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혜(44)씨는 어쩌면 두 계절 후면 세상에 없을 수도 있었다. 그는 지난해 7월, 담도암 4기로 시한부 6개월 선고를 받았다. 담도암은 증상이 거의 없어 발견이 어렵고 예후가 좋지 않은 암 중 하나다. 특히 3, 4기로 가면 생존율이 더욱 희박해진다. 의사의 말대로라면, 박씨에게 2025년은 오지 않을 미래였다.
초봄의 햇살처럼 기적이 찾아온 걸까? 박씨는 북받치는 마음으로 봄을 맞았고, 6개월을 넘어 16개월째 삶을 이어나가고 있다. 게다가 지난 4월 암세포가 모두 죽은 상태인 ‘완전 관해’ 판정을 받았다.
보너스처럼 주어진 삶을 하루하루 충만하게 살아가고 있는 박씨를 만났다. 그가 나고 자랐고 뿌리를 내린 울산에서. 쾌활한 목소리로 반갑게 맞는 박씨의 얼굴에 병색은 찾아볼 수 없었다. 송정저수지를 바라보던 그는 “호수가 이렇게 아름답게 반짝이는 줄 전에는 몰랐다”고 했다.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 와보니 삶이 더 찬란하게 보인다고 했다.
박씨에게 어떻게 완치할 수 있었냐고 물었다. 그는 “1%의 가능성이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며 알듯 말듯한 이야기를 꺼냈다. 이 기적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굳건한 얼굴로 죽음에 맞선 한 사람의 이야기를 따라가 본다.
🍀 지나가는 아저씨 잡고 펑펑 운 날
Q : 시한부 선고를 받던 날 기억하나요?
2024년 7월 9일, 날짜까지 또렷하게 기억해요. 계속 배가 아파서 MRI 검사를 받고, 그 결과를 들으러 갔어요. 별일 있겠냐는 생각에 가벼운 마음이었죠. 그런데 의사가 그러더라고요. “결혼은 하셨어요?”
“애가 셋인데, 그게 검사 결과랑 무슨 상관이 있냐”고 물었죠. 한참 뜸을 들이던 의사는 췌장암 말기(이후 담도암으로 재판정)로 보인다고 했어요. 그 뒤로는 무슨 말을 나눴는지 잘 기억나지 않아요. “얼마나 살 수 있나요?”라고 물은 것만 기억해요.
Q : 얼마나 살 수 있다고 말하던가요?
통상 6개월. 그것도 항암제가 잘 작용해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6개월도 못 살 수 있다고요. 당시 제가 43세였는데, 창창한 나이잖아요. ‘내가 죽는 건가, 그러면 일은 어쩌지’ 이런 생각만 했어요. 실감이 안 났죠.
Q : 충격이 컸을 텐데요.
멍한 상태로 병원 건물 밖으로 나갔어요. 한여름이라 습하고 더웠거든요. 그런데 열기가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어요. 벤치가 보이길래 일단 주저앉았죠. 그리고 옆에 앉은 아저씨를 붙잡고 다짜고짜 하소연했어요. “아저씨, 저 오늘 췌장암 말기 판정 받았어요.”
그 말을 뱉고 나니 눈물이 나더라고요. 그분도 어쩔 줄 몰라 하며 “아이고, 우짜노”라고만 하셨어요. 평소에 낯선 사람에게 먼저 말을 안 거는데, 그땐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요. 아마 누구에게라도 위로받고 싶었나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