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깊어지니 나무들은 일제히 이파리들을 땅에 떨어뜨렸다. 산길을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온 산에 다양한 모양의 낙엽들이 오복소복하다. 제자와 둘이서 경계가 모호해진 숲길을 발밤발밤 걷는데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어찌나 경쾌한지…. 문득 운문선사의 체로금풍(體露金風)이라는 선어(禪語)가 떠오른다. 제자가 스승의 역량을 시험하는 광경이다. 얼핏 쓸쓸한 만추의 정경에 빗댄 고약한 질문처럼 보이지만 번뇌망상을 나뭇잎에 비유해 던진 멋진 법거량이다. 이에 대한 스승의 답은 또 얼마나 대단한가. ‘추풍에 불법의 전체가 온전히 드러났다’는 체로금풍 선어는 청풍거래(淸風去來)의 일할(一喝)이 아닌가. 마른 나뭇가지 사이로 불어오는 청량한 바람과 저만치 보이는 산등성이와 언뜻언뜻 보이는 푸른 하늘은 덤이다.
잎 떨구면 나무 본체 드러나듯
성장과 치유의 힘, 내 안에 있어
본래 마음 찾는 명상 실천해야
멋진 질문으로도 그 경지가 상당하다는 것이 입증됐지만, 아마도 제자의 마음 한구석은 이른 봄부터 나뭇가지 끝에 머물렀을 것이다. 연초록 새싹을 보고, 연분홍빛의 꽃에 설렘이 있었을 것이고, 한여름에는 하늘을 가릴 정도로 건강한 푸른 잎들에 든든한 마음이 들고, 가을이면 알맹이 툭툭 틔우는 밤송이와 붉은빛 노란빛 물든 단풍에 온통 빼앗겼을 것이다. 그러다 그 나뭇잎마저 떨어지자 허망한 감정에 마음 둘 곳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일상의 우리의 삶도 그렇다. 재산이나 지위나 건강이나 이룬 만큼 허망해지는 것이다.
스승의 가르침은 ‘청정한 마음의 본질을 봐라! 뿌리와 단단한 기둥을 봐라. 뿌리와 기둥이 단단하다면 봄이 오면 다시 새잎 나고 꽃은 필 것이다’라는 것이다. 발밑에 떨어져 사각거리는 낙엽이 겨울을 나며 부토가 되어 숲을 성장시키듯, 스승의 체로금풍 한 마디는 마침내 제자를 상큼한 경지로 이끌 것이다.
『원각경』에 “금광석을 녹여 얻은 금은 녹임으로 생기는 것이 아니라, 금이 그 안에 있어서 마침내 녹여냄으로써 순수한 금덩어리를 얻는다”라고 하였다. 금은 본래부터 우리 안에 내재해 있는 순수한 본성이다. 금광석은 금과 잡다한 흙·돌이 뒤섞여 있는 상태이다. 우리의 본래 순수한 본성이 온갖 어리석음과 번뇌와 습관적인 생각과 감정에 뒤덮여 그 본모습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는 상태를 비유한다. 금이 본래부터 있으나 광석 그대로는 그 역할을 할 수가 없다. 반드시 녹이는 과정이 필요하다. 금광석을 녹여 금을 캐내듯, 수행을 통해 비로소 참사람이 완성된다. 수행은 없던 금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금을 덮고 있는 불순물(번뇌)을 제거하는 과정이다. 수행의 과정을 거쳐야만 그 찬란한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선가에도 학인을 지도하는 양의공수(良醫拱手)라는 방법이 있다. 명의(名醫)는 환자 스스로가 자신의 건강을 회복하도록 할 뿐 과잉 진료를 하지 않는다. 선사들도 제자가 스스로의 노력으로 깨치도록 주체적 자각만을 일깨울 뿐이다.
서울에서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분들로 구성된 한 모임이 1박 2일 일정으로 선명상을 하기 위해 산중을 찾아왔다. 그분들과 함께 숲길을 걷고, 차를 마시며 금광석에서 금을 제련하듯이 4단계의 순수한 본래의 마음을 찾는 선명상을 진행했다.
1단계는 ‘편안히 앉아 눈을 감는 과정’이다. 눈을 감고 지금 내 마음속에 무엇이 있는지를 관찰한다. 온갖 생각, 계획, 걱정, 판단이 떠오르고, 동시에 그 모든 것을 알아차리고 있는 순수한 의식이 있다. 이 둘은 뒤섞여 존재한다. 지금 이 순간, 이 모든 생각과 감정을 그저 ‘걱정이라는 감정이구나’ ‘판단이라는 생각이구나’라고 알아차린다.
2단계는 ‘집중된 알아차림’이다. 마치 돋보기로 햇볕을 모으듯 흩어진 의식을 호흡이라는 한곳으로 가져온다. 생각이나 감정이 떠오를 때마다 알아차리고, 호흡으로 마음을 챙긴다. 잡념이 일어나면 그대로 알아차리고 다시 호흡으로 돌아오는 것이 마음을 제련하는 과정이다.
3단계는 ‘불순물 흘려보내기’이다. 금광석에 강력한 열이 가해지면 흙과 돌은 녹아 흘러가고 순수한 금만 남듯이 호흡에 집중하면 온갖 생각과 감정들은 사라진다. 생각이 일어나면 ‘나’라고 동일시하지 않고 강물에 떠내려가는 찌꺼기처럼 그저 바라본다. 번뇌는 왔다가 사라지지만 그것을 지켜보는 순수한 의식은 항상 또렷하게 그 자리에 있다.
4단계는 ‘순수하게 빛나는 본래의 금에 머물기’이다. 이곳은 모든 불순물을 흘려보내고 생각이 쉰 자리, 아무런 문제가 없는 본래의 자리이다. 이 자리에서는 어떤 노력도 하지 않는다. 그저 존재하는 그 자체, 알아차리는 그 자체에 고요히 머문다. 평화롭고 명료한 나의 참모습을 확인하고 음미하는 과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