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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적 금융의 역설…주담대 역전한 기업대출 금리, 연체율도 최고치

중앙일보

2025.11.10 02:21 2025.11.10 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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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가계대출은 제한하고 기업대출을 비롯한 자금 조달을 장려하면서 시장금리와 반대로 기업대출 금리가 떨어지고 있다. 연합뉴스
최근 시장 금리는 오르는데 기업대출 금리는 떨어지는 역주행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보통 기업대출은 원금을 회수하지 못할 위험이 크다. 이 때문에 집을 담보로 잡는 주택담보대출보다 금리가 높은 게 일반적이지만, 이마저도 역전됐다. 정부가 '생산적 금융'을 강조하면서, 은행권이 적극적인 기업대출 늘리기에 나섰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10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국내 은행의 9월 신규 기업대출 금리는 연 3.99%로 7월 4.04%, 8월 4.03%에 이어 석 달째 하락세다. 기업대출 금리가 4% 아래로 떨어진 건 2022년 6월 이후 3년여 만이다.


이중 기업일반자금대출 금리(연 3.95%)는 가계대출 금리(연 4.17%)보다도 낮다. 특히 담보가 있어 떼일 우려가 적은 주택담보대출 평균 금리(연 3.96%, 고정·변동형) 아래로 떨어지는 이례적인 현상까지 나타났다. 지난해 9월만해도 주담대 금리는 연 3.74%로, 기업일반자금대출 금리보다 0.93%포인트 더 낮았다.

서울 등 수도권을 중심으로 집값이 오르자 금융당국은 부동산 시장 과열을 우려해 주담대 등 가계대출을 제한했다. 은행에서 주담대 총량을 관리하기 위해 가산금리를 낮추지 못하는 상황이 이어진 것이 기업대출-주담대 '금리 역전'을 불러온 한 원인으로 꼽힌다.


박경민 기자
기업대출 금리는 최근 시장금리와도 반대로 움직였다.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9월 기준 은행채 6개월물 금리는 2.55%로, 최근 두 달 연속 0.01~0.03%포인트씩 올랐다. 코픽스 금리와 연동되는 고정형 주택담보대출 금리도 지난 6월 3.92%에서 9월 3.94%까지 오름세를 유지하고 있다.

기업대출 금리 역주행이 발생한 데에는 정부가 이른바 '생산적 금융'을 강조한 것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생산적 금융은 은행권 자금을 부동산 대신, 벤처기업·신성장 산업 등 생산적 분야로 물길을 돌리는 게 핵심이다. 한 은행 관계자는 “이미 주요 금융지주사들이 공식적으로 생산적 금융에 동참하겠다며 구체적인 금액을 공표한 상황"이라며 "금융당국 눈치에 가계대출 영업이 어렵다보니, 기업대출에서 영업실적을 올리고 있다"고 전했다.
지난 9월 이억원 금융위원장(아래 왼쪽에서 네 번째)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생산적 금융 대전환 회의' 모습. 연합뉴스

특히 중소기업에서 금리 하락 현상이 더 두드러지고 있다. 금융당국은 금융권에 중소기업 대출 공급 규모 등을 척도로 하는 ‘상생금융 실적평가’를 도입한다고 밝힌 바 있다.

국내 예금은행 중소기업대출 금리는 지난 5월 연 4.17%에서 9월 4.05%까지 4개월 만에 0.12%포인트나 떨어졌다. 중소기업 대출 잔액도 급증했다. 지난달 말 기준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중기대출 잔액은 675조8371억원으로, 한 달 사이 4조7495억원 늘었다. 올해 들어 상반기까지 1조8760억원 증가한 것과 비교하면 4개월 만에 증가 폭이 6.5배(11조7503억원)가 됐다.

이를 두고 금융 시장 원리를 벗어나는 금리 왜곡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중소기업이 정부 입김으로 금리 혜택을 보는 반면, 일반 금융소비자는 상대적으로 높은 금리로 혜택을 빼앗긴다는 점에서다.

은행의 자산 건전성이 악화하는 부작용도 우려된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8월 말 기준 국내 은행의 기업대출 연체율은 0.73%로 전 달(0.67%)보다 0.06%포인트 올랐다. 특히 중소기업대출 연체율이 한 달 사이 0.07%포인트 올라 0.89%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주담대 연체율(0.3%)과 비교하면 세 배 가까이 높은 수치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경제 성장률이 둔화하고, 내수가 가라앉은 상황에서 중소기업의 연체율은 앞으로 계속 높아질 위험이 있다"며 "인위적인 저금리 정책은 자칫 퇴출이 필요한 '좀비기업'만 늘릴 수 있는 만큼, 대출금리 왜곡은 최소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선미([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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