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생 A군(17)는 지난해 7월부터 올해 4월까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만난 피해자들에게 “텔레그램에서 당신의 허위 영상(딥페이크)이 유포되고 있으니, 유포자가 누군지 알려주겠다”고 속였다. 그는 이후 피해자들을 상대로 ‘가족·지인에게 일탈 행위를 알리겠다’고 협박해서 피해자들이 성착취물을 만들도록 한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은 수사를 거쳐 아동·청소년 성착취물 및 불법촬영물 제작 등 혐의로 A씨 등 4명을 지난 4월 검거했다.
지난 한 해 검거된 사이버 성폭력 피의자 중 절반이 A군과 같은 10대 청소년인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는 지난해 11월부터 지난 10월까지 사이버 성폭력 3411건을 적발해 3557명을 검거했다고 16일 밝혔다. 이 중 221명은 구속됐다.
범죄 유형별로 보면 딥페이크 제작 등이 1553건(35.2%)으로 가장 많았다. 아동·청소년 성착취물(1513건·34.3%)과 불법촬영물(857건·19.4%) 등이 그 뒤를 이었다. 피의자 연령대는 10대가 47.6%(1761명), 20대(1228명·33.2%), 30대(468명·12.7%), 40대(169명·4.6%) 순이었다. 경찰은 나이가 어릴 수록 인공지능(AI)이나 디지털 매체 활용에 익숙하다는 점을 이유로 추정했다.
경찰은 피해자 보호를 위해서 방송미디어통신심의위원회에 피해 영상물 약 3만6000건을 삭제·차단 요청하고, 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디성센터)에 약 2만8000건의 피해자 연계를 실시했다. 5년째 제자리걸음이던 디성센터 인력 관련 정부는 내년부터 기존보다 인력을 50% 늘리는 내용의 예산안을 마련했다.
경찰은 내년 10월까지 이어지는 집중 단속 기간에 AI 기술을 악용한 신종 범죄 검거에 주력하고, 청소년 대상 교육 및 예방 활동을 강화할 방침이다. 성착취물 삭제·차단을 위해선 국내외 플랫폼 사업자에게 공조 요청을 확대한다. 경찰 관계자는 “텔레그램의 경우 국내 법인이 없어 공조가 어렵다는 지적이 있었지만, ‘자경단’ 사건 등을 계기로 지난해부터 협의를 이어왔다”며 “수사 협조가 원활한 편”이라고 강조했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사법대학 교수는 “익명성을 믿고 사이버 성범죄에 나서는 청소년들이 있는데, 텔레그램 등 플랫폼이 수사에 협조하고 ‘결국 검거된다’는 점을 널리 알리면 범죄의 억제 효과가 있을 것”이라며 “사이버 성범죄 대응 수요가 증가하는 데 맞춰 추가적인 예산 및 인력 확충도 필요하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