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해고 대신 ‘희망퇴직’이 대기업 구조조정의 상시 수단으로 자리 잡고 있다. 내수 부진과 업황 악화로 인력 감축을 고민하는 기업들이 법적·사회적 리스크가 큰 정리해고 대신 자발적 퇴사를 유도하는 방식을 택하는 경우가 일반화된 것이다. 하지만 희망퇴직 신청자가 기대보다 많지 않아, 인력감축 효과가 크지 않다는 점은 고민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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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구조조정’ 확산
6일 재계에 따르면 올해 업황이 부진했던 주요 대기업 가운데 정리해고를 시행한 곳은 없었다. 석유화학(LG화학), 철강(현대제철), 가전(LG전자), 통신(SK텔레콤·LG유플러스), 유통(현대면세점·11번가) 등 주요 기업들이 사업 재편이나 수익성 중심의 리밸런싱을 명분으로 구조조정을 단행했는데, 방식은 모두 ‘희망퇴직’이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 희망퇴직을 반복한 기업도 적지 않다. 세븐일레븐, LG디스플레이, LG헬로비전 등이 대표적이다. 은행들은 매년 2000명 안팎의 인원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시행하며 인건비 절감과 조직 슬림화를 상시화하는 추세다.
기업들 사이에서는 “신청율이 낮더라도 ‘자발적 신청’ 형식을 유지할 수밖에 없다”는 말이 나온다. 정리해고는 법적 문턱이 워낙 높기 때문이다. 근로기준법상 ‘긴박한 경영상 필요성’이 인정돼야 하고, 해고 회피 노력(임금 동결·연장근로 중단 등)을 증명해야 한다. 법이 정한 절차에 따라 자발적 퇴사 유도를 먼저 시도해야 하고, 이후에도 해고 대상자를 합리적 기준으로 선정한 뒤 최소 50일 전 노조(또는 근로자 대표)에게 통보·협의해야 한다.
정리해고로 홍역을 치른 사례도 있다. 2009년 쌍용자동차 사태처럼 대규모 정리해고(희망퇴직 1666명·정리해고 980명)가 장기 파업과 손해배상 소송으로 번졌다. 이런 경험이 대기업들이 인력 구조조정 자체를 극도로 피하게 만들었다는 분석이다. 특히 기업 전체가 아닌 특정 사업부문만 적자를 낼 경우, 법원이 ‘긴박한 경영상 필요성’을 인정하더라도 해고 대상의 공정한 선정 기준을 입증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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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상 높아도 ‘썰렁’, 왜?
이런 배경 속에서 희망퇴직 보상 수준은 과거보다 훨씬 높아졌다. 업계 평균은 약 3년치 임금 수준이고, 최대 4억~5억원의 위로금에 자녀 학자금까지 포함된 파격 조건을 제시하는 사례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원율은 높지 않다. 거액의 위로금을 받더라도 업황 자체가 좋지 않아 퇴사 후 재취업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현대제철 포항공장은 기술직 1200명을 대상으로 최대 3년치 임금에 해당하는 위로금과 자녀 학자금 등의 조건을 내걸고 희망퇴직을 실시했지만, 지원자는 10명대에 그쳤다. 다만 최대 4억3000만원의 보상안 등을 내건 KT에서 약 2800명이 희망퇴직을 신청한 사례가 있다. 내부에서는 “자회사 신설에 따른 전출 압박이 있었고, 희망퇴직 신청으로 이어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한 제조 대기업 관계자는 “보상금이 아무리 많아도 업황이 불황이면 나가서 버틸 수가 없다”며 “결국 퇴사자는 재취업이 가능한 저연차 사원이나 가업 승계 계획이 있는 사람 정도”라고 말했다. 또 다른 대기업 관계자는 “정작 구조조정의 표적이 돼야 할 고연봉·저성과자는 버티고, 역설적으로 성과 좋은 젊은 인력들이 회사를 떠나는 경우가 태반”이라면서도 “그럼에도 정리해고를 택할 수가 없으니 어쩔 수가 없다”고 했다.
조상욱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노동팀장)는 “정리해고 요건이 워낙 엄격해 대기업이 쉽게 택하기 어렵다”며 “법적으로 문제의 소지가 적은 해고 회피 수단이 일정한 보상이 있는 ‘희망퇴직’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재민 노무사는 “기업들이 인건비 절감을 위한 인력 구조조정만 반복할 게 아니라, 신규 채용을 병행해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