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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항소 포기 반발하자 검사 파면 쉽게…권력 눈치 보라는 건가

중앙일보

2025.11.13 0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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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청래 민주당 대표와 김병기 원내대표가 13일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 도중에 대화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여당, 탄핵 통해 가능하던 파면 요건 완화 추진



수사 독립성 위한 신분 보장 장치 무력화 우려


여당이 ‘중대한 비위’를 저지른 검사를 일반 공무원처럼 쉽게 파면할 수 있도록 하는 검사징계 관련 법(검찰청법·검사징계법) 개정안을 발의하기로 했다. 현행 검사징계법은 검사가 비위를 저지를 경우 해임·면직·정직·감봉·견책 등 일반 공무원과 동일한 징계는 할 수 있지만, 공무원 연금 50% 박탈 등이 따르는 ‘파면’은 국회의 탄핵소추와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있어야 한다. 여당은 이처럼 까다로운 검사 파면 절차를 ‘검찰 특권’의 대표적 사례라며 비판해 왔다.

검사징계법이 비위 검사를 위한 보호막으로 이용된다면 마땅히 손질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파면 요건 완화를 권력의 눈에 거슬리는 검사를 통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악용한다면 검찰 수사의 중립성은 심각하게 훼손되고 만다. 개정안을 대표발의하는 김병기 민주당 원내대표가 “검사들의 반란을 가용한 법적·행정적 수단을 총동원해 저지·분쇄해야 한다”고 말한 것이 이런 우려를 키운다. 개정안은 대장동 항소 포기 결정 이후 전국 검사들이 강하게 반발하는 와중에 발의된다. 이재명 정부가 임명한 검찰 간부들까지 항소 포기 경위를 밝히라고 요구하며 급기야 노만석 검찰총장 권한대행이 사퇴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여당은 검사들의 이런 문제 제기를 ‘항명, 검란, 반란, 국기문란’ 같은 격한 표현을 동원하며 연일 압박하고 있다.

검사 파면을 쉽게 할 수 없도록 설계한 데에는 역사적 맥락이 있다. 독재정권 시절에도 검사는 권력의 눈치를 보지 말고 법과 원칙에 따라 수사하라는 뜻이 담겨 있다. 검사 파면 요건을 엄격하게 규정한 검사징계법은 정치권력으로부터 수사의 독립성을 보장하기 위한 방어막 성격이 들어 있다.

지난 9월 여당은 ‘검찰 개혁’을 내세워 검찰의 수사권을 박탈하고, 검찰청을 폐지하는 법안을 강행 처리했다. 검찰 수사권을 경찰과 신설되는 중대범죄수사청으로 넘겼다. 정치 수사를 막겠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런데 검사 파면이 쉽도록 법을 바꾸면 검찰 조직이 정치권력의 압력에 더 취약해질 가능성이 있다. 권력에 밉보이는 수사나 기소는 기피하고, 권력의 의중에 맞추는 검사만 살아남는 구조가 생길 수 있다. 게다가 권력에 비판적인 검사에 대한 표적 징계 가능성도 커진다. 검사들을 ‘순한 양’으로 만드는 것이 과연 검찰 개혁의 목표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대장동 항소 포기 사태는 검찰이 정치권력 앞에서 얼마나 흔들릴 수 있는 조직인지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노만석 대행의 처신은 검찰의 기본 권한인 공소유지조차 정치적 입김에 휘둘릴 수 있음을 보여줬다. 이런 상황에서 검사 파면 절차까지 완화한다면 검찰의 독립성은 더 추락할 수 있다. 검찰 특권 해소를 명분으로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훼손하는 입법은 중단하는 것이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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