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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폭언에 중독된 정청래·장동혁

중앙일보

2025.11.18 07:06 2025.11.18 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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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영익 정치부 기자
지난 1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는 ‘대장동 항소 포기 규탄집회’에서 “이재명이 대통령이 돼서 대한민국 전체가 범죄자들의 놀이터·저수지가 돼 가고 있다. 7800억을 범죄자들 뱃속에 집어넣고, 1호기를 타고 해외로 먹튀하겠다고 한다”고 말했다. “대장동 일당은 두목 믿고 회칼·쇠파이프 들고 날뛰는 조폭 같다. 대통령이라는 뒷배가 없다면 불가능했다”고도 했다. 해외 순방에 나선 정부 수반을 향해 최소한의 존중인 ‘대통령’ 호칭도 하지 않은 채 ‘조폭의 뒷배’ ‘먹튀’ 같은 언어폭력 수준의 인신공격이 난무했다.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상대방의 존재를 부정하며 거친 말의 역사를 새로 쓰는 중이다. 정 대표는 지난 13일 의원총회에서 “국민의힘은 10번이고 100번이고 정당 해산 감이다. 국민의힘 의원들도 의원직을 박탈당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그 전날인 12일에도 “정당 해산 사유가 마일리지 쌓이듯 차곡차곡 적립되고 있다”고 말하는 등 수시로 국민의힘 해산을 거론 중이다. 지난 9월엔 국민의힘의 장외 투쟁 공세에 “입도 귀도 더러워졌다. 어제 귀를 씻었다. 국민의힘 최악의, 최약체 지도부 땡큐”라며 조롱성 발언도 했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가운데)가 17일 ‘대장동 항소포기 외압 진상규명 국정조사 촉구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스1]
거대 양당 대표가 폭언 수준의 독설을 경쟁적으로 내뱉는 건 이들이 강성 지지층의 여론에 누구보다 민감하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각 진영의 강성 지지층의 기세에 올라타 전당대회 대표 경선에서 승리했다. 이러한 경험 탓인지 ‘중도 확장은 허상’이라는 인식도 공유하고 있다. “딴지일보가 민심의 척도”라는 정 대표의 비공개 강연 발언이 대표적이다. 장 대표도 최근 사석에서 “중도층 공략한다고 이도 저도 아닌 행보를 하면, 있던 지지층도 떨어져 나간다”는 취지로 말했다고 한다.

정치인의 독설 논란은 과거에도 있었다. 다만 그때 거대 정당의 리더들은 어느 지점에서 브레이크를 밟아야 하는지 최소한의 감각이 있었다. 2005년 당시 전여옥 한나라당 대변인이 “다음 대통령은 학력 콤플렉스 없는 대졸자가 적절하다”며 상고 출신인 노무현 대통령을 겨냥한 ‘대졸 대통령론’ 파문을 일으켰을 때,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는 “대표로서 대신 사과한다”며 정리에 나섰다. 2015년 당시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는 “비판하더라도 정제된 표현으로 해야 한다”고 당에 경고했다.

과거와 달리 요즘 한국 정치는 밑바닥이 어딘지 찾기 힘들 정도다. 당원 주권 강화라는 그럴듯한 포장지로 감쌌지만 결국 본질은 맹목적 ‘팬덤 정치’요, 팬덤만 바라보는 부화뇌동이다. 그런데 그 팬덤, 영원할까? ‘선거 승리’ 효능감을 주지 못하는 대표는 팬덤으로부터 매력이 급감한다는 걸 정청래·장동혁 대표도 모르지 않을 것이다.





한영익([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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