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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째 구토" 돌연 눈 시뻘게졌다…밭은 누렇게 시든 '죽음의 땅' [영상]

중앙일보

2025.11.06 21:34 2025.11.06 2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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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일 오후 충북 음성군 대소면 미곡리에서 만난 한 주민이 화학물질 피해로 잎 시듦 증상을 보이는 무를 살펴보고 있다. 김성태 객원기자


눈 퉁퉁 붓고 충혈된 주민들 “설사도 나온다”

지난 6일 충북 음성군 대소면 미곡리의 한 무밭. 다 자란 무가 땅 위로 불쑥 튀어나올 만큼 컸지만, 잎은 황색 빛을 띠고 있었다. 4900㎡(약 1480평) 규모 밭에 심은 무가 온통 그랬다. 이 밭에서 직선으로 300여m 떨어진 화학물질보관 업체에선 지난달 21일과 26일 두 차례에 걸쳐 ‘비닐아세테이트 모노머’ 900L가 누출됐다. 이 물질은 휘발성이 높은 자극성 유기용제로, 농작물 표면에 닿으면 조직 손상과 탈색·갈변을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곡1리 마을회관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노지 밭작물 상당수가 잎 시듦 증상을 보였다. 배춧잎을 움켜쥐자 가루처럼 부서졌다. 주민 이모(63)씨는 “미곡리에 있는 단무와 쪽파, 배추 같은 농작물이 화학물질 피해로 잎이 시들고, 누렇게 변해버렸다”며 “밭 2곳에 나누어 심은 쪽파도 잎끝이 시들고, 생장이 느려져서 조만간 피해 신고를 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음성군에 따르면 이번 화학물질 누출 사고로 미곡·수태·삼호리 등 농경지 82.8㏊가 피해를 본 것으로 집계됐다. 군에 신고하지 않은 주민이 많다는 것을 고려하면, 피해 규모는 더 늘 것으로 예상한다. 주민과 인근 공장 직원 등 94명이 두통·매스꺼움·구토 증세를 보였고, 이 중 3명은 입원 치료 중이다.
7일 오후 충북 음성군 대소면 미곡리의 한 무밭이 화학물질 유출 피해로 황색 빛깔로 변해있다. 김성태 객원기자
7일 오후 충북 음성군 대소면 미곡리의 한 무밭이 화학물질 유출 피해로 황색 빛깔로 변해있다. 김성태 객원기자


무·배추·쪽파 노지 작물 피해 집중

충주화학재난합동방재센터는 지난 5일 사고가 난 업체에 저장돼 있던 ‘비닐아세테이트 모너머’를 전량 반출한 상태다. 다만 군은 화학사고 합동조사단의 유해성 등 조사가 끝날 때까지 사고 지점 인근에서 생산한 농작물의 섭취와 반출을 금지했다. 피해 농경지는 원형을 보존하도록 조처했다.

관계 당국이 사고 수습에 나섰지만, 주민들은 불안감을 호소하고 있다. 온새미 마을에서 만난 임형규(58)씨는 하얀 서리가 앉은 것처럼 변한 냄비를 먼발치서 바라보고만 있었다. 목 뒤엔 부스럼 자국이 선명했다. 임씨는 “유해 물질이 손에 묻을 수도 있어서 냄비를 며칠째 수돗가에 방치하고 있다”며 “며칠 동안 설사와 구토 증세가 반복됐다. 사고 후유증이라고 증명할 길도 없어서 답답하다”고 했다.

임씨는 이어 “1차 사고 때 온 재난안전문자가 엉터리였다”며 “장소를 특정하지 않고 ‘대소면’이라고만 돼 있어 창문을 열어놓고 잠을 잔 마을 주민이 많다. 바람을 타고 유해물질이 집 안에 많이 들어왔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미곡리에서 만난 주민 대부분은 눈이 붓거나 충혈돼 있었다. 김영희(73)씨는 “나중에라도 후유증이 생길까 봐 걱정”이라며 “사고가 난 지 열흘이 넘었지만, 머리가 띵하고 미열이 있고 기침도 계속 나온다”고 말했다.
7일 충북 음성군 대소면에서 한 주민이 잎 시듦 증상을 보이는 배추를 가르키고 있다. 김성태 객원기자
충북 음성군 대소면의 한 방울토마토 농장이 지난달 발생한 화학물질 누출 사고로인해 잎이 황갈색으로 변해있다. 최종권 기자


“같은 업체서 2번 누출 사고, 화난다”

주민 도모(70)씨도 비슷한 증상을 보였다. 도씨는 “며칠째 진통제를 먹어도 두통이 가라앉지 않는다”며 “1차 누출 땐 종일 창문을 닫고 집에 있었지만, 2차 사고 때는 밖에서 마늘을 심다가 뒤늦게 유출 소식을 알았다. 그 이후로 두통과 매스꺼움 증상이 지속하고 있다”고 했다. 도씨는 집 주변에 심은 배추·콩·대파·무를 폐기 처분할 상황에 놓였다. 그는 “농작물을 내다 파는 것은 고사하고, 김장 재료도 없어 총각무와 대파를 사다가 김장을 하고 있다”며 “피해 보상이 하루빨리 이뤄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조모(73)씨는 방울토마토 농사를 망쳐서 울상이었다. 비닐하우스 3개 동(2160㎡)에 빼곡하게 들어선 방울토마토가 잎이 갈색으로 변한 채 말라죽고 있었다. 조씨는 “토마토 1t 정도를 출하할 수 없게 돼 손해가 막심하다”며 “위험한 화학 물질을 다루는 업체가 2번이나 같은 사고를 냈다는 게 화가 난다”고 비판했다. 조씨는 “사고 이후 수확한 벼도 저장고에 쌓아둔 것으로 안다”며 “화학물질이 농토에 스며들어 내년 농사에 지장이 있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한편 원주지방환경청 등으로 구성된 사고조사단은 건강 영향 조사와 농작물·토양·수질 등에 대한 정밀 조사를 벌여 정확한 피해 규모를 산정할 계획이다. 이들이 추정하는 잠정 피해 범위는 사고 지점 반경 3.5㎞다. 조사단은 경찰 등과 함께 화학물질 누출 경위를 찾기 위한 현장 감식을 진행할 예정이다. 조병옥 음성군수는 “피해 지역 주민이 하루빨리 일상을 되찾을 수 있도록 사고 조기 수습과 피해 방지대책 수립에 모든 군정 역량을 집중하겠다”고 말했다.



최종권([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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