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3월 20일 TV를 지켜보던 여권 고위 인사 A가 외마디 소리를 질렀다. 그날은 인수위가 꾸려진 뒤 맞은 첫 일요일이었다. 1987년 대통령 직선제 개헌 이후 역대 최소 격차인 0.73%포인트 차로 대선 승리자가 된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첫 기자회견이 예고된 날이기도 했다. (이하 경칭 생략)
A가 놀란 건 그 기자회견 직전 TV 화면 아래 흐르던 자막을 보고서였다. ‘대통령 집무실, 용산 국방부 청사로 이전’이란 자막이었다.
" 취재 똑바로 안 하는구먼. 아니면 방송사고인가? "
그는 그 자막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가 없었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바로 며칠 전 윤석열로부터 직접 “용산은 문제가 많더라”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청와대를 떠나겠다는 건 윤석열의 대선 공약이었다. 그는 “광화문 시대를 열겠다”고 여러 번 다짐했다. 그리고 그는 문재인 전 대통령과 달리 식언(食言)할 생각이 없었다. 당선 직후부터 광화문에 있는 정부서울청사 등으로의 이전 가능성을 타진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대선 국면에서 단 한 번도 거론된 적 없었던 장소가 다크호스로 부상했다. 용산이었다.
다음은 A의 이야기다.
" 제가 보기에 용산은 여러모로 문제가 많은 곳이었어요. 그래서 용산 이전을 서두르면 안 되는 이유를 적은 서류들을 한 뭉치나 들고 윤 당선인을 설득하러 갔어요. 그런데 윤 당선인이 먼저 ‘용산에 가보니까 문제가 많더라고요’라고 말했어요. 그래서 ‘아, 용산으로 가지 않겠다는 뜻이구나’라고 이해했죠. "
한 템포를 쉰 A는 말을 이었다.
" 그런데, 하루나 이틀쯤 지났을까, TV 하단에 ‘대통령실, 용산 이전’인가 뭐 그런 자막이 흘러나오더라고요. 처음에는 안 믿었죠. ‘자막이 왜 이러지? 기자들이 취재를 똑바로 안 하네’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몇 분 후 윤 당선인이 직접 대통령실 용산 이전 발표를 하더라고요. 경악했죠. "
A뿐만이 아니었다. 윤석열에게 용산 이전 반대 의견을 전했던 많은 이들이 그걸 보고는 함께 한탄했다.
물론 용산은 길지(吉地)다. 경복궁이 있는 광화문에서 한강으로 이동하는 길목에 위치한 덕택에 조선 시대 물산의 집하장이었던 노른자위 땅이다. 1882년 임오군란을 계기로 조선에 들어온 청나라 군대가 그 요충지를 차지했고, 뒤이어 들어온 일본군과 미군도 거기에 터를 잡았다. 미군이 떠난 뒤 용산 개발이 본격화했고, 그 땅을 주목한 정치권 인사들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너무 갑작스러웠다. 게다가 이미 그곳에 자리 잡고 있던 국방부를 쫓아내야 했다. 반대 여론이 만만치 않았던 이유다. 민주당 등 반대 세력뿐만이 아니었다. 윤석열의 측근이나 멘토들 역시 마뜩잖아했다.
청와대 이전 TF팀에서 일했던 B는 이렇게 기억했다.
" 용산으로 가는 걸 거의 모두가 반대했어. 친윤계 인사들도 그랬고, 당선인의 멘토인 김한길 국민통합위원장까지 반대했거든. "
보수 진영 유력 인사인 C도 고개를 갸웃거렸다.
" 용산으로 이전한 건 내가 봐도 미스터리야. 용산으로 당장 들어가야 한다고 한 정치인 그룹이 거의 없었는데, 누구한테 무슨 말을 듣고 단번에 용산으로 들어갔는지. 윤석열이 당시 최고 실세라던 장제원 말도 안 들었어. 윤석열이 나한테 ‘장제원이 지금 옮기지 말고 광화문 시대부터 연 다음에 차차 용산으로 갈 준비가 되면 그때 가자고 2단계 구상을 제안했는데 내가 안 들었다’고 하더라고. "
윤석열은 도대체 왜 용산 이전을 밀어붙였을까. 당시 상황을 잘 아는 윤석열의 최측근 D는 ‘실록 윤석열 시대’ 취재팀의 질문을 받은 뒤 한숨을 내쉬었다. 그가 뒤이어 꺼낸 말은 충격적인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