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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희의 한반도평화워치] 원자력추진 잠수함이 게임체인저인 까닭

중앙일보

2025.11.13 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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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희 전 합참의장·해양연맹총재
지난달 29일 경주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한국의 원자력추진 잠수함(원잠) 도입이 가시권에 들었다. 이재명 대통령의 원잠 연료 도입 요청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다음날 미국에서 잠수함을 건조하라고 답했다. 결은 다르지만 사실상 한국의 원잠 보유가 가능해진 셈이다. 이는 해군이 30년 넘게 갈망했던 숙원 사업으로, 국가 안보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성과다. 북한의 핵미사일과 주변국의 잠재적 위협을 억제하는 게임체인저가 될 것이다.

북한은 이미 원자력추진 잠수함 건조를 주장하고 있고, 일본 역시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조만간 한반도는 원잠을 운용하는 나라들로 둘러싸일 전망이다. 현재 원잠을 보유한 나라는 미국, 러시아, 영국, 프랑스, 중국, 인도, 브라질 등 7개국에 불과하다. 북한이 원잠을 보유하면 전 세계 바다를 누비며 미국 본토에 대한 핵 공격은 물론 해상교통로를 교란할 우려도 있다. 이를 막으려면 북한보다 먼저 확보해야 한다.

한국의 숙원 원잠 도입 길 열려
한반도 주변은 원잠 도입 경쟁
북한의 원잠 보유도 시간 문제
한국내 건조로 시간 단축해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핵 추진 잠수함 건조 실태를 시찰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지난 3월 보도했다. [연합뉴스]
하지만 상황은 녹록지 않다. 미국에 의존해야 하는 핵연료의 의회 승인부터 농축을 위한 ‘한·미원자력협정’ 개정 등 숙제도 많다. 반면 북한은 원잠을 이미 건조 중이고, 연료인 우라늄을 자체 생산이 가능하다. 미국이 자국의 필라델피아 필리조선소(한화오션 소유)에서 건조할 것이라고 일방적으로 발표한 상황을 고려하면 아직 안심할 단계가 아니다.

보고도 못 잡은 원잠
필자는 지난 1990년 환태평양훈련(RIMPAC)에 참가해 잠수함을 탐지하고 추적·공격하는 대잠훈련을 하는 과정에서 원잠의 가공할 위력을 경험했다. 한국 해군은 북한의 잠수함 침투에 대비해 고강도 훈련을 하며 높은 수준의 대잠작전 능력을 유지하고 있었다. 당시 수상함에서 음파탐지기(소나)로 표적인 잠수함을 탐지하는 성과도 냈다. 그러나 환호성과 기쁨의 순간은 잠깐에 불과했다. 수상함에 탐지됐다는 사실을 감지한 미 해군의 원잠은 30노트(시속 약 56㎞)의 속력으로 도주했다. 더는 탐지도, 공격도 불가능했다. 황당함을 넘어 원잠의 엄청난 능력에 기가 죽었다.

현실적으로 원잠을 향한 대잠작전은 항공기를 제외하면 성공확률이 없다고 봐야 한다. 30노트 이상 속력을 낼 수 있는 수상함이 이런 상황인데, 고속 작전이 어려운 재래식 잠수함은 말할 필요도 없다. 세계 최강 능력을 보유한 미국도 애를 먹는 대잠작전은 탐지 자체가 쉽지 않을 뿐만 아니라, 표적을 탐지해도 그게 잠수함인지 판별하기 어렵다. 수중에는 고래, 물고기 떼, 수괴(물덩이) 등 잠수함과 유사한 특성을 가진 대상이 많기 때문이다. 탐지에 사용되는 음파는 지상의 전자파와 달리 해수 특성에 따라 굴절하기 때문에 정확한 탐지 거리를 측정하기도 쉽지 않다. 설령 잠수함으로 판명이 되더라도 피·아를 식별하는 것도 만만치 않다. 그런 과정에서 언제 있을지 모르는 적의 어뢰 공격에 대비해야 한다. 그런 잠수함과 잠수정을 북한은 70여 척 보유하고 있고, 원잠 보유도 눈앞이다.

