 글자크기
  • 인쇄
  • 공유
글자 크기 조절
기사 공유
수백억원대 이스타항공 횡령·배임 혐의로 전주교도소에 수감된 이상직 전 국회의원. 뉴시스


항소심, 징역 1년 6개월 원심 파기

‘이스타항공 채용 비리’ 혐의로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이상직(62) 전 국회의원이 항소심에서 전부 무죄를 선고받았다. 같은 공소 사실을 두고 1심은 “공개 채용의 공정성을 훼손했다”고 판단했지만, 항소심은 “경영진의 인사 재량 범위”라고 정반대 결론을 내렸다. 이 전 의원은 수백억원대 이스타항공 횡령·배임 혐의로 대법원에서 징역 6년이 확정돼 현재 전주교도소에서 복역 중이다.

전주지법 제1형사부(부장 김상곤)는 5일 업무방해와 뇌물공여 혐의로 기소된 이 전 의원에게 유죄를 선고한 원심을 뒤집고 무죄를 선고했다. 같은 혐의로 기소된 최종구(61) 전 이스타항공 대표는 일부 청탁 지원자와 관련한 업무방해만 유죄로 인정돼 벌금 1000만원, 김유상(58) 전 대표는 무죄를 선고받았다. 국토교통부 공무원 A씨(64)는 자녀 부정 채용을 부탁한 혐의(뇌물수수)로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받았다.

이 전 의원은 2015~2019년 이스타항공 객실인턴·부기장·일반직 채용 과정에서 외부 청탁을 받아 특정 지원자 147명(최종 합격 76명)을 합격시키도록 지시한 혐의로 기소됐다. 검찰은 “실제 불합격 점수를 받은 지원자들이 합격했고, 일부는 시험조차 치르지 않았다”며 이 전 의원에게 징역 4년을 구형했다. 반면 이 전 의원 측은 “사기업과 국가·공공기관은 인재 채용 목표와 취지가 다르기 때문에 채용 절차 지배 원리도 구별돼야 한다”며 “사기업은 헌법상 직업 활동의 자유가 보장되므로 채용상 재량권을 폭넓게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청탁으로 보기에도 인과 관계가 입증되지 않았다”며 무죄를 선고해 달라고 요청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와 전북민중행동이 2021년 3월 10일 전북 전주시 만성동 전주지법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배임·횡령과 대량 정리해고 주범"이라며 이스타항공 창업주 이상직 의원에 대한 구속 수사를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도덕적 비난 가능성과 법리적 판단은 별개”

1심을 맡은 전주지법 형사4단독(부장 김미경)은 2023년 12월 “이스타항공 창업자이자 대주주인 이 전 의원은 실질적 오너로서 채용 공정성을 훼손했다”고 판단해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했다. 함께 기소된 최종구·김유상 전 대표에겐 각각 징역 1년 2개월에 집행유예 2년,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채용 조건에 부합하고도 불합격한 지원자가 피해자이며, 인사 담당자 업무가 형해화됐다”며 “공개 채용은 누구에게나 공정한 기회가 주어져야 하며, 사기업이라도 재량의 범위는 무한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항소심 판단은 달랐다. 김상곤 부장판사는 “도덕적 비난 가능성을 별개로 하고 법리적 판단만 하겠다”며 “이 전 의원이 인사 담당자에게 구체적 불이익을 예고하거나 실제 제재를 가한 증거가 없다”고 했다. 애초 최종구·김유상 전 대표는 항소를 포기했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이 전 의원과 관련된 범죄 사실이라는 이유로 두 사람의 원심도 직권으로 파기했다.

이스타항공 노조가 2020년 9월 9일 전북도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스타항공의 '진짜 오너' 이상직 의원이 지난 7일 605명의 노동자들이 정리해고된 사태에 대해 책임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檢 “판결문 검토 후 상고 여부 결정”

재판부는 “인사 담당자들이 압박감을 느꼈다는 진술만으로는 자유의사가 제압됐다고 단정할 수 없다”며 “합격자 결정은 대표이사의 고유 권한으로, 경영진이 채용에 관여했다고 해서 곧 업무방해가 되는 것은 아니다”고 밝혔다. 뇌물공여 혐의에 대해서도 “이 전 의원이 A씨 자녀 채용에 직접 관여했다는 증거가 없다”며 무죄로 봤다. 반면 A씨는 “자녀가 불합격한 뒤 이스타항공 측과 접촉했고, 이후 비정상적인 절차로 합격했다”며 뇌물수수죄를 인정했다.

이번 판결을 두고 법조계에선 “채용의 재량 범위를 어디까지 볼 것인가”에 대한 논란이 예상된다. 1심은 ‘공개 채용 절차의 공정성·투명성’에 무게를 둔 반면 항소심은 법리적 구성요건 충족 여부를 중시한 뒤 “사기업의 인사권과 형사 책임은 구별돼야 한다”는 취지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전주지검 관계자는 “판결문을 검토한 뒤 상고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했다.

한편, 이스타항공 채용 비리 사건은 2021년 4월 시민단체 사법시험준비생모임 고발로 시작됐다. 경찰은 두 차례 무혐의 처분을 내렸지만, 검찰이 2022년 8월 재수사에 착수한 지 두 달여 만에 이 전 의원 등을 재판에 넘겼다.



김준희([email protected])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