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서울대병원 제일제당홀에 이 병원에서 장기 이식을 받고 30년 안팎 생존하고 있는 환자 110명과 기증자들이 모였다. 이 자리에서 탁혜숙(74)씨가 이식 환자를 대표해 이렇게 말했다. 탁씨는 1993년 신장을 이식받은 후 재이식을 받았다.
이날 행사의 주제는 ‘함께 한 30년, 다시 쓰는 생명의 이야기’이다. 80명은 이식한 지 30년이 넘었고, 30명은 30년이 덜 지났다.
탁씨는 "신장이식에다 심장·백내장·무릎관절 수술을 받았다. 이 과정을 겪으면서 받아드리기 힘든 이 병을 어떻게 극복해 나갈 것인가, 이게 거부할 수 없는 미션이라는 걸 알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병에만 너무 찌들어 있지 말고, 자신이 숨을 쉴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만들어 보길 강력히 권장한다"고 말했다.
서울대병원은 1969년 신장 이식을 시작했다. 이어 88년 간, 94년 심장, 96년 폐 이식을 개시했다. 올해 국내 최초로 로봇을 활용한 폐 이식에 성공했고, 아시아 최초로 단일공(몸에 뚫는 구멍이 한 개) 로봇 생체 신장이식 수술을 시행했다.
그동안 신장 이식 4000건, 간 2980건, 심장 278건, 폐 224건, 췌장 72건을 시행했다. 민상일 서울대병원 장기이식센터장은 "이식한 지 30년 넘은 환자들을 보고 '나도 저렇게 살 수 있다'는 희망을 주기 위해 이번 행사를 마련했다"며 "본인이 잘 관리하는 게 장기 생존 요인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고 말했다.
서울대병원에서 이식받고 30년 넘게 생존하고 있는 환자는 112명이다. 이들을 조사했더니 면역억제제를 잘 복용하고 규칙적으로 운동하며 스트레스를 잘 관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일상의 기쁨을 잊지 않는 긍정적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이날 참석한 환자 중 이식 기간이 가장 긴 환자는 양점숙(76·시조시인)씨다. 1981년 32세에 임신 중독 때문에 신장이 망가졌고, 12살 아래 동생 양귀순씨의 신장을 이식받았다. 당시만 해도 혈액형이 같아야 이식할 수 있었는데, 양씨의 동생 6명 중 귀순씨가 맞았다. 동생이 큰 언니에게 선뜻 기증 의사를 밝혔다. 이날 행사에 양씨 자매가 건강한 모습으로 참석했다.
양점숙씨는 44년 전 이식 받기 전 삶을 정리하려 했다. 옷·신발 등을 나눠줬다. 딱 하나 걸렸다고 한다. 아이였다. 아이를 생각하니 망설여졌다. 동생의 신장 기증을 받을까 말까 무척 고민했다. 이식 수술 후 양씨와 동생 귀순씨 둘 다 신장에 탈이 난 적이 없다.
양씨는 "요즘도 이식하면 5년을 못 넘긴다는 말에 현혹되는 사람이 있는데, 잘 관리하면 전혀 문제가 없다"고 말한다. 서울대병원 의료진이 헌신적으로 보살펴 준 데 대해 항상 감사하게 여긴다고 한다.
민상일 센터장은 "투석하면 10년 후 50~60%가 살지만 신장 이식하면 90% 넘게 산다. 다만 이식한 후 면역억제제 때문에 암·심혈관질환 발생률이 올라갈 수 있다"며 "이식 후 운동을 열심히 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