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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중의 아메리카 편지] 미국의 셧다운 정치

중앙일보

2025.11.16 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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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중 고고학자·토론토대 교수
지난주 미국 연방정부가 43일 만에 문을 열었다. 미 역사상 가장 긴 셧다운의 이유는 단순했다. 공화당이 오바마케어(ACA) 보험보조금의 연장을 거부했고, 민주당은 이 보조금이 빠진 예산안을 통과시킬 수 없다며 맞섰다. 그러자 트럼프 행정부는 연방정부 최대의 반빈곤 프로그램인 영양보충지원프로그램(SNAP)을 전면 겨냥했다. 연방 공무원은 물론 식료품 보조에 의존하던 저소득층 가정은 벼랑 끝으로 내몰렸고, 끝내 민주당의 상원의원 8명과 하원의원 6명이 공화당 쪽으로 표를 던졌다. 그 대가로 ACA 연장의 향후 표결이라는 빈 약속만 받고 이번 셧다운은 허탈하게 막을 내렸다. 민주당의 패배인 셈이지만, 공화당에 표를 보탠 민주당 의원들의 심정도 이해할 수 있다.

셧다운이 끝나자마자 언론의 화살은 곧 “인질극을 보상한 배신자”로 지목된 민주당 이탈표 의원들에게 쏠렸다. 하지만 SNAP은 미국에서 4200만 명, 즉 국민 여덟 명 중 한 명이 이용하는 최대 규모의 식료품 보조 제도이고, 수혜자 60%가 18세 미만 인구와 60세 이상의 노인이다.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의 정부가 이념적 집착에 빠져 가난한 시민들의 밥상부터 뒤엎겠다고 나섰던 것이다.

시민을 먹이는 일을 정치 도구로 삼는 전형은 이미 고대 로마에 있다. 기원전 2세기 가이우스 그라쿠스가 국고로 사들인 곡물을 시가보다 싸게 팔게 한 뒤, 100여 년 후 포퓰리스트 클로디우스에 이르면 일부 시민에게는 아예 무상 배급까지 이뤄진다. 그때부터 곡물은 명백한 정치 자원이 되었고, 누가 얼마나 자주, 얼마나 싸게 풀어주느냐가 권력과 인기를 가르는 기준이 됐다. 하지만 노예제를 유지하던 공화정조차 “도시의 시민을 굶겨 시험하지는 않는다”는 최소한의 금기는 지켰다. 반면 엘리트의 세상인 21세기 미국은 민주주의를 자처하며 자국민을 굶기려는 나라인 것이다.

김승중 고고학자·토론토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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