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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매몰자 13시간 버텨줬는데 못 구해 가슴 무너졌다" [특수구조대가 전한 현장]

중앙일보

2025.11.08 18:59 2025.11.08 2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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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시간 넘게 버텨줬는데 끝내 구조하지 못하고 되돌아 나와야 했을 때는 정말로 가슴이 무너졌습니다."

지난 6일 보일러 타워가 무너져 7명이 매몰된 울산화력발전소 사고 현장에서 밤샘 구조작업을 벌였던 부산 119특수대응단 소속 정형호 특수구조대원은 8일 중앙일보와의 전화 통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정 대원은 6일 오후 3시 45분쯤 무너진 구조물에 팔 등 상체 일부가 낀 김모(44)씨 구조작업에 오후 6시 30분부터 투입된 특수구조대 중 한 명이다.

정 대원을 비롯해 대구·부산·경북 등에서 온 특수구조대원들은 현장에 도착한 뒤 말문이 막혔다고 한다. 구조작업에 베테랑이었던 그들도 높이 60m 큰 타워(5호기)가 폭격을 맞은 듯 폭삭 주저앉아 있고 내부가 엿가락처럼 뒤엉켜 있는 모습을 보자 순간 어디서부터 손을 써야 할지 막막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무너진 건물 안에 생존자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서는 모두 정신이 번쩍 들어 구조작업에 들어갔다.
울산 화력발전소 붕괴된 타워 내부로 구조활동을 위해 들어가고 있는 부산 119특수대응단 특수구조대원들의 모습. 사진 부산119특수대응단

김경진 기자
정 대원은 “처음 붕괴된 타워 내부로 진입할 때만 해도 혹시나 추가로 잔해가 무너지지 않을까, 옆에 위태로워 보이는 두 타워(4호기와 6호기)는 안전할까 하는 두려운 마음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라며 “하지만 생존자의 얼굴을 보는 순간 그런 생각은 사라지고 오직 구해야겠다는 생각만으로 교대 시간도 잊고 구조작업을 했다”고 말했다. 실제 김씨는 당시까지만 해도 소방대원과 의사소통이 가능할 정도였다고 한다.

하지만 조금만 더 하면 구할 수 있겠다는 생각과 달리 구조작업은 쉽지 않았다. 마치 미로처럼 대형 H빔과 철근이 뒤섞여 있어 입구에서 불과 2~3m 앞에 얼굴이 보이는 김씨에게 접근하는 접근로를 만들기도 쉽지 않았다고 한다. 절단기로 철근을 자르고 유압프레스 등 장비를 이용해 수풀처럼 빽빽한 구조물들의 틈을 벌리며 조금씩 접근한 뒤 마침내 확보한 통로로 여러 명의 구조대가 교대로 들어가 김씨를 구조하려고 사력을 다했지만 역부족이었다. 김씨의 팔 등 상체 일부가 사실상 압착돼 있어 더는 손을 쓸 방법이 없어서였다. 중장비가 있었지만 이동 시 진동으로 인근 타워의 추가 붕괴가 우려돼 접근도 할 수 없었다.
울산 화력발전소 붕괴된 타워 내부에서 구조활동을 하고 있는 부산 119특수대응단 특수구조대원들의 모습.부산119특수구조대 글씨가 적힌 잠바를 입고 있는 왼쪽 엉덩이 부분만 보이는 것이 정형호 대원이다. 사진 부산119특수대응단
울산 화력발전소 붕괴된 타워 내부에서 구조활동을 하고 있는 부산 119특수대응단 특수구조대원들의 모습. 사진 부산119특수대응단

하지만 구조대원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김씨가 “아프다. 숨을 못 쉬겠다”고 하는 말을 할 때마다 “좀만 더 힘을 내라”며 어떻게든 방법을 찾으려고 애쓰면서 진통제 주사를 놓고 모포 등을 덮어 보온 조치를 하는 등 끝까지 사력을 다했다. 하지만 결국 김씨는 이날 오전 4시 53분쯤 심폐소생술(CPR)을 했지만 사망했다.

정 대원은 “내일(9일) 또 사고 현장에 가야 하는데 집으로 돌아온 뒤에도 (김씨를) 구하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아직도 가슴이 먹먹하고 우울하다”며 “하지만 현장에 아직도 매몰된 분들과 실종자분들이 있고, 애타게 기다리는 가족분들이 있으니 내일도 단 1%의 가능성이라도 기적처럼 일어날 수 있다고 믿으면서 구조작업에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사고로 9명이 피해를 보았는데 9일 현재 2명은 생존했고, 나머지 7명 중 5명은 사망했거나 사망으로 추정된다. 나머지 2명은 실종상태다. 특수구조대는 현재 드론을 이용한 열화상 카메라와 음향탐지기, 내시경 카메라, 구조견 등을 동원해 매몰자들의 위치와 생존 여부를 파악하고 있다. 하지만 추가 붕괴 우려가 있어 현재 구조대원이 붕괴된 타워 내부 수색을 직접 하지는 못하고 있다. 5호기의 매몰자 수색을 위해 8일부터 인근 4·6호기 발파 사전 작업도 시작됐다.
한국동서발전 울산발전본부 울산화력발전소 내 보일러 타워 붕괴 사고 사흘째인 8일 오전 발전소 내 붕괴한 기력 5호기 보일러 타워 양옆으로 4·6호기가 위태롭게 서 있다. 연합뉴스

지난 7일부터 8일까지 사고 현장 구조작업을 한 부산 119특수대응단 소속 이학술 특수구조대 팀장은 “여러가지 위험 사항이 있어 붕괴된 타워 내부로 투입이 되지 못하고 이렇게 지켜보는 게 더 답답한 마음이다”며 “우리는 매몰자들이 구조될 때까지가 골든타임이다”는 취지로 말했다.



위성욱.이은지([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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