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과 욕설·막말로 점철된 이재명 정부의 첫 국정감사가 급기야 국회의원 간 ‘배치기’로 마무리됐다. 올해 마지막 국감이자 현 정부 출범 후 첫 대통령실 국감이 진행된 6일 국회 운영위원회에서 김현지 제1부속실장 불출석을 문제를 놓고 여야가 충돌하다 배를 맞대며 눈을 부라리는 볼썽사나운 장면이 연출된 것이다.
운영위는 이날 시작부터 신경전이 이어지다 개의 한 시간이 안 돼 파행했고, 거친 몸싸움으로 번졌다. 채현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윤석열 정부에서 대통령실 법률비서관을 지낸 주진우 국민의힘 의원의 대통령실 국감 참여를 문제 삼은 게 도화선이었다.
채 의원은 “오늘(6일) 국감은 이재명 대통령실의 5개월도 있지만 윤석열 대통령실의 국정농단과 12·3 내란에 대한 진상규명도 있다”며 “윤석열 전 대통령의 법률비서관을 역임한 주진우 의원이 있는 건 이해충돌 소지가 매우 크다. 주 의원이 앉아 계실 곳은 피감기관 증인석”이라고 했다. 민주당 의원들도 “퇴장해야겠네”라며 맞장구를 쳤다.
주 의원은 즉각 신상 발언을 신청해 “제가 김현지 부속실장 관련된 의혹을 집중적으로 제기하니 민주당이 조직적으로 ‘입틀막’하고 있다. 대통령실을 그만둔 지 1년 6개월이 지났다. 이해충돌 문제를 제기하는 것을 부끄러운 줄 알라”고 반박했다.
그러자 “입틀막이 뭐냐”(민주당), “왜 소리를 지르냐”(국민의힘) 등의 고성이 섞이며 회의장은 아수라장이 됐다. 민주당 원내대표인 김병기 운영위원장은 “이렇게 계속 정쟁으로 감사가 진행되는 게 옳으냐”며 국감 시작 58분 만에 감사 중지를 선언했다.
신경전은 송언석 국민의힘 원내대표와 민주당 원내대표 비서실장인 이기헌 의원 간 ‘배치기’ 소동으로 번졌다. 먼저 국감장을 나서던 송 원내대표가 출입구에서 뒤를 돌아 이 의원에게 다가섰고, 이 의원도 물러서지 않고 맞서면서 물리적 충돌이 발생한 것이다. 배를 맞댄 두 사람은 한동안 서로를 노려봤다. 송 원내대표는 곧장 기자회견을 열어 “정회 후 회의장 문을 나오는 상황에서 이 의원이 다가오더니 그대로 몸을 부딪쳤다. 대낮에 테러와 유사한 폭력 행위가 발생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자 이 의원도 반박 회견을 통해 “‘국감을 방해하는 건 국민의힘 당신들’이라고 했더니 (송 원내대표가) 뒤돌아서서 제게 몸을 던지다시피 했다”고 주장했다. 서로 피해자라고 한 두 사람은 페이스북에도 “명백한 신체 폭행”(송 원내대표), “피해자는 저”(이 의원)라고 각각 글을 올렸다.
34분 만에 재개된 감사에서도 여야 간 배치기를 둘러싼 책임 공방이 이어졌고, 대통령실에 대한 질의는 감사 시작 100분 만에야 진행될 수 있었다.
여야는 김 실장의 국회 불출석과 각종 의혹을 둘러싸고 도돌이표 공방을 벌였다. 국민의힘 곽규택 의원은 “김현지 없는 김현지 국감”이라며 “총무비서관을 부속실장으로 전보해 출석 의무에서 빠지게 한 건 국회 무력화 시도”라고 했다. 주진우 의원은 민주당이 김 실장의 오전 출석만 허용하겠다는 입장에 대해 “피감 대상자가 원하는 만큼만 받는 감사가 어딨느냐”고 했다. 반면 민주당 김기표 의원은 “과거 최순실, 김건희 등 비선 조직에 의한 인사, 국정 전횡을 목도했었다”며 “그래서 (국민의힘이) 그런 억측과 공세를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자신들의 수준만 드러내는 꼴”이라고 했다.
국감이 진행되던 이날 오후 대통령실이 공지문을 통해 “대통령실은 국회 결정에 따라 국회 상임위에 출석한다는 입장에 변함없다”며 “이재명 대통령은 국회를 존중하는 차원에서 1부속실장의 운영위 출석이 가능하도록 경내 대기를 지시하셨고, 이에 1부속실장은 대통령의 경외 일정 수행 업무를 해야 함에도 대통령실에서 대기 중임을 알린다”고 밝힌 것도 논란이 됐다. 공지 이후 여야는 김 실장 증인 채택을 위해 국감 도중 막판 협상에 나섰지만 결국 협상은 무산됐다. 그러자 국민의힘은 “대통령은 대기를 하라는 지시쇼를 하는 것이고, 김현지 실장은 대기쇼를, 여당은 거부쇼를 벌이고 있다”(서지영 의원)고 꼬집었다.
국민의힘이 김 실장 관련 의혹을 파고들 땐 민주당에서 격앙된 반응이 나왔다. 박충권 국민의힘은 의원은 “꽁꽁 숨기려 하니 만사현통, 최고 존엄, 그림자 실세 얘기가 나오는 것”이라며 “이러니 김 실장이 ‘여사’란 얘기를 듣는 것이다. 김혜경 여사보다 더 위에 있느냐”고 했다.
그러자 김병기 위원장은 ‘다른 사람을 모욕하거나 사생활에 대한 발언을 해서는 안 된다’는 국회법 조항을 읊으며 “계속 회의장에서 그런 발언을 할 경우 발언권을 중지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전용기 민주당 의원도 “출석 못 해서 마이크도 없는 김 실장을 계속 모욕하고 비난하고 있다”고 거들었다. 이에 국민의힘에서는 “편파 진행을 한다”고 항의했고, 김 위원장은 “진짜로 편파적으로 한 번 해 볼까요”라며 “편파적으로 하겠다”라고 맞받았다.
신경전을 벌이던 여야는 주진우 의원이 국감 도중 페이스북에 쓴 글을 두고 공방을 주고받다 재차 파행했다. 주 의원은 “내가 김현지 출석 문제를 거론하자, 김병기 위원장은 황급히 막았다. 김현지가 김병기 원내대표보다 권력 서열이 위”라고 썼고, 김 위원장은 “위원장이 이런 대우를 받아가면서까지 위원회를 해야 되느냐. 위원장한테 야지(‘야유’의 일본어) 놓는 페이스북이나 올리고”라고 반발했다.
이에 주 의원은 “함부로 말한 적 없다”고 했고, 서미화 민주당 의원은 “의원님은 검사가 아니라 삼류 소설가 같다”고 했다. 이에 유상범 국민의힘 의원이 ”인격 모독“이라고 외치는 등 여야 간 고성이 펼쳐지자 김 위원장은 감사를 중지시켰다가 1시간 30분만에 재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