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관세 협상 결과가 담길 조인트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 발표가 안보 분야 문안 조정 문제로 지연되고 있다고 대통령실이 7일 밝혔다. 지난달 29일 한·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원자력 추진 잠수함(원잠) 건조 논의가 추가되면서 이견이 돌출했고, 그 중 한국과 미국 중 어디에서 건조할지가 핵심 쟁점 중 하나라고 한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7일 기자들을 만나 “(팩트시트의) 안보 분야에서 일부 조정이 필요해 (미국과) 얘기가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라며 “미국에서 문건을 검토하면서 의견을 추가로 수렴하는 작업을 하느라 시간이 걸리고 있다”고 말했다. 팩트시트 발표 시점에 대해서는 미국 측 답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며 “언제가 될지 특정해 말하기는 조심스럽다”고 했다. 그러면서 “상황이 조금씩 계속 바뀌어 가기 때문에 앞으로 어떻게 예측해야 할지 사실 확실치 않다”며 “우리로서는 일관된 입장을 견지하면서 인내심을 가지고 우리 입장을 관철하도록 계속 협의를 하고자 한다”고 했다.
이 관계자의 설명을 종합하면 정상회담 전까진 한·미 간에 통상 분야 협상이 치열했고, 안보 분야 협상은 거의 마친 상태였다. 그러나 정상회담에서 ‘관세 15% 인하, 3500억 달러 대미 투자’를 골자로 한 통상 협상이 타결되고, 한국이 요구한 원잠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승인하면서 통상·안보 분야의 팩트시트 완성 속도가 달라졌다. 이 관계자는 “통상 부분에서 이견은 (정상회담 이후) 지금까지는 없다”며 “안보 쪽에서 논의가 다시 열린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의 원잠 도입이라는 큰 틀은 한·미가 동의한 상황이지만, 세부적인 문안 작성 과정에서 한·미 간 이견이 좁혀지지 않고 있다. 외교 소식통은 “미국은 원잠 건조를 미국 필리조선소(필라델피아 조선소)에서 하라고 주장했고, 한국은 한국에서 건조한다고 했는데, 이 부분이 부딪힌 지점이었다”고 전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도 “(한·미 논의 과정에서) 어디서 (원잠을) 짓느냐는 말도 있었다”고 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아직 미국 측에서 명확한 답변을 하지 않은 상태라고 한다.
원잠을 한국에서 건조하겠다는 대통령실 입장은 확고하다. 이 관계자는 “(한·미) 정상 간 대화에서는 한국에서 짓는 것으로 논의한 사안”이라며 “(정상회담 대화) 기록을 보면 이재명 대통령은 ‘우리가 여기(한국)에서 짓는다’라고 말한 부분이 나와 있다”고 전했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도 전날 국회 운영위원회에서 “(원잠을 건조하기 위해) 필리조선소에 잠수함 시설에 투자하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다”며 “한국에서 만드는 방안을 추진하려 한다”고 했다.
대통령실은 원잠을 한국에서 만들고, 원잠에 들어가는 소형 원자로도 한국이 개발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다. 연료인 농축 우라늄은 미국에서 제공받되 20%(우라늄-235 비율) 정도의 저농축 우라늄을 받는 쪽으로 대통령실은 미국과 논의하고 있다. 미국의 승인을 받아 우라늄을 자체 농축하는 방안도 거론됐지만, 대통령실은 이는 고려하지 않고 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기술적으로는 (자체 농축이) 가능한데, 현실적으로 가격 대비 효용이 있는지 모르겠다”며 “지금까지의 생각은 (미국으로부터 우라늄을) 도입하는 게 낫지 않느냐는 쪽”이라고 말했다.
안보 분야 팩트시트엔 원잠을 비롯해 우라늄 농축·재처리와 한·미 동맹의 현대화 내용도 들어갈 예정이라고 이 관계자는 설명했다. 그는 “팩트시트엔 일단 양 정상이 논의한 주요 이슈는 다 커버한다”고 했다.
통상 협상과 관련해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 출석해 “자금을 조달할 때 이자 또는 배당을 활용하고, 부족하면 해외에서 (조달)하기 때문에 외환보유액은 4200억 달러 수준을 계속 유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3500억 달러(511조원) 대미 투자로 외환보유액이 감소할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한 답변이었다.
국민의힘은 팩트시트 발표가 늦어지는 데 대해 “또다시 양치기 소년이 되고 있다”고 대통령실을 비판했다. 송언석 원내대표는 페이스북에 “어제(6일) 운영위에서 강훈식 대통령비서실장은 ‘이번 주 안에 팩트시트 발표가 이뤄질 것’이라 자신 있게 언급했다”며 “그러나 불과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아 대통령실이 ‘팩트시트 마무리가 어렵다’고 말을 바꾸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강 실장이 국회에서 위증한 것”이라고 했다.
━
이 대통령 지지율 6%p 오른 63%…대미 협상 ‘잘했다’ 55%, ‘잘못했다’26%
이런 가운데 한국갤럽이 지난 4~6일 조사해 7일 발표한 여론조사에서 이재명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율은 전주 대비 6%포인트 상승한 63%를 기록했다. 지난 9월 1주차 이후 두 달 만의 최고치다. 긍정 평가자에게 그 이유를 물은 결과 ‘외교’가 30%로 가장 높았다.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와 이를 계기로 열린 한·미 정상회담 등이 여론에 긍정적 영향을 준 것이다.
대미 무역 협상과 관련해 지금까지 우리 정부가 ‘잘했다’는 55%, ‘잘못했다’는 26%로 협상 결과에 국민 다수는 긍정적이라는 결과도 나왔다. 또한 경주 APEC 정상회의가 ‘우리 국익에 도움됐다’는 74%, ‘도움되지 않았다’는 13%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