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대 노총이 65세 정년연장의 연내 법제화를 추진하고 있다. 노동계는 임금 손실 없이 정년을 65세까지 늘리자고 주장한다. 고령화 시대의 고용안정과 국민연금 수급 연령과의 일치를 위한 조치라는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그제 민주노총을 방문해 “노동조합은 이재명 정부의 가장 강력한 지지 세력”이라며 지지 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이 같은 획일적 정년연장은 대기업·공공부문의 ‘철밥통 보호’로 흐를 수 있는 데다, 청년 고용 축소와 산업 경쟁력 약화를 부를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필요한 현실적 대안은 무엇일까.
이 문제를 한국보다 먼저 직면한 나라는 일본이다. 일본은 고도성장기 장기근속자 우대 차원에서 ‘55세 정년 보장’이 일반화됐으나 평균수명 증가에 맞춰 정년을 계속 상향했다. 1986년 고령자고용안정법 제정 이후 94년에는 정년 60세를 의무화했고, 2013년에는 65세까지의 고용확보 조치를 도입해 올해 4월부터 전면 시행했다. 대다수 기업이 이미 준비를 마쳤기 때문에 큰 혼란이 없었다. 나아가 일본 정부는 2021년 관련법을 또 개정해 70세까지의 고용확보 노력 의무를 신설했고, 여러 기업이 이에 호응하고 있다.
일본이 특히 주목받는 이유는 정년을 일률적으로 늘리지 않았다는 점이다. 기업은 ▶정년폐지 ▶정년연장 ▶재고용(고용연장) 가운데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업종·직무·조직 여건에 맞는 방식을 노사가 자율적으로 결정하도록 했다. 대다수 기업은 재고용 방식을 도입했고, 그 결과 60~64세 취업률은 남성 84%, 여성 65%에 달한다.
일본은 용어 선택에서도 다르다. ‘정년연장’이 아니라 ‘고용확보 조치’라고 부른다. 정년을 일률적으로 높이는 대신 55세를 정점으로 임금을 동결한 뒤 점진적으로 삭감하고, 직무 조정과 역할 재설계를 통해 보수를 합리화했다. 흔히 말하는 ‘연공급 일본 모델’은 고용확보 조치 이전의 이야기일 뿐이다. 숙련 인력을 유지하되 인건비 총액이 폭증하는 것을 막아 청년의 고용 안정성을 동시에 달성했다. 결국 일본은 정년을 늘린 게 아니라 고령화 맞춤형으로 노동 생애 전체를 재설계한 것이다.
노동계는 “정년연장이 청년 고용 축소로 이어진다는 주장은 근거가 없다”고 주장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고령 근로자 1명이 늘어나면 청년 고용은 0.4~1.5명 감소한다. 더구나 정년연장 논의가 대기업·공공부문 중심으로 이뤄지는 점도 문제다. 인건비 부담이 큰 중소기업은 임금 구조 개편 없는 정년연장을 감당하기 어렵다. 이처럼 노동계의 주장이 현실성이 없으니 대통령 공약을 실현하기 위한 여당 정년연장 특별위원회는 출범 7개월째 진척이 없다.
일본에는 외국인 노동자가 230만 명에 이른다. 부족한 노동력을 이미 많은 외국인에 의존하고 있다. 한국의 가까운 미래 모습이다. 그만큼 고령화와 노동력 부족에 대응한 정년연장은 시대적 흐름이다. 중국조차 올해부터 15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정년을 연장하기 시작했다. 한국 역시 2033년부터 국민연금 수급연령이 65세로 높아지는 만큼 정년 조정은 불가피하다. 그러나 임금 구조는 그대로 둔 채 나이만 올리는 방식은 현실성이 없다.
지금 필요한 것은 일본처럼 임금체계 개편과 선택 가능한 고용연장 방식을 결합한 현실적이고 지속가능한 해법이다. 노동계가 요구하는 연내 입법이 이루어져도 새로운 제도 시행까지는 빨라야 2027년이다. 갈등만 반복하며 골든타임을 놓칠 것이 아니라, 고령사회 노동시장 구조에 맞는 합리적 대안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