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아라비아는 숙원 사업인 ‘스텔스 F-35 전투기 도입’을 이뤄낼 수 있을까.
18일(현지시간)로 잡힌 사우디 실권자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의 미국 백악관 방문을 앞두고 중동 지역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촉각을 곤두세우는 관심사다. 2018년 사우디 반정부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암살 사건의 배후로 지목돼 ‘국제 왕따’로 불리곤 했던 빈살만의 방미는 2018년 3월 이후 7년 8개월 만이다.
빈살만은 국가 원수가 아니어서 공식적으로는 ‘실무 방문’이 된다. 하지만 ‘중동 큰손’의 방미를 앞두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이미 국빈급 예우를 준비하고 있다. 그는 18일 오전 빈살만 왕세자 환영 행사에 이어 양자 오찬을 갖고, 별도로 만찬 행사도 함께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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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블랙 타이 만찬’ 복장 규정
만찬 콘셉트는 ‘블랙 타이 만찬(Black-Tie Dinner)’으로 남성은 턱시도, 여성은 이브닝드레스 등 엄격한 복장 규정이 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이를 두고 “한때 ‘국제적 왕따’로 비난받았던 빈살만 왕세자의 실추된 명예를 공식적으로 되찾아주는 극적인 행보”라고 평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미 지난 5월 2기 행정부 첫 해외 순방지로 사우디를 택하며 양국 관계 개선의 시그널을 적극적으로 발신해 왔다. 사우디는 당시 미국에 1420억 달러(약 207조원) 규모의 무기 구매를 비롯해 총 6000억 달러(약 876조원) 규모의 선물 보따리를 안겨 화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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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 美에 F-35 48대 판매 요청”
이번 회담의 핵심 의제는 미국의 최신형 전투기 F-35 공급, 양국 간 상호방위협정, 사우디-이스라엘 국교 정상화 문제로 요약된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사우디는 미국에 최첨단 전투기 F-35 48대 판매를 요청한 상태다. 사우디 공군 현대화 및 이란 위협 대응 등을 명분으로 한다.
미국은 현재까지 중동에서 유일하게 이스라엘에만 F-35를 판매해 왔다. 이스라엘은 미국으로부터 수입한 F-35 전투기를 자체적으로 개량한 F-35I 아디르 75대를 보유하고 있다. F-35I 아디르는 지난 6월 이란 공습 때 방공망을 파괴해 작전 성공에 기여하는 등 여러 전투에서 탁월한 공격 성능을 입증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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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질적 군사우위 위태’ 우려
미국은 이스라엘이 중동의 잠재적 적대국들보다 군사력 면에서 질적으로 우위에 설 수 있도록 보장하는 ‘질적 군사 우위(Qualitative Military Edge, QME)’ 정책을 펴 왔다. 만약 이번에 트럼프 행정부가 사우디에 F-35 수출을 허용할 경우 1973년 아랍과 이스라엘 간 제4차 중동전쟁 이후 미 행정부가 일관되게 추진해 온 QME 정책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다만 중동 국가에 대한 미 행정부의 F-35 수출 승인이 전례가 없는 것은 아니다. 트럼프 집권 1기 때인 2020년 미국은 ‘아브라함 협정’을 통해 아랍에미리트(UAE)가 이스라엘과 외교 관계를 정상화하는 대가로 UAE에 F-35 전투기 50대 판매를 승인한 바 있다. 하지만 이후 조 바이든 행정부 때 전투기 기술이 중국으로 이전될 수 있다는 점과 이스라엘의 대(對)중동 군사적 우위가 약화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계약이 무산됐었다.
빈살만의 방미를 앞두고서도 비슷한 우려가 나온다. 사우디는 최근 수년간 중국으로부터 단거리 탄도 미사일을 구입해 왔으며, 사우디의 미사일 시험장이 중국 미사일 시험장의 축소판이라는 얘기가 나올 만큼 중국과 군사적으로 가까웠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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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美에 “국교정상화 선행돼야”
이스라엘의 동의 여부도 중요 변수다. 이스라엘 정부는 트럼프 행정부에 F-35 전투기의 사우디 판매를 허용하려면 이스라엘과의 국교 정상화가 반드시 전제돼야 한다는 입장을 전달했다고 미 인터넷 매체 악시오스가 보도했다. 사우디가 이스라엘의 적이 아님을 증명해야 한다는 논리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그리는 중동 평화 구상과도 닿아 있다. 그는 집권 1기 시절 최대 치적으로 꼽히는 아브라함 협정의 외연 확장을 원하며, 이슬람 수니파 맹주인 사우디가 이른바 ‘아브라함 2차 협정’의 핵심 퍼즐조각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4일 “사우디가 아주 조만간 아브라함 협정에 참여하기를 바란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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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도 ‘아브라함 협정’ 확장 원해
하지만 사우디의 협정 참여가 트럼프 기대만큼 이른 시점에 이뤄질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전망이 많다. 워싱턴포스트(WP)는 익명의 행정부 관계자들을 인용해 “사우디가 당장 (아브라함) 협정에 서명할 가능성은 작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 임기 말까지 합의가 도출될 수 있다는 신중한 기대감은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한편 빈살만의 방미를 계기로 트럼프 대통령의 가족기업 트럼프그룹이 사우디의 630억 달러(약 92조원) 규모의 초대형 도시개발사업 ‘디리야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계약을 곧 맺을 것이라고 NYT가 보도했다. NYT는디리야 프로젝트를 이끄는 제리 인제릴로 디리야 게이트 개발청 최고경영자(CEO)가 “트럼프그룹과의 계약 체결은 시간 문제로 곧 발표될 것”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대통령 직위를 이용해 가족 이권사업에 관여한다는 이해충돌 논란이 재점화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