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고채 시장 불안이 좀처럼 가시지 않고 있다. 17일 국고채 금리가 소폭 내리긴 했지만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했다. 국내외 기준금리 인하 기대감이 옅어지고, 주요 국가의 재정 불안으로 채권시장 변동성이 커지면서다. 국채 금리에 연동된 국내 은행권 대출금리도 덩달아 상승하면서 가계·기업의 이자 부담이 커지고 있다.
17일 금융투자협회 채권정보센터에 따르면, 이날 3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연 2.914%로 마감했다. 연중 최고치였던 전 거래일(연 2.944%)보다 소폭 떨어졌지만(국채 가격은 상승) 여전히 ‘빅 피겨’(시장에서 주목하는 주요 숫자)인 3%를 목전에 둔 수치다. 이날 국고채 10년물 금리도 연 3.301%로, 일일 종가 기준 올해 두 번째로 높았다.
최근 국고채 금리 상승 폭이 가팔랐다. 국고채 3년물 금리는 지난 5월 7일 연중 최저치(연 2.253%)를 찍은 뒤, 같은 달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 이후 상승세를 탔다. 국고채 3년물 금리는 통화정책에 대한 시장의 전망을 보통 반영하기 때문에 ‘지표금리’로 꼽힌다. 기준금리가 인하된 뒤 추가로 내려갈 가능성이 작다고 시장은 판단한 것이다. 이후 3년물 국고채 금리는 지난달 연 2.7%대에 이어 이달 2.9%대를 돌파했다. 국고채 10년물 금리도 4월 이후 꾸준히 올라 지난달 말 3%대에 진입했다.
최근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미 기준 금리 인하에 신중한 입장을 내비친 것도 채권시장에 영향을 줬다. 지난 14일(현지시간) 로리 로건 댈러스 Fed 총재는 “다음 달 물가가 예상보다 빠르게 떨어진다는 설득력 있는 증거가 있거나 고용시장이 눈에 띄게 악화하지 않는 이상 금리 인하를 지지하긴 어렵다”고 발언했다. 이후 전 세계 채권금리의 ‘벤치마크’(기준)로 여겨지는 10년 만기 미국 국채 금리는 연 4.148%까지 올랐다. 통화 정책에 민감한 미 국채 2년물 금리도 상승하며 같은 날 3.884%로 마감했다.
유럽 주요국의 재정 적자와 신용리스크 우려 등으로 불확실성이 커진 점도 국내 채권 금리가 상승한 주요인 중 하나다. 주요국 재정 상황이 불안정해지면 한국도 기업 자금 조달 비용 등이 올라 금융 불안이 커질 수밖에 없다. 영국에선 지난주 레이철 리브스 재무장관이 소득세 인상을 철회해 재정 우려가 다시 고개를 들며 주요 장기물 국채 금리는 0.015%포인트 안팎 급등했다. 프랑스도 부채 압박에 국제신용평가사가 평가한 신용등급이 연이어 하락했다.
문제는 국채 금리가 은행채와 금융권 대출금리에 연쇄적으로 영향을 준다는 점이다. 이날 기준 코픽스(COFIX·자금조달비용지수)는 연 2.57%로, 국고채 3년물 금리랑 0.4%포인트 가까이 차이가 났다. 앞으로 시장 금리가 더 상승할 여지가 있다는 해석이다. 국채 금리가 상승하면 가계·기업의 이자 부담도 높아질 수밖에 없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 14일 은행채 5년물 금리는 지난달 말 대비 0.279%포인트 상승해 3.399%까지 치솟았다. 같은 날 기준 4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의 주택담보대출 5년 주기형 최고 금리도 2년 만에 처음으로 6%를 돌파했다.
새 정부의 확장재정 기조로 올해 국고채 발행량이 급증할 것이란 전망도 우려를 키운다. 한국투자증권에 따르면 올해 국고채 총 발행량은 230조원, 내년도 국고채 발행 한도도 232조원에 달한다. 국채 공급이 증가하면 가격 하락으로 이어져 수익률(금리)은 상승할 수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재정 지출이 1%포인트 늘 때마다 10년물 국채 금리가 0.2~0.3%포인트 상승하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관심은 오는 27일 열리는 금융통화위원회에 쏠린다. 금융권 관계자는 “달러당 원화값 변동성과 부동산 시장 과열 우려 등으로 기준금리 인하 기대는 후퇴했지만 이미 금리 동결 등 가능성이 선반영돼 국채 금리 상승 폭이 크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