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베네수엘라 간 군사적 긴장이 최고조로 치닫는 가운데, 미국 해군의 최신예 항공모함 ‘제럴드 R. 포드’ 항모전단이 카리브해에 전개됐다. 미국의 전략자산이 본격적으로 투입되면서 트럼프 행정부의 대(對)베네수엘라 압박이 사실상 최고 수위에 도달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미 해군과 남부사령부(SOUTHCOM)는 16일(현지시간) “포드호가 이끄는 항모전단이 애너가다 항로를 통과해 카리브해에 진입했다”고 발표했다. 남부사령부는 이번 작전이 트럼프 대통령의 지시에 따른 것으로, 초국가 범죄조직(TCO) 해체와 마약 테러 대응을 위해 피트 헤그세스전쟁부(국방부) 장관이 항모전단에 국토 방어 임무 지원을 명령했다고 설명했다.
포드 전단은 카리브해에서 이미 작전을 수행 중인 ‘서던 스피어(Southern Spear)’ 합동 태스크포스와 합류할 예정이다. 이 태스크포스에는 이오지마 강습상륙 준비단과 해병 원정대 등이 포함돼 있으며, 미국은 이 전력을 통해 마약 운반선 차단, 범죄조직 격퇴, 해상 통제 확보 등 대통령의 핵심 국방 과제를 수행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9월 이후 트럼프 행정부는 카리브해와 동태평양에서 마약 운반선으로 의심되는 선박을 상대로 최소 20차례 공습을 단행해 약 80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미군은 항공모함, 구축함, 잠수함을 잇달아 배치하고 있으며, 이번 포드 전단 투입으로 카리브해에 투입된 미군 함정은 10여 척, 병력은 1만2000명 규모에 이른다고 AP통신은 전했다.
세계 최대 규모의 핵추진 항모인 포드호 투입은 통상 수년 전부터 계획되는 항모 운용 일정과 비교해 이례적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남부사령부 앨빈 홀시 사령관은 “포드 전단은 서반구 안보와 미국 본토 방어를 위한 중대한 조치”라며 “역내를 불안정하게 하려는 위협에 단호히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 내에서는 트럼프 행정부가 베네수엘라 본토 타격 가능성을 직접 검토하고 있다는 관측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 14일 워싱턴포스트(WP)는 트럼프 대통령을 포함한 미 행정부 핵심 인사들이 최근 며칠 사이 백악관에서 연달아 비공개 회의를 열고 베네수엘라 공격 여부와 작전 방식 등을 논의했다고 보도했다. 일부 소식통은 포드호 전투기 조종사들이 베네수엘라 방공망 분석 작업을 진행해왔다고 전했고, 군 특수부대인 델타포스 투입 가능성도 거론됐다.
법적 근거 마련 시도도 이어지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 법무부가 마약 카르텔을 “집단적 자위권 행사 대상”으로 규정하고, 펜타닐을 ‘잠재적 화학 무기’로 간주하는 문건을 작성해 미군의 선박 격침 작전을 정당화하려 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과도한 법 해석”이라며 비판하고 있다.
이 같은 군사적 압박이 이어지자 베네수엘라도 대책마련에 나섰다.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은 미국이 정권 전복을 시도하고 있다고 비난하며 병력과 민간 무장 부대를 총동원해 전국적인 비상 대비 훈련을 진행 중이다. 베네수엘라는 카라카스-라과이라 고속도로 등 주요 길목에 탱크 저지용 구조물까지 설치했다. 재래식 전력은 약 12만3000명으로 추산되며, 마두로 대통령은 예비역과 민병대를 포함해 “800만 명이 국가 방위에 참여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긴장이 고조되는 가운데 마두로 대통령은 14일 카라카스 집회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전할 메시지가 있느냐는 질문을 받고 “그렇다, 평화. 그렇다, 평화”라고 반복했다. 그는 미국의 공격 가능성에 대한 질문은 피해가며 “끝없는 전쟁은 이제 그만이다. 부당한 전쟁은 더는 없다. 리비아도 아프가니스탄도 더는 안 된다”며 “미국 시민들이 (아메리카) 대륙의 평화를 위해 단합해 달라”고 호소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1기 행정부 시절인 2019년 후안과이도 당시 국회의장을 지지하며 마두로 정권을 강하게 압박해왔다. 2기 들어서는 마약 단속을 명분으로 카리브해에서 군사 행동을 확대하며 사실상 군사 충돌 직전까지 긴장을 끌어올린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