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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렬의 시시각각] 권력의 자격

중앙일보

2025.11.13 07:28 2025.11.13 2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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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렬 수석논설위원
윤석열 전 대통령과 이재명 대통령의 ‘용인(用人)’엔 의외로 닮은 점이 많다. 둘 다 측근을 요소요소에 포진시켜 장악력을 높였다. 두 사람은 법제처장에 자신들의 변호를 맡았던 친구를 기용했다. 윤 정권의 이완규 전 법제처장, 현 정권의 조원철 법제처장이 그들이다. 법무부 장관엔 최측근을 앉혔다. 윤 전 대통령은 검찰 내 ‘윤석열 사단’의 핵심이었던 한동훈을, 이 대통령은 사법연수원 동기이자 친명계 좌장인 정성호를 발탁했다.

상식 저버린 ‘대장동’ 항소 포기
법무장관 해명은 설득력 약해
정권의 검찰 사유화 의구심 커져
이재명 대통령과 정성호 법무부 장관이 지난 7월 23일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임명장 및 위촉장 수여식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뉴시스

지지층 눈높이로 인사 성과를 따진다면 이 대통령의 완승이다. 가령 이 전 법제처장은 존재감이 두드러지지 않았다. 반면에 대장동 사건의 이 대통령 변호인이었던 조 법제처장은 맹활약(?) 중이다. 그는 국회에서 이 대통령의 5개 재판, 12개 혐의에 대해 “모두 무죄라고 생각한다”며 사법리스크 돌파의 선봉에 섰다.

한동훈과 정성호도 대비된다. 한 전 장관은 국회에서 민주당 의원들과 날카롭게 대립했다. 그의 재임 시절 검찰은 전방위로 수사를 벌였지만 당시 민주당 대표였던 이 대통령을 구속하지 못했다. 반면에 온건·합리적이란 평가를 받아 온 5선 의원 정성호는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 과정에서 놀라운 역할을 했다. 그는 검찰로부터 두 차례 항소하겠다는 보고를 받았다. 특히 항소 기한 마지막인 7일엔 서울중앙지검장이 결재까지 마친 상태였다. 그런데도 정 장관은 “신중하게 판단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게 무슨 뜻이겠나. “조폭 두목이 행동대장에게 한 말이 의견 제시인가, 지시인가”(한동훈 전 장관)란 비유도 있지만 국민의 보통 ‘말귀’로도 정 장관의 항소 불가 의사를 분명히 알 수 있다.

이 대통령의 ‘용인’은 치밀하다. 대통령실 등 정부에 자신의 사건 변호인 8명을 포진시켰다. 검찰총장을 임명하지 않고 노만석 검찰총장 권한대행을 4개월간 그대로 뒀던 것도 예사롭지 않다. 그가 ‘진짜 총장’이었어도 검찰의 흑역사로 남을 ‘항소 포기’를 받아들였을까. 윤 정권의 이원석 전 검찰총장은 대표적 친윤 검사였지만 대통령 부인(김건희 여사) 조사 문제로 윤 전 대통령과 갈등을 빚다 결국 갈라섰다.

민심이 윤 정권에게 등돌린 이유 중 하나는 ‘검찰의 사유화’였다. 김 여사는 주가 조작 및 명품백 수수 의혹 조사에서 특별대우를 받았다. 조사는 검찰총장을 패싱한 채 대통령경호처 부속청사에서 비공개로 이뤄졌다. 그렇게 ‘출장조사’를 한 검찰이 끝내 무혐의 처분을 내리자 민심의 분노가 폭발했다. 검찰이 정치권력에 종속되면 ‘법 앞에 평등’과 사법 정의는 물 건너간다. 검찰 사유화의 판단 기준은 간단하다. 권력이 ‘자기 사건’을 보통의 다른 사건과 같은 원칙과 기준으로 다뤄지게 하느냐다.

지난 11일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들이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 관련 의사진행 발언을 하고 있다. 뉴시스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에 대한 의혹은 거기서 시작한다. 이 대통령도 이 사건으로 기소돼 있다. 이 건 같은 대형 비리 사건에서 무죄가 났는데 항소하지 않는 경우를 보지 못했다는 게 법조계의 중론이다.

의문의 정점은 항소 포기의 이유다. “성공한 재판이었다. 항소할 사유가 있냐”는 정 장관의 말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항소 포기로 대장동 일당은 부당수익 수천억원을 챙길 수 있게 됐다. 일각에선 항소 포기가 대장동 일당의 입막음용이라고 의심한다. 일방적 주장일 뿐 증거는 없다. 혹자는 ‘법의 체면’을 거론한다. 대장동 일당이 1심에서 무죄를 받은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은 이 대통령에게 적용된 혐의이기도 하다. 비록 재판부가 달라도 공범 A가 무죄를 받았는데 공범 B에게 유죄를 내리는 것은 ‘법의 체면’ 때문에라도 곤란하다는 것이다. 이는 향후 이 대통령 재판이 재개될 경우 이 대통령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요소가 된다. 노 대행은 결국 사퇴했지만, 그의 사퇴는 항소 포기의 비밀을 풀어주지 못한다. 검찰의 권한은 정의롭게 행사돼야 한다. 그것이 정치권력의 자격이다. 이번 경우가 그렇다고 할 수 있나.




이상렬([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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