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비상계엄을 수사 중인 내란특검팀(특별검사 조은석)이 7일 조태용 전 국가정보원장에 대해 형법상 직무유기 등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조 전 원장의 구속 전 피의자 심문은 오는 11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다.
박지영 내란특검보는 이날 브리핑에서 “조 전 원장에게 정치 관여 금지 위반(국정원법), 직무유기, 위증, 증거인멸, 허위 공문서 작성 및 행사, 국회증언감정법 위반 등의 혐의를 적용해 영장을 청구했다”며 “국정원장의 지위와 직무 등을 고려할 때 사안이 중대하고 증거 인멸 우려가 있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국정원장은 내란·외환 등 국가안보 관련 정보를 수집·작성·배포하는 직무를 수행한다”며 “국정원장이 수집한 정보를 얼마나 신속하게 배포하고 어떻게 전달하느냐에 따라 국가 대응 시스템이 달라지는 만큼 위기 상황에서 국정원장의 역할과 책임은 크다”고 설명했다.
조 전 원장은 지난해 12월 3일 비상계엄 선포 당일 오후 8시50분 대통령실로 호출됐다. 특검팀은 조 전 원장이 윤석열 전 대통령의 담화 이전에 비상계엄 계획을 사전에 인지하고도 이를 국회에 보고하지 않았다고 본다. 국정원법은 국가안보에 중대한 상황 발생 시 국정원장이 대통령과 국회 정보위원회에 지체 없이 보고하도록 규정한다.
특검팀은 조 전 원장이 국외·북한 정보 수집을 총괄하는 기관장으로서 비상계엄의 요건이 충족되지 않았고 국무회의 등 정상 절차가 작동하지 않은 상황을 인지할 수 있었다고 판단한다. 그럼에도 국회가 비상계엄 해제 표결을 하거나 해제 심의 국무회의가 열릴 때까지 별도 보고를 하지 않은 것은 직무유기라는 게 특검팀의 시각이다.
특검팀은 조 전 원장이 비상계엄 당일 국정원 정무직 회의 직후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으로부터 “방첩사령부가 이재명과 한동훈을 잡으러 다닌다”는 취지의 보고를 받았음에도 국회에 전달하지 않은 점도 직무유기로 판단한 것으로 파악됐다.
당시는 계엄군이 이재명 민주당 대표와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를 체포하려 했다는 의혹이 처음 제기되던 상황이었다. 특검팀은 국내 최고 정보기관의 수장인 조 전 원장이 홍 전 차장의 ‘정치인 체포조’ 보고를 부인하면서 사회적 혼란을 초래했고, 이러한 행위가 직무유기 혐의의 중대성을 더욱 키웠다고 보고 있다.
이 밖에도 조 전 원장은 윤 전 대통령 헌법재판소 탄핵심판 과정에서 특정 정치세력에 유리한 방향으로 정보 제공을 했다는 ‘정치 관여’ 의혹도 받는다. 헌재에서 윤 전 대통령에게 불리한 증언을 한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의 동선이 담긴 폐쇄회로(CC)TV 영상을 국민의힘에만 제공하고, 자신의 동선이 담긴 영상은 더불어민주당에 제공하지 않은 점이 문제로 지적된다.
국회와 헌법재판소 증언 과정에서 “비상조치 관련 발언을 들은 적 없다”고 말한 부분 역시 위증 혐의가 적용됐다. 특검팀은 조 전 원장이 지난해 3월 삼청동 안가에서 열린 만찬에서 윤 전 대통령의 “비상 대권밖에 방법이 없다”는 취지의 발언을 들었음에도 기억에 반하는 진술을 했다고 판단했다.
특검팀은 지난달 15일·17일과 이달 4일까지 세 차례 조 전 원장을 조사했으며, 범죄 중대성과 증거인멸 우려 등을 고려해 구속 필요성이 있다고 보고 영장을 청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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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수사기간 연장…12월 14일 종료
한편 오는 14일 수사활동 종료 예정이던 특검팀은 대통령실로부터 수사기간 연장을 승인받아 내달 14일까지 활동을 이어간다. 특검팀은 다음 주까지 무인기 평양 침투 의혹 등 외환 사건을 일단락하고, 조 전 원장과 박성재 전 법무부 장관, 추경호 국민의힘 의원에 대한 수사도 최대한 신속히 마무리한다는 방침이다.
남은 기간에는 내란 관련 고소·고발 사건의 처분 작업과 국회 제출용 최종 보고서 작성에 집중한다. 박 특검보는 “내란·외환 의혹과 관련해 저희가 가장 많은 진술과 자료를 확보한 만큼 특검에서 종결할 수 있는 사건은 최대한 종결하겠다”며 “특검팀이 결론을 내리지 못하면 사건이 국가수사본부로 넘어가 국가 전체 수사력에 부담이 될 수 있는 만큼, 특검 차원에서 판단할 수 있는 부분은 모두 판단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