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참. 다가가려고 하면 매번 멀어져 가네.” 일전 저녁 모임에서 한 지인이 한 말이다. 멀어져 간다는 그 상대방은 이재명 대통령이다. 평소에 정치 이야기하는 걸 무척 싫어하고 지난 대선 때는 아예 투표도 안 했던 그였다. 하지만 경주 APEC의 성공적 개최와 미국과의 관세 협상을 잘 이끌어 보려고 애쓴 정부 인사들의 모습을 보면서 마음을 열고 이재명 정부를 성원하려고 했다는 것이다. 그러자 대장동 사건에 대한 이해할 수 없는 항소 포기와 검찰에 대한 더불어민주당의 겁박이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국민의 일상적 삶과 관련된 일도 아니고, 제대로 된 정치적 명분이 있는 것도 아닌 사건을 굳이 만들어서 그 지인처럼 이 대통령에게 다가서려는 이들을 내치고 있다. 한국갤럽 조사에서 APEC 이후 63%로까지 올랐던 이 대통령에 대한 긍정 평가는 59%로 떨어졌고, 그 지인과 같은 이들이 적지 않다면, 시간이 갈수록 지지율은 더 낮아질 공산이 크다.
이해하기 힘든 대장동 항소 포기
모처럼 마음 연 중도층에 불신감
의석 수와 민심을 혼동하면 위험
겸양과 공존의 정치를 회복할 때
사실 이 대통령이나 민주당에 대한 지지는 그렇게 견고하다고 볼 수는 없다. 비상계엄 선포라는 경쟁 상대의 명명백백한 귀책 사유가 있는 대선에서도 이 대통령의 득표율은 50% 넘지 못했다. 절반의 국민은 그런 엄중한 정치적 상황에서도 이재명 후보에 대한 지지를 유보하거나 반대하는 태도를 보였다. 국회를 주도해 온 민주당의 모습도 마찬가지다. 민주당은 걸핏하면 압도적 다수 의석의 힘, 다수결을 강조하지만, 사실 그들이 그 의석의 차이만큼 절대적인 지지를 받은 것은 아니다. 2022년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은 지역구에서 50.5%를 득표했지만, 의석은 63.4%인 161석을 얻었다. 반면, 국민의힘은 45.1%를 득표했고 의석은 35.4%인 90석을 얻었다. 두 정당 간 득표율의 차이는 5.4%p였지만, 의석 점유율의 차이는 28%p나 됐다. 서울만 놓고 보면 그 차이는 더욱 커진다. 두 정당 간 득표율의 차이는 5.9%p였지만, 의석수는 37석 대 11석으로 의석점유율의 차이가 무려 54.2%p에 달했다.
총선이나 대선에서 나타난 전체 유권자의 뜻은 어느 한쪽에 힘을 몰아주기보다 균형 있는 정치를 하라는 것이었지만, 한 표라도 더 얻으면 의석을 차지하는 현행 단순다수제 선거제도로 인해 의석수에서 큰 차이가 생겨난 것이다. 이처럼 현재 민주당의 우위는 득표율과 의석율 간의 불비례로 인해 생겨난 “제조된 다수(manufactured majority)”일 뿐이다.
실상이 이러한데 민주당이나 이재명 대통령이 절대적 권력을 위임받은 듯이 행동하는 것은, 국민의 뜻을 살피려고 하기보다는 여전히 윤석열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한 채 쪼그라든 야당만을 바라보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부동산 정책이나 대장동 항소 포기처럼 여당에 불리한 사건이 생겨도 야당의 지지율이 올라가지는 않고 있다. 당장은 만만해 보이지만 그래도 야당이 언제나 지금과 같은 모습대로 있지는 않을 것이고, 만약 야당이 현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새로운 대안세력을 통해서라도 불편한 민심은 표출되기 마련이다.
이제 곧 이재명 정부가 출범한 지 6개월이 된다. 이 대통령이나 민주당은 여전히 전임 정부의 일, 이른바 ‘내란청산’에 집중하고 있지만,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국민의 평가 대상은 이재명 정부가 될 것이다. 이재명 정부가 출범했을 때 국민이 가장 기대했던 시대적 과제는 분열된 사회를 치유하고 민주주의를 회복하는 것이었다. 취임사에서 이 대통령은 ‘K민주주의’를 말하고 ‘분열의 정치를 끝낸 대통령’이 되겠다고 말했지만, 지난 6개월 동안 갈등과 분열이 완화되었다거나 민주주의가 회복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다수 의석을 내세운 여당의 일방주의로 인해 정치는 실종되었고, 정파를 둘러싼 갈등은 오히려 고조되었다.
이 대통령은 한국의 민주주의 회복을 자랑스럽게 말하지만, 사법부에 대한 압박으로 민주주의의 핵심 원리인 견제와 균형의 시스템은 도전받고 있고, 상대편을 정당한 경쟁자로 인정하는 상호 관용의 모습도 찾아보기 어렵다. 정권교체를 통해 민주당이 집권했다고 해서 민주주의가 복원되는 것이 아니라, 민주적 가치와 원리가 제대로 구현되어야 민주주의가 회복되는 것이다.
배를 물 위에 띄운 바다의 물결은 언제나 잔잔하게만 있지 않다. 커다란 배가 안정적으로 순항하는 것 같아도 조심하고 겸손하지 않으면 거대한 바다의 물결을 이겨낼 수 없다. 야당이 이렇게 지리멸렬한 상태인데도, 서울을 비롯한 여러 곳에서 내년 지방선거 결과를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면 해수면 아래에서는 이미 요란한 움직임이 시작되었을 수도 있다. 어느 정부나 첫 6개월은 통치 경험의 부족과 과도한 자신감으로 인해 시행착오를 겪는 경우가 많다. 그간의 국정운영 방식에 대한 반추를 통해 겸양과 공존의 정치를 회복해야 한다. 다가서려는 이들조차 오만함으로 내치는 그런 정치를 하지 말라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