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제주 서귀포시 테디밸리 골프장. 어스름한 여명이 드리운 새벽 6시 30분, 한국프로골프협회(KPGA) 최병복 경기팀장이 대회장에 도착했다. KPGA 시즌 최종전 투어 챔피언십을 앞두고 날씨와 핀 위치를 확인하기 위해서다.
경기위원회는 첫 티타임 시작 30분 전까지 그린 스피드, 경도, 습도를 체크해 선수들에게 알려야 한다. 핀 위치와 티잉그라운드는 미리 정해놨지만 당일 아침 풍속 등 날씨 예보에 따라 조정하기도 한다.
최 팀장은 "이번 대회는 70명만 출전하는 소규모 대회라 그렇지, 100명이 넘는 풀필드 대회에는 새벽 2시 50분에 알람을 맞춰놓고 4시부터 나와 라이트를 켜고 일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 팀장은 연습 그린 두 개를 포함해 8개 그린 상태를 측정했다. 인코스와 아웃코스에서 한 홀씩 교대로 측정한다. 순서대로 하면 일찍 끝낼 수 있지만, 클럽하우스와 가까운 곳을 먼저 끝내 경기하는 선수들이 시끄럽지 않도록 배려한다.
그린 속도는 스팀프미터로 잰다. 각 그린에 3야드 간격으로 노란 점 두 개를 찍어놓고 볼 3개씩을 양쪽에서 굴려 평균을 낸다. 스피드가 느리면 골프장 경기팀에 연락해 롤러로 더 눌러달라고 하고, 너무 빠르면 물을 뿌려달라고 요청한다.
습도는 측정기로 한 그린에 6번씩 측정한다. 위원회가 바라는 적정 습도는 15% 정도다. 습도가 높으면 그린이 물렁해져 볼이 너무 잘 서서 변별력이 없다. 반대로 습도가 너무 낮으면 볼이 튕겨 나간다.
그린 경도는 측정기로 0.26~0.28 정도로 맞춘다. 낮을수록 단단하다는 뜻이다. 최 팀장은 "제주는 바람이 많이 불어 그린이 빠르면 경기하기 어려울 수 있어 다른 지역보다 스피드를 조금 줄이고 덜 단단하게 만든다"고 했다. 그린을 단단하게 하려면 롤러로 누르는데, 무거운 롤러는 500kg, 가벼운 롤러는 300kg 정도다.
최 팀장은 페어웨이 티샷 랜딩 구역으로 가서 힘껏 볼을 땅에 던졌다. 공에 흙이 많이 묻으면 프리퍼드 라이를 적용한다. "선수들이 경기 중 볼에 흙이 묻는다고 불평하는데 사실 오히려 좋아요. 코스 상태를 파악할 수 있거든요." 디벗 자국이 잘 메워져 있는지도 꼼꼼히 살폈다.
코스 셋업의 핵심은 그린의 핀 위치다. 페어웨이 폭과 러프 길이도 중요하지만, 그린은 코스의 얼굴이다. 대회가 어떤 스타일이 될지는 핀 위치로 결정된다. 대회 시작 전 경기위원들은 답사를 통해 1~4라운드 그린 위치를 미리 정해놓는다.
이날 새벽 핀 위치를 점검한 이상선 위원은 "경기 성격, 참가 선수 수, 날씨, 코스 상태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다"고 했다. 메이저 대회처럼 진지한 대회는 핀 포지션이 어렵다. 투어 챔피언십은 시즌 최종전까지 진출한 선수들의 축제 형식이어서 상대적으로 쉬운 곳에 꽂는다.
이 위원은 "일반적으로 컷 통과가 결정된 후 선수들은 마음이 편해져 공격적으로 경기하는 경향이 있다. 3라운드에 어려운 홀과 쉬운 홀을 적절히 배치해 실력 있는 선수의 순위가 올라가게 하려 한다"고 말했다. 최 팀장은 "4라운드 16~18번 홀은 이글도 나오고 더블보기도 나오는 드라마가 생기도록 세팅한다"고 덧붙였다.
홀 위치는 왼쪽, 오른쪽, 중앙, 앞, 뒤로 비교적 균등하게 분배해야 한다. 장타를 치는 선수와 그렇지 않은 선수, 페이드를 치는 선수와 드로를 치는 선수가 공정하게 경기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또한 그린 공략 아이언샷 난도와 홀이 위치한 그린 영역으로의 퍼팅 난도를 모두 고려해 쉬운 홀, 보통 홀, 어려운 홀의 균형을 맞춘다. 그린 가장자리에서 최소 5야드 이상 떨어뜨려 배치하고 경사지도 피한다.
주말 골퍼들이 라운드 중 경사지에 핀이 꽂힌 경우 "그린 키퍼가 부부싸움을 해서 어려운 데 꽂았다"는 농담을 한다. 이 위원은 "그린에는 핀 꽂을 곳이 많지 않아 그린이 상했거나 좋은 곳을 남겨둬야 할 필요가 있을 때 경사지에 꽂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 위원은 랜딩 구역에서 봤을 때 핀이 똑바로 섰는지 체크한 후 그린으로 가서 핀이 제대로 꽂혀 있는지, 잘 빠지는지도 확인한다. 전날 체크했지만 하루 사이에 상황이 바뀔 수 있어 당일 다시 점검한다.
이 위원은 다음 날 핀 꽂을 자리도 미리 확인한다. 대회 전 정한 핀 위치를 찾은 후 경사 측정기인 브레이크 마스터를 홀 주위에 돌려보며 경사도 2.0 이내인 것을 확인하고 경사도가 가장 낮은 지점에 점을 찍어놓는다. 주위에 홀컵 자국이 많아 지저분하거나 훼손됐으면 옮긴다.
연습라운드 때는 마지막 조가 끝난 후 다음날 핀 위치에 점을 찍는다. 선수들이 핀 위치를 알고 연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기가 시작되면 미리 찍어놔도 상관없다. 선수들이 핀 위치를 안다 해도 연습할 수 없어서다.
티잉구역에서는 티마크가 타깃이 될 랜딩 구역에 수직이 되게 하는 데 신경을 쓴다. 티마크 간 거리는 KPGA의 경우 6야드다. 간격이 너무 넓으면 배꼽이 나왔는지 모를 수도 있고, 너무 좁으면 티잉그라운드가 손상돼 보기 좋지 않기 때문이다. 티마커는 매 라운드 옮긴다. 이왕이면 라운드가 진행될수록 앞으로 가면서 방송에 디벗 자국이 잘 안 보이게 한다.
티잉구역 광고판 근처에는 빨간 점을 찍는다. 여기서부터 그린 엣지에 있는 또 다른 빨간 점까지 거리가 공식 전장이다. 파3는 직선거리이고, 휘어진 파4나 파5는 중간에 IP 지점을 경유한 거리가 전장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