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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굴 안엔 조선인 삶 흔적 있었다…동강 슬로보트 타고 힐링 여행

중앙일보

2025.11.12 12:00 2025.11.12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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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우석의 Wild Korea〈30〉 동강 유람
칠족령에서 드론을 띄워 바라본 동강의 모습. 왼쪽이 제장마을, 사진 중앙쯤 강물에 다리가 보이는 곳이 연포마을이다. 이곳에 수직 절벽인 뼝대가 펼쳐져 수려한 풍경을 자랑한다.
강원도 정선과 평창 일대 동강의 비경을 둘러봤다. 특히 동강 최고 절경으로 꼽히는 제장마을~문희마을 구간을 슬로 보트 타고 유유자적 흐르는 맛이 일품이었다. 가을철 동강에는 구름이 자주 낀다. 구름 속에서 강물 소리는 더욱 차갑게 들린다. 동강은 구불구불 흘러 정선∼평창∼영월 지역을 두루 적신다. 동강이 시작되는 정선의 가수리부터 평창 어름치마을까지 절경을 구경하기로 했다.

미리내폭포와 나리소전망대
정선 미리내폭포. 벼랑과 폭포가 어우러진 풍경이 영락없이 와인잔을 닮았다.
먼저 들른 곳은 미리내폭포다. 동강 줄기에서 조금 떨어져 있어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이다. 암벽 사이로 강물이 흘러 내려오는데, 생김새가 와인잔을 닮았다. 강물이 와인잔에 담겼다가 흘러나가는 것 같아 신기하다.
폭포에서 좀 내려오면 가수리다. 예미초등학교 가수리분교 안에 동강의 수호신이 있다. 570년 묵은 느티나무인데, 여전히 건재하다. 느티나무 아래의 널찍한 평상이 주민의 사랑방이다. 할머니들이 정겨운 사투리로 도란도란 말하는 걸 들으며 동강을 바라보는 맛이 한없이 평화롭다.
다시 동강을 따라 10㎞쯤 내려오면, 나리소전망대 안내판이 보인다. 15분쯤 나무 계단을 오르면, 전망 데크에 닿는다. 동강 일대에서 가장 높은 백운산(883.5m)과 동강이 어우러진 모습이 일품이다.
나리소전망대에서 바라본 나리소 일대. 동강과 백운산이 만나는 지점에 있다.
슬로우 보트, 강물에서 바라본 풍경
“지금 물이 참 좋아요. 잘 오셨어요”
강원도 정선, 평창의 동강 일대를 둘러봤다. 슬로 보트 타고 유유자적 동강의 비경을 감상하는 맛이 일품이다.
제장마을 앞에서 '동강레포츠' 김정하 대표를 만났다. 보트를 가져와 대기 중이었다. 물이 좋다는 건, 강물 수량이 배 타기에 적당하다는 뜻이다. 여기서 문희마을까지 약 9㎞ 거리를 약 1시간 30분쯤 느릿느릿 흘러간다. 배 이름이 그래서 ‘슬로 보트’다. 그야말로 뱃놀이다.
보트가 강물로 나아가자 시야가 확 달라졌다. 강물의 시선에서 본 주변 풍경은 완전히 달랐다. 마치 모노에서 스테레오로 음악이 바뀐 것 같았다. 배는 유유자적 '파랑새 뼝대' 아래를 지난다. ‘뼝대’는 절벽을 뜻하는 이곳 사투리다. 강물에서 본 뼝대는 더욱 크고 장대했다. 풀들이 바위에서 자라는 모습이 신기하다. 봄철에는 절벽에서 고운 동강할미꽃이 피어오른다.
강물이 갑자기 쏴~ 성낸 소리를 낸다. 여울목이다. 손잡이를 꽉 잡고 보트의 움직임에 몸을 맡기자 여울의 굴곡이 온몸으로 느껴진다. 이때 잠깐 노를 젓는다. 짧은 시간이지만 노 저어 급류를 헤쳐 나가는 맛이 짜릿하다.
