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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꽃 스카프 두르고 "내 몸이 증거"…45년 기다린 그녀들 눈물 [5·18 성폭력 집단 손배소]

중앙일보

2025.11.06 23:04 2025.11.06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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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18 성폭력 피해자들이 7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국가 상대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 참석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 등에 의한 성폭력 피해자 및 가족 17인은 이날 법원에서 45년 만에 국가를 상대로 첫 재판에 나섰다. 뉴스1
" 우리는 생존 피해자입니다. 우리의 몸은 역사의 현장이며, 진실의 증거입니다. "

7일 오전 9시40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 정문에 붉은 꽃이 그려진 고운 스카프를 목에 두른 13인의 여성들이 한데 모여 이렇게 말했다. 이들은 5·18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과 경찰 등으로부터 성폭력을 당한 피해자들이다. 5·18 성폭력 피해자 모임 ‘열매’는 이날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리는 5·18 성폭력 피해자들의 첫 집단 손해배상청구소송 재판을 앞두고 기자회견을 열었다. 평화를 상징하는 붉은 열매와 푸른 잎을 들고 “우리는 열매다”를 연호했고, 한 피해자는 도중에 목이 메어 구호를 중단하고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이날 오전 10시10분 서울중앙지법 민사 22부(재판장 최욱진)는 5·18민주화운동 성폭력 피해자와 가족 등 17인의 손해배상청구소송 1차 변론기일을 진행했다. 2023년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가 성폭력 사건에 대한 국가 책임을 인정한 뒤 열리는 첫 법정 절차다. 사건 발생 해로부터는 45년 만이다.

원고 측을 대리하는 하주희 법무법인 율립 변호사는 “계엄군이 외곽 봉쇄, 광주 재진입, 연행, 구금 등 헌정 질서 파괴 행위를 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강간과 강제추행”이었다며 “비상계엄이 선포되는 동안 이런 일이 발생할 것이 예정됐음에도 아무런 규율을 하지 않은 피고(국가)에 책임이 있다”고 소송 취지를 말했다. 손해배상청구 금액은 약 40억원 규모다.


7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5·18 성폭력 피해자 첫 재판 관련 기자회견에서 5·18 성폭력 피해자 성수남씨가 생각에 잠겨 있다. 뉴스1

한편 정부 측 대리인은 “원고들이 주장하는 사건의 소멸시효가 완성됐다”며 피해 행위가 발생한 1980년 5월을 기준으로 배상 가능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고 봤다. 현행법에 따르면 피해자가 손해와 가해자를 안 날로부터 3년, 불법행위가 있던 날로부터 5년이 지나면 소멸시효가 완성된다. 현재로선 이미 배상 청구가 가능한 기간을 지났단 취지의 주장이다. 법정에서 사실관계를 다툴 여지가 있다고도 답했다. 조사위 결과 진상규명 불능 결정을 받은 고인들도 있기에 실제 성폭력 피해가 있었는지 확인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하 변호사는 성폭력 피해에 대한 진상규명이 결정이 내려진 2023년을 기준으로 하면 아직 3년이 지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재판부는 “사실관계에 대해 피고가 유보적이라 원고가 관련 자료를 피고에게 제출해야 한다”고 했다.


다음 재판은 내년 1월 16일 열릴 예정이다. 2차 변론기일이 정해지자 방청석에 앉아있던 한 피해자는 “빨리 해 주십시오. 45년 기다렸어요, 빨리 좀…”이라며 눈물을 터뜨리기도 했다.

7일 오전 9시40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 정문에서 5·18 성폭력 피해자 모임 ‘열매’의 기자회견이 끝난 후, 성폭력 피해자 성수남씨가 5·18민주화운동 당시 본인이 찍었던 사진을 보여주고 있다. 오소영 기자

재판이 끝난 뒤 하 변호사는 “과거사 사건에선 진실규명 결정 후 3년 내에 소를 제기하면 된다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있었다”며 “중대한 인권 침해의 경우 객관적 소멸시효를 적용하지 않는다는 헌법재판소 판례도 있으니 기존 법리대로 정리하면 될 것 같다”고 설명했다.



오소영([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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