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마포종점의 옛 정취가 깃든 서울 마포구 도화동 상점거리 곳곳에 소나무를 상찬하는 내용의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다. 그 뒤로 심어진 소나무는 마포구가 지난 6월 시행한 ‘품격 있는 녹색 특화거리 조성사업’의 결과물이다. 다만 기존에 있던 나무를 베고 새로 심은 소나무로 인해 인근 주민 및 상인들 사이에선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마포구는 조성 사업을 통해 마포대로(마포대교 북단~공덕역) 약 1㎞ 구간에서 기존 양버즘나무(플라타너스) 82그루와 은행나무 41그루를 베고, 소나무 243그루(마포대로 189주·삼개로 54주)로 교체했다. 사업비엔 약 17억원이 투입됐다. 삼개로에 심은 소나무는 인근 오피스텔을 시공한 건설사가 기부했다고 한다.
다만 폭염 속 아름드리 나무가 사라지면서 일부 주민 사이에선 불만이 나왔다. 인근 아파트 주민 이모(29)씨는 “아파트가 고지대에 있어 그늘에서 잠시 쉬곤 했는데 소나무로 바뀌고 나선 뙤약볕을 피할 곳이 없다”고 말했다. 도화동 주민 이모(62)씨는 “소나무가 멋있긴 한데 가로수로 적합한지는 의문”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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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심은 소나무 54그루 중 25그루 고사
이런 와중에 새로 심은 소나무 중 절반이 고사하면서 논란이 됐다. 마포구에 따르면 지난 7~9월 사이 삼개로 소나무 54그루 중 25그루가 고사했다. 주변 토양 오염, 배수층 불량, 이식 스트레스 등이 원인으로 지목됐다. 결국 지난 9월 말 전면 재식재 공사가 이뤄졌다.
삼개로에 있는 상점 10곳을 무작위로 방문해 물어보니, 총 7곳이 새로 심은 소나무에 대해 부정적 의견을 피력했다. 약국을 운영하는 이모씨는 “큰 은행나무가 그늘도 넓고 낡은 건물도 가려서 좋았는데 봄철 송화 가루가 걱정된다”고 말했다. 타로 가게를 운영하는 한모씨는 “심자마자 고사했는데 또 소나무를 고집하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했다. 반면 35년째 사진관을 운영했다는 한 상인은 “지금은 공사로 조금 시끄러워도 나중에 눈 내리면 운치가 있을 것 같다”며 “은행나무는 열매 냄새도 고약하고 치우기도 귀찮았다”고 말했다.
주민과 상인 반발에 대해 구 관계자는 “지난 7월 설문조사 결과 소나무 가로수 만족도가 61%로 높았다”고 설명했다. 다만 해당 설문지의 ‘참고사항’엔 소나무에 대해 장점(112자)과 단점(35자)을 나눠 설명하고 있는 반면 기존 가로수는 단점(94자)만 적혀 있었다.
논란이 커지자 박강수 마포구청장은 지난 9월 설명회를 열고 “기존 수목은 상점 간판을 가리고, 고목화돼 안전 사고 우려가 있었으며 은행 열매 악취와 낙엽으로 불편 민원이 많았다”는 취지로 해명했다. 고사한 삼개로 소나무에 대해선 이행보증보험 대상이기 때문에 시공사가 재식재 비용을 전부 부담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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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 열섬현상 막기 어려워” 지적도
환경단체와 전문가들은 노령목 문제가 있더라도, 기존 가로수를 한꺼번에 벤 뒤 소나무로 교체한 것은 편의적 행정이라고 지적했다. 서울환경연합은 지난 9월 30일 공덕역~아현역 구간 플라타너스를 전수 조사했다. 마포구가 공덕역~아현역 구간도 소나무 식재를 추진하면서다. 그 결과 192그루 중 벌목이 필요한 나무는 6그루(3.1%)에 불과했다. 해당 사업과 관련해 서울시도시숲 심의위원회는 지난 6월 “체계적인 주민 의견 수렴 절차를 거쳐야 한다”며 보류 판단을 내렸고, 관련 조례안도 지난달 23일 마포구의회에서 부결됐다.
조사에 참여한 사회적기업 시소의 나무의사 이재헌씨는 “진찰 결과 대부분은 건강 이상이 없었다”며 “플라타너스는 수령 150년이 돼도 열매를 맺기 때문에 이 구간의 플라타너스가 늙었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마포대로 일대를 동행한 최진우 가로수시민연대 대표도 “소나무는 그늘 면적이 좁아 열섬현상을 막기 어렵고, 콘크리트 등 불량 토양에도 취약해 애당초 가로수로 적합하지 않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