동강의 세찬 여물목 중에서 유명한 곳이 황새여울과 된꼬까리다. 이곳은 정선아리랑 가사에 등장한다. “황새여울, 뙨꼬까리 떼 무사히 지났으니/ 만지산 전산옥아 술상 차려놓고 기다리게.” 정선아리랑에는 동강에서 서울로 소나무를 날랐던 떼꾼의 애환이 담겨 있다.
여울이 끝나면 다시 명경지수(明鏡止水)가 펼쳐진다. 연포마을 앞의 거대한 뼝대가 나타났다. 긴장해야 할 지점이다. 연포마을 앞의 작은 다리 밑을 보트가 지나가야 한다. 고개를 푹 숙여 무사히 다리 밑을 통과했다. 이 다리가 생기기 전에 줄배를 타고 연포마을에 왔던 옛 기억이 떠올랐다. 연포마을을 지나 여울 두 개를 더 넘어 문희마을에 닿았다.
백룡동굴과 칠족령
인공 시설물이 없는 백룡동굴은 기고 쭈그리고 하면서 온몸으로 탐사해야 한다. 백룡동굴은 촬영 금지다. 사전에 허락받고 촬영했다.
다음 날 아침, 창문을 열자 산들이 구름 모자를 쓰고 있다. 쌀쌀한 공기를 마시며 구름 속에서 마을이 서서히 깨어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오늘은 백룡동굴과 칠족령을 둘러볼 차례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백룡동굴은 동강의 또 다른 비경이다. 동굴 체험은 750m쯤 동굴로 들어갔다가 돌아 나온다. 탐사에 1시간 30분쯤 걸린다.
먼저 안내소에서 탐사용 옷으로 갈아입는다. 랜턴이 달린 헬멧과 장갑·장화 등으로 무장하니 탐험가가 된 기분이다. 강원도 사투리가 구수한 가이드와 함께 보트를 타고 백룡동굴 입구에서 내렸다. 동굴 입구는 수면 위 10~15m 지점에 있다.
덜컹! 동굴 문이 열리자 가슴이 콩콩 뛴다. 뚜벅뚜벅 어둠 속으로 걸어 들어가니 구들장이 보인다. 조선 시대 사람이 산 흔적이다. 안으로 들어갈수록 시나브로 빛이 사라졌다. 백룡동굴은 훼손을 막기 위해 조명등을 설치하지 않았다.
배를 바닥에 깔고 기어 일명 ‘개구멍’을 통과하자, 비로소 백룡동굴의 진면목이 펼쳐진다. ‘신의 손’이란 별명이 붙은 대형 종유석, 피사의 사탑처럼 생긴 석순, 천장에 길게 형성돼 '만리장성'이라 불린다는 베이컨 시트가 차례로 나타난다.
동굴 생성물의 화려한 모습에 취해 걷다 보면 어느새 종착점인 대광장에 이른다. 가이드가 눈을 감으라고 하더니 랜턴을 껐다. 잠시 후 눈을 뜨자 온통 어둠이다. 이런 완벽한 어둠을 만난 적이 있었던가.
칠족령 전망대. 제장마을에서 연포마을까지 동강의 수려한 모습을 한눈에 볼 수 있다.
동굴 탐사를 마치고, 칠족령에 올랐다. 길이 비교적 쉬워 50분 만에 닿았다. 칠족령 전망대에 서면 어제 배 타고 내려온 구간 중 제장마을에서 연포마을까지 한눈에 보인다. 동강은 험준한 산과 뼝대 사이를 구불구불 흐른다. 그 안에서 주민은 밭을 일구고, 삶의 고단함을 아리랑 한 자락으로 풀어낸다.
여행정보
신재민 기자
슬로 보트를 타려면 동강레포츠의 ‘지질공원대탐사’ 프로그램을 이용해야 한다. 동강의 지질과 절경을 둘러보는 1박2일 여행 상품이다. 1인 15만5000원부터(4인 기준). 칠족령 트레킹 코스는 백룡동굴 안내센터에서 출발해 칠족령까지 왕복 3.5㎞로, 1시간 30분쯤 걸린다.
글·사진=진우석 여행작가 [email protected]
시인이 되다만 여행작가. 학창시절 지리산 종주하고 산에 빠졌다. 등산잡지 기자를 거쳐 여행작가로 25년쯤 살며 지구 반 바퀴쯤(2만㎞)을 걸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을 걷고, 세상에서 가장 멋진 캠프 사이트에서 자는 게 꿈이다. 『대한민국 트레킹 가이드』 『해외 트레킹 바이블』 등 책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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