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 사태와 관련, 18개 지검장을 대표해 경위 설명 요구 입장문을 냈던 박재억(사법연수원 29기) 수원지검장에 이어 송강 광주고검장(29기)이 17일 사의를 표명했다. 법무부가 항소 포기 결정에 반발하면서 집단행동을 한 검사장 전원에 대한 평검사 인사 전보 검토하고 여당이 검사징계법 개정안(검사 파면법) 등 강경책을 펼치는 가운데 줄사표가 이어질지 주목된다.
박 지검장은 이날 대검찰청과 법무부에 사의를 표명했다. 주변에서 만류했지만 조직 안정 등을 고려해 심사숙고 끝에 결단한 것으로 전해졌다. 노만석 전 검찰총장 권한대행에게 비공식적으로 항소 포기 결정 관련 우려를 전달했던 송 고검장도 사의를 전했다.
박 지검장은 지난 10일 검사장 18명을 대표해 검찰 내부망 이프로스에 ‘검찰총장 권한대행께 추가 설명을 요청드립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이들은 “노만석 검찰총장 직무대행이 밝힌 입장은 항소 포기의 구체적 경위와 법리적 이유가 전혀 포함돼 있지 않아 납득이 되지 않는다”며 “일선 검찰청의 공소 유지 업무를 책임지고 있는 검사장들은 검찰총장 직무대행께 항소 포기 지시에 이른 경위와 법리적 근거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다시 한번 요청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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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부 “사실관계 조사” 착수
법무부는 항소 포기 사태 관련해 집단 반발에 참여한 검사들에 대한 사실관계 조사에 착수했다. 법무부 관계자는 검사장 인사 조치 착수 여부에 대해 “구체적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있는 단계”라며 “(대상을) 제한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법무부는 인사 조치, 징계, 감찰 등 선택지를 면밀히 검토하고 있다. 조사 대상은 공동명의의 입장문을 낸 18개 지검장뿐만 아니라 집단반발 행위를 했다고 판단되는 검사다. 노 전 대행을 찾아가 사퇴를 촉구한 대검 부장단(검사장), 연구관(평검사)들도 대상이다.
검사 인사 조치는 법무부 장관에게 인사권이 있는 만큼 장관 전결로도 가능하다. 검찰청법상 검사 직급은 검찰총장과 검사 두 종류로 나뉜다는 이유로 법무부는 검사장의 평검사 인사는 ’강등’이 아니라 ‘보직 이동’이라고 설명한다. 다만 인사 조치의 근거가 되는 위법 행위가 명백히 근거로 뒷받침돼야 한다. 법무부가 평검사·중간간부·고위간부 인사를 나눠서 해왔고, 승진 후 통상적으로 이를 역행하는 전례는 없었다는 점 등에서 검찰 내부에서 보직 이동은 징계로 인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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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명'에 해당하는지 의견 갈려
법무부는 이번 집단반발이 공무원법 위반, 공무상 비밀누설 등에 해당하는지 검토할 예정이다. 국가공무원법 66조(집단 행위의 금지)는 공무원은 노동운동이나 그 밖에 공무 외의 일을 위한 집단행위를 해서는 안된다고 규정한다. 여권에서는 상부의 지시에 반발을 한 것이 ‘항명’에 해당한다고 본다. 또 검사장들이 자신의 공무가 아닌 타청의 업무에 관여한 것은 ‘공무 외’ 행위이고 공동명의의 입장을 낸 것은 집단행위라고 규정할 수 있는 ‘연판장’에 해당한다고 판단한다. 법조계에서는 “상관의 거취를 결정하고 압박하는 게 항명”이라는 의견도 있다.
반면 ‘항명’이라고 규정할 명령이 있지 않았고, 중요 사건 항소 사안은 검사장 공무에 해당한다는 반발도 나온다.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국가공무원법상의 ‘공무 이외의 일을 위한 집단적 행위’는 ‘공익에 반하는 목적을 위하여 직무전념의무를 해태하는 등의 영향을 가져오는 집단적 행위’라고 축소 해석하여야 한다고 규정한다. 무엇보다 부당한 지휘에 대한 집단 반발 행위는 위법일 수 없다는 의견도 있다. 차진아 고려대 로스쿨 교수는 “헌법재판소 판례에서도 전교조가 국가의 교육 정책에 반대하는 집회를 한 사건에서 집단행위 금지 규정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며 “수사 및 공소유지 전문가로서 의견 개진 권한과 권리가 있다”고 말했다.
검찰 내부에서는 집단반발의 위법성을 검토하기 위해서는 항소 포기 의사결정 과정부터 명확히 규명돼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법무부 외압 의혹을 밝히고, 직권남용 여지가 있는지도 따져봐야 집단반발의 적절성에 대해 판단할 수 있다는 것이다. 수도권 간부급 검사는 “윗선 지시라면 상명하복하는 검사들을 비판했던 것이 민주당이었는데 ‘내 편이 누구냐’에 따라 판단이 달라진 셈”이라며 “부당한 지시에 항명했다는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은 잘 한 것이고 검사들은 잘못한 게 되는 것이냐”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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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호 “고민 중”…구자현 ‘침묵’
법무부가 사실관계 조사를 통해 실제 인사 조치 절차를 밟을지 주목된다. 현직 지검장을 맡고 있는 검사장들에 대한 일괄 평검사 강등의 경우 검찰 인사 관련 규정 등 하위법령도 고려해야 한다. 법무부 관계자는 18개 지검장의 공백 상황 가능성에 대해 “아무것도 결정한 게 없다”면서도 “그런 것까지 다 고민해서 결정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2007년 3월 권태호 전 법무연수원 기획부장(검사장급)이 로비 사건에 연루돼 평검사로 강등된 전례는 있다. 징계의 경우 지난 6월 검사징계법 개정안 통과로 법무부 장관의 검사 징계 청구도 가능해졌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이날 정부과천청사로 출근하면서 취재진을 만나 ‘검사장 18명의 징계를 검토 중인가’라는 질문에 “가장 좋은 방법을 고민 중”이라고 밝혔다. 정 장관은 “가장 중요한 건 법무나 검찰이 안정되는 것”이라며 "특별히 그런(내부 반발) 움직임은 없는 거로 안다”고 말했다. 이날 처음 대검찰청으로 출근한 구자현 검찰총장 권한대행(대검 차장)은 검사장 평검사 전보 추진 관련 질문에 아무 대답을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