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일본이 수교 53년 만에 최악의 외교전에 돌입했다.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지난 7일 중의원(하원)에서 대만 유사시 무력 개입이 가능하다는 취지로 발언한 데 대해 중국이 맹반발하면서다. 지난달 31일 경주에서 양국이 정상회담을 한 지 불과 보름 만에 양국 관계가 급속도로 냉각되면서 일본 내에선 다카이치 외교가 도마 위에 올랐다. 양국 수교 이후 최악으로 불린 센카쿠열도를 둘러싼 관계 악화의 재현을 우려하는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중국의 반발은 날로 수위를 더해가고 있다. 쑨웨이둥 외교부 부부장이 지난 13일 가나스기 겐지 일본대사를 이례적인 표현을 동원해 초치했다. “누구라도 감히 어떤 형식으로라도 중국의 통일 대업을 간섭한다면 중국은 반드시 정면으로 쳐부술 것(迎頭痛擊)”이라며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중국의 이런 발언은 양국 국교 정상화 이후 처음이다.
중국중앙방송(CC-TV)이 운영하는 SNS인 위위안탄톈은 15일 “중국 외교부 부부장이 일본 주중대사를 지시대로(奉示·봉시) 초치해 엄정한 교섭을 제기했다”며 봉시라는 표현이 양국 사이에서 처음으로 사용됐다고 전했다. 샹하오위 국제문제연구원 특별초빙연구원은 “봉시는 윗선을 대신해 처리한다는 의미로 외교부 부부장 신분이 아닌 고위층을 대표해 입장을 표현했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사실상의 경제 제재도 시작했다. 주일 중국대사관은 14일 “올 초부터 중국인을 대상으로 한 범죄가 급증하고 있어 일본 여행을 자제할 것을 강력히 권고한다”는 공지문을 올렸다. 중국 동방항공과 국제항공, 남방항공 등 국적 항공사들은 다음 날 일본행 항공편 취소나 변경 수수료를 받지 않기로 했다. 중국 교육부도 16일 “일본 치안이 악화됐으니 유학 계획을 재고하라”는 내용의 경보를 발표했다. 장위저우 관찰자망 칼럼니스트는 “(중국은) 희토류 등에 대한 수출 통제, 수산물 수입 중단, 일본행 항공편 및 여행객 삭감 등 일본산 제품 대체에 속도를 낼 것”이라며 추가 보복 가능성을 제기했다.
군사적 대응도 이어지고 있다. 중국은 17일부터 19일까지 서해 중부 해역에서 실탄 사격 훈련을 벌일 것을 예고했다.
중국의 반발에도 일본 정부는 ‘안이한 양보’는 하지 않을 전망이라고 요미우리신문은 전했다. 대신 아베 신조 정권에서 외교 전략 구상을 담당했던 이치카와 게이이치 국가안전보장국장을 중국에 보내는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 오는 22일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다카이치 총리와 리창 중국 총리의 회담을 모색할 거란 전망도 나온다.
하지만 아베 전 총리 계승을 내세운 다카이치 정권이 중국과의 대화를 원활하게 이끌지는 미지수다. 야당에선 다카이치 총리에게 발언 철회를 요구하고 있지만, 총리 주변에선 “발언을 철회하면 지지층의 이해를 얻을 수 없다”는 판단을 하고 있어 양국 관계 경색이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일본에선 ‘예측 불허’ 상황이 펼쳐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아사히신문은 “사태가 비즈니스와 관광 왕래 감소 등 실질적인 영향이 나타날 수 있는 단계로 발전했다”며 “양측이 타협하지 않으면 사태가 더 악화하거나 교착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일본 정부에선 보수층을 의식한 대응도 검토되고 있다. “목을 베겠다”는 글을 SNS에 올렸던 주오사카 중국 총영사에 대해 체류를 거부할 수 있는 ‘페르소나 논 그라타(외교적 기피 인물)’로 지정하는 방안이 대표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