북, 핵에 잠수함 위협까지
북한의 핵과 미사일이 미국 본토를 노리는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사실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현실적인 위협(Existential Threat)이다. 이 때문인지 북한은 자신감에 넘쳐 있다. 지난 9월 3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중국 전승절 참가, 지난달 북·미 정상회동을 제안한 트럼프 대통령의 ‘구애’가 이를 보여준다. 북한은 트럼프 대통령의 계속된 구애를 러시아와 결속을 과시하며 보란 듯이 거절했다.

북한의 핵실험 결과를 고려하면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자폭탄(15kt)보다 한 발에 최대 17배(6차 핵실험 250kt 추정)의 파괴력을 지녔다는 평가도 있다. 북한이 개발에 성공했다고 주장하는 핵 어뢰까지 실전에 배치된다면 공포는 배가된다. 핵무기의 효력을 입증하려면 신뢰할만한 투발 수단을 가져야 한다. 흔히 말하는 핵 삼총사(Nuclear Triad)인 전략 폭격기, 지상 발사 핵미사일(ICBM), 전략 핵 잠수함(SSBN)이다. 북한은 ICBM 개발에 집중했고 미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능력을 과시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의 ICBM이 미국의 요격체계, 즉 방패를 뚫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그렇기에 은밀한 타격이 가능한 핵탄두 탑재 원잠(SSBN) 확보에 집중하고 있다. 북한 원잠이 미국 본토 코앞까지 은밀히 이동해 타격한다면 대응 시간과 거리상 요격 가능성이 현저히 떨어진다. 최상의 대응 방안은 탄도탄 발사 전 발사체를 격침하는 것이다. 이는 미국이 냉전 시대에 원자력추진잠수함(SSN)을 이용해 소련의 SSBN에 대응하던 전략이다.

그렇다면 북한 잠수함을 막는 1차 억제는 북한의 잠수함 대응에 최적화된 우리 해군이 수행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반드시 원잠이 필요하다. 한국의 잠수함 건조 능력이 좋아졌다지만 3주일 안팎만 수중에 머물 수 있는 디젤잠수함으로는 이론적으로 무한정 물속에 머물 수 있는 원잠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원잠 조기 확보에 총력을
북한은 지난 3월 5000t급으로 추정되는 원잠 건조 사진을 공개했다. 사실일 경우 북한은 머지않아 원잠 보유국이 된다. 우리에게 시간이 많지 않다는 뜻이다. 개발 기간 단축을 위해선 이미 상당 부분 기술을 확보한 한국에서 건조해야 한다. 미국의 요구대로 잠수함 건조 시설이 없는 필리조선소에서는 적어도 10년이 더 걸린다. 잠수함 건조를 위한 부두 공사부터 해야 하기 때문이다. 미국의 관련 법령 개정과 협상에도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그래서 국가의 총체적인 역량을 동원해 한국 건조를 성사시켜야 한다. 북한의 핵 개발 억제에 실패한 데는 미국도 일정 부분 책임이 있는 만큼 결자해지(結者解之) 차원에서 미국은 우리의 요구를 수용해야 한다.

해군은 9월 26일 개최된 창설 80주년 관함식에서 이지스 구축함과 P-8 해상 초계기, 3000t급 잠수함 등 막강한 전력의 위용을 과시했다. 그러나 러시아와 중국에 이어 북한이 원잠을 보유한다면 기울어진 운동장이나 다름없다. 일본 역시 원잠 도입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어 위기감을 더하고 있다.

지금까지 우리 해군은 북한의 위협에 발이 묶여 한반도를 벗어나지 못했다. 한국군이 게임체인저인 원잠을 보유한다면 대북 억제력 향상은 물론이고 해양에서 국가 이익을 수호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물론 원잠 한 척을 건조하는 데 4조원이 넘는 막대한 비용이 들어가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동북아 안보환경의 변화와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속수무책으로 싸울 수는 없지 않은가.

최윤희 전 합참의장·해양연맹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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