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이인환 기자] 세계 여자 단식 배드민턴 판도가 다시 움직이고 있다. 한국의 안세영(23·삼성생명)이 압도적인 성적과 존재감으로 1강 구도를 굳힌 사이, 중국의 천위페이(세계랭킹 5위)에 대한 기대가 커지고 있다.
중국 매체 넷이즈는 18일(한국시간) 중국 전국체육대회 여자 단식에서 고전 끝 승리를 이어가고 있는 천위페이에 대해 “마치 국제 대회의 안세영처럼 사방에서 포위당한 상태”라고 보도했다.
중국이 사실상 ‘안세영의 유일한 대항마’로 점찍은 천위페이가 내부 강자들을 상대로 연이어 체력·정신력을 소모하는 소모전을 치르고 있다는 분석하면서 그에 대한 높은 기대를 보여줬다.
안세영은 오는 18일 개막하는 세계배드민턴연맹(BWF) 월드투어 호주 오픈(슈퍼 500)에 출전한다. 그는 체력 안배를 이유로 일본에서 열리고 있는 구마모토 마스터스(슈퍼 500)에 불참한 뒤 막바지 담금질 중이다.
대회 규모만 놓고 보면 슈퍼 1000·750보다는 하위 단계다. 하지만 12월 중국에서 펼쳐질 '왕중왕전' 격 월드투어 파이널을 앞두고 마지막으로 서로의 실력을 가늠해 볼 국제 대회다.
특히 안세영에겐 올해 10번째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릴 기회다. 그는 2025년에만 말레이시아 오픈(슈퍼 1000)을 시작으로 인도 오픈(슈퍼 750), 오를레앙 마스터스(슈퍼 300), 전영 오픈(슈퍼 1000), 인도네시아 오픈(슈퍼 1000), 일본 오픈(슈퍼 750), 중국 마스터스(슈퍼 750), 덴마크 오픈(슈퍼 750), 프랑스 오픈(슈퍼 750)에서 우승하며 9관왕에 올랐다.
이미 2023년 자신이 세웠던 단일 시즌 여자 선수 최다 우승 기록과 타이를 이룬 안세영. 만약 그가 호주 오픈과 월드투어 파이널에서도 정상에 오른다면 모모타 겐토(일본·은퇴)가 2019년 남자 단식에서 작성한 단일 시즌 11회 우승 기록까지 따라잡게 된다.
새 역사를 꿈꾸는 안세영에게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호주 오픈을 앞두고 경쟁자들이 줄줄이 기권을 선언한 것. BWF에 따르면 일본 배드민턴을 대표하는 야마구치 아카네(세계 3위)와 올림픽 메달리스트 푸살라 신두(인도·세계 13위), 라여지 아민(싱가포르·세계 14위) 등이 기권 의사를 밝혔다.
여기에 중국 선수들도 대거 불참한다. 랭킹 2위 왕즈이와 한웨(세계 4위), 천위페이(세계 5위) 모두 중국 전국 체육대회에 온 힘을 쏟기 위해 모두 호주 오픈에 나서지 않기로 결정했다. 특히 천위페이는 안세영과 통산 전적 14승 14패를 기록 중인 최대 라이벌이다.
자연스레 모두가 안세영의 우승을 점칠 수밖에 없다. 그는 올 시즌 출전한 국제 대회 13개에서 9개를 우승했고, 시즌 63승 4패로 90%라는 무시무시한 승률을 자랑하고 있다. 이는 2023년(89.5%)과 2024년(86.5%)의 자신도 훌쩍 넘어서는 기록.
[사진]OSEN DB.
사실 안세영은 벌써 월드투어 파이널 우승까지 유력하다는 평가다. 한 국가당 최대 두 명으로 출전이 제한되면서 천위페이의 출전이 불발됐기 때문.
대만 '타이 사운즈'는 "월드투어 파이널 두 번째 타이틀을 노리는 안세영의 유일한 숙적 천위페이가 컷오프로 탈락했다. 상대의 위협 없이 안세영의 무난한 우승이 예상된다"라며 안세영의 정상 등극을 예상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중국 배드민턴계의 여론은 중국 여자 단식 간판으로 거론되는 천위페이를 향해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일부 팬들은 다음 시즌 대비를 위해 천위페이에게 “안세영처럼 강자들을 하나씩 꺾어라”고 압박하기도 한다.
실제로 천위페이의 최근 대진은 그만큼 만만하지 않다. 그는 이번 중국 체육 대전에서 허빙자오, 8강에 장이만, 준결승엔 한웨르를 모두 꺾었다.
여기에 결승에 오를 경우 왕즈이와 맞붙을 가능성까지 거론된다. 결국 천위페이는 중국국가대표팀의 여자단식 주전급 선수들과 모두 맞서야 하는 전략적 시험대에 오른 셈이다. 진행중인 중국 전국 체육대전 배드민턴 여자 단식에서는 왕즈이, 한웨, 가오팡지에가 비교적 수월하게 승리를 챙기고 있는 반면, 천위페이는 유독 치열한 3세트 접전을 이어가고 있다.
이 같은 구도에 중국 내 팬들 사이에서는 천위페이가 마치 국제 대회의 안세영처럼 중국 에이스들에게 포위당했다는 표현까지 나온다. 즉 중국이 안세영을 넘어설 유일한 카드로 바라보던 천위페이에 대한 고 평가. 천위페이는 이 압박 속에서도 결정적인 순간마다 자신의 능력을 보여줬다. 올림픽 챔피언이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위급한 상황에서도 중심을 잃지 않고 경기를 끌어갔다.
안세영의 존재는 이 구도에서 절대적이다. 그는 최근 시즌에 9관왕을 달성하며 승률 90%대를 기록했고, 세계랭킹 1위 자리를 굳건히 유지하고 있다. 중국 언론조차 “이제 적수가 없다”고 평가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천위페이는 안세영을 넘어설 마지막 희망’으로 중국 내에 자리잡았다고 봐야한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다. 내부적으로도 “결승까지 가려면 왕즈이·한웨도 넘어서야 한다”는 말이 나올 만큼 그의 앞에는 만만치 않은 장애가 줄줄이 놓여 있다.
게다가 최근 여러 대회를 통해 안세영이 보여준 압도적인 실력은 천위페이에게 또 다른 부담으로 작용한다. 중국 매체들은 “천위페이가 있어야만 중국 여자단식이 살아난다”고 했지만, 그마저도 이번 대회에서는 초반부터 3세트 접전을 이어가며 안정적 흐름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넷이즈는 천위페이에 대해서 안세영과 비교하면서 마지막 희망을 걸고 있는 것. 중국에서는 현 시점에서 천위페이가 안세영의 유일한 대항마로 인식되고 있다.
전국 체전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천위페이의 다음 만남은 그의 현재 위치를 명확히 보여줄 마지막 포인트가 될 것이다. 만약 여기서 무너지면 ‘적수 없는 안세영 시대’가 더욱 공고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