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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한·미 협상 타결…아직 넘어야 할 산 만만찮다

중앙일보

2025.11.14 08:22 2025.11.14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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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국 팩트시트 발표…경주 회담 이후 16일 만



통상·안보의 불확실성 큰 틀에서 해소 의의



추가 협의 및 실행 과정서 정교한 전략 필요


한국과 미국이 통상·안보 협상의 결과물인 ‘조인트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를 어제 동시에 발표했다. 지난달 29일 경주 한·미 정상회담에서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주요 쟁점에 합의한 지 16일 만이다.

이번 협상은 트럼프 행정부의 일방적인 관세 인상과 동맹 현대화 요구에서 시작됐다. 한국으로선 내줄 것은 내주되, 받아낼 것은 최대한 받아내야 하는 쉽지 않은 협상이었다. 이 대통령이 “상대 요구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손실을 최소화해야 하는 비자발적 협상”, “버티는 것이 우리가 가진 유일한 힘”이라고 소회를 밝힐 정도였다.

한·미는 통상 분야에서 3500억 달러의 대미 전략투자를 조건으로 관세를 15%로 낮추기로 했다. 대미 투자와 관련해 한국 외환시장의 충격을 줄이기 위한 안전장치도 마련됐다. 연간 200억 달러로 투자액 상한을 설정하고, 외환시장 불안이 우려될 경우 한국이 자금 조달 규모 및 납입 시기 조정을 요청할 수 있도록 했다. 반도체의 경우 대만을 염두에 두고 ‘추후 한국보다 반도체 교역 규모가 큰 국가와 미국 간 관세 합의가 있다면 한국에 불리하지 않은 조건을 부여토록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안보 분야에선 한·미가 상호 요구를 맞바꾸기식으로 반영했다. 한국은 국방예산 증액(GDP 대비 3.5%), 미국산 군사장비 구매(약 36조원), 주한미군에 대한 포괄적 지원(약 48조원) 등을 약속했다. 대신 한국은 원자력추진 잠수함 건조 승인, 우라늄 농축과 사용후핵연로 재처리 지지, 정부 임기 내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협력, 완전한 북한 비핵화와 확장억제 재확인 등을 미국으로부터 끌어냈다.

이재명 정부 출범 후 5개월여를 끌어온 이번 협상 타결을 통해 한국의 통상·안보 불확실성은 큰 틀에서 해소됐다. 그간 경쟁국보다 높은 관세 적용으로 어려움을 겪던 산업계는 안도하는 모습이다. 하지만 넘어야 할 산이 적지 않다.

대미 투자와 관련해 가이드라인만 나왔을 뿐 구체적인 투자 시점과 투자처, 방식 등은 아직 명확하지 않다. 우라늄 농축과 사용후핵연료 재처리 허용을 위해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도 필요하다. 한국의 과거 핵 개발에 대해 우려해온 미 의회의 비준이 순탄치 않을 것이란 전망도 있다.

또 정부는 신속한 원잠 건조를 위해 한국 내 건조가 합의의 전제라고 설명했지만, 미국으로부터 원잠 핵연료 공급을 받기 위해선 미 정부가 군수품, 방위 관련 기술 및 서비스의 수출·이전 등을 제한하는 국제무기거래규정(ITAR)을 손봐야 한다. 바이든 행정부 당시 원잠 건조를 승인한 호주의 경우 이와 관련한 협상에 수년이 걸렸다.

약 48조원(330억 달러 상당)에 달하는 주한미군에 대한 포괄적 지원 제공 합의는 석연치 않은 대목이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향후 10년간 주한미군에 지원할 금액을 수치화한 것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올해 방위비분담금이 1조5000억원 수준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트럼프 대통령이 주장해온 연간 100억 달러 요구를 일정 부분 수용한 게 아니냐는 의구심이 나오고 있다.

이번 합의에 대한 중국의 민감한 반응도 관리가 필요하다. 한국의 원잠 도입에 대해 다이빙 주한중국대사는 최근 “국제 비확산 체제와 역내 평화와 직결되는 사안인 만큼 신중하게 처리하길 바란다”고 우려했다. “한미 통상·안보 협의가 매듭지어졌지만 이제 시작”이라는 이 대통령의 말처럼 향후 미국과의 추가 협의 및 실행 과정에서 한국의 국익을 최대한 확보하고 중국의 우려를 완화하기 위해 정부는 긴장의 끈을 늦추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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