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의 원자력추진 잠수함 건조를 승인했다. 성사될 경우 한국은 세계 여덟 번째 원잠 보유국이 될 수 있다. 원잠은 전략적 가치가 매우 크다. 해상 함정은 미사일 공격에 취약하지만 잠수함은 아무리 기술이 발전해도 탐지가 쉽지 않다. 또 원잠은 잠항 거리가 길어 수개월 간 수면으로 부상할 필요가 없고 항속이 빠르다.
세계 주요국의 해군은 잠수함 승조원 출신이 참모총장직을 수행하고 있다. 미국, 호주, 일본, 영국은 잠수함 건조를 선박 건조의 최우선 순위에 두고 있다. 향후 강대국 간 해상 분쟁에서 전함의 역할을 잠수함이 대신하게 될 것이다. 그중에서도 원잠이 최고의 자리를 차지할 것이다.
트럼프 승인했지만 난관 많아
원자력협정 개정, 상원 비준해야
호주 수준의 동맹 강화도 미지수
그러나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뜨리진 말자. 아무리 트럼프 대통령이라 하더라도, 그의 승인이 곧바로 정부의 공식 정책 결정이나 미 의회의 승인을 의미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커스(AUKUS) 협정에 따라 자국 내에서 원잠을 건조할 예정인 호주도 이에 필요한 수출 통제, 기술 이전 및 기술 역량 개혁 과정이 순탄치 않았음을 필자는 직접 봤다. 호주가 겪은 과정에 한국을 대입해 보자.
먼저, 전문가들은 한·미 원자력협정에 주목한다. 이 협정에 따라 한국은 고농축 우라늄을 사용할 수 없다. 한국 내 핵 관리 부실에 대한 미국의 우려로 과거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은 순탄치 않았다.
설령 트럼프 행정부가 협정을 개정해 미 상원의 비준을 받아낸다 해도, 한국은 미국의 ITAR(국제 무기거래규정) 수출 통제 재정비를 위한 협상에 나서야 한다.
완벽한 핵 관리·감독 이력과 민감한 극비 정보 보호 이력을 가진 호주도 개편 협상에만 수년이 걸렸다. ITAR 개정을 통해 오커스 협정 이행이 가능했지만, 미 의회는 암묵적으로 이런 개정이 한국이나 일본으로 확대되지 않는다고 전제했다.
원잠은 미 해군의 핵심적인 차별점으로, 이런 기술을 공유한다는 것은 지금까지 한국 정부나 산업이 경험해 보지 못한 철저한 검증을 거쳐야 함을 의미한다. 게다가 비용 문제도 있다. 영국·호주 해군은 원잠 건조, 승선 인력 충원, 잠수함 유지에 전체 해군 예산을 쏟아부어야 한다.
원잠은 북한의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에 대비하는 한국 해군의 우위를 강화할 것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론 미 의회의 승인을 받기엔 부족하다. 특히나 내년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의회를 장악하면 더욱 그렇다.
물론 한국의 원잠 도입이 대중국 집단 억지력 강화를 위한 조치라는 데 미 의회의 확신이 선다면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이런 논의는 지금까지 한국 내에서 없었다.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한국 정부가 공식적으로 인정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중국의 공격에 대한 연합 대응에 투입될 수 있다는 전제를 깔고 한국이 원잠을 도입할 수 있을까. 미 의회와 해군이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트럼프의 원잠 승인 이후 펼쳐진 상황의 아이러니는 바로 이 지점에 있다. 한국의 업계와 언론에서는 마치 원잠이 손쉽게 한국으로 넘어오고 미국으로부터의 독립이 가능할 것처럼 뜨거운 관심이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영국과 호주의 경우는 달랐다. 영국 해군은 원잠 관리 기술을 미국에 크게 의존하고 있으며, 미국 진주만을 출항하는 버지니아급 원잠에는 머지않아 호주 승선원이 탑승할 예정이다. 미 원잠은 보수를 위해 호주 기지에 정박할 수 있게 된다. 호주가 향후 전쟁에 함께 할 것이라는 예측이 있었기에 원자력추진 기술 이전 결정도 상대적으로 용이했다. ‘같이 갑시다’로 알려진 한·미 연합군의 한반도 연합 태세는 유효하지만, 한반도를 넘어서는 역내로 범위를 넓히면 상황은 달라진다.
필자가 볼 때 원잠은 한국에 더 큰 억지력과 지정학적 영향력을 주겠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자율성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원잠 보유국의 반열에 오르는 것은 역내 및 글로벌 동맹의 강화를 의미한다.
트럼프와 이재명 대통령의 원잠에 대한 열의는 환영하지만, 현실적으로 넘어야 할 산이 이처럼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