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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2차 베이비부머 자녀세대의 불평등

중앙일보

2025.11.18 07:26 2025.11.18 1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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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영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
필자는 2차 베이비부머(1964~1974년생)로 불리는 세대처럼 풍부한 기회를 누리지는 못했지만, 사회경제적으로는 부모의 직접적인 지원 없이 스스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마지막 세대라고 생각한다.

우리 세대가 사회에 진입하던 시기는 중국의 WTO 가입 이후 한국 경제가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까지 연평균 5% 내외 성장세를 유지하며 구조적 상승 국면에 있었던 시기였다. 또한 2015년 상승 사이클이 본격화하기 전에 직장생활을 통해 모아놓은 돈으로 서울에서 내 집 마련의 기회를 잡을 수 있는 세대이기도 하다. 이러한 행운은 개인의 노력보다 온전히 유리한 시기에 태어났기 때문이란 것을 잊지 않고 있다.

부모 세대보다 좁아진 기회의 문
집안 배경이 인생의 경로를 좌우
교육·노동·주거 출발선에서 격차
계층 사다리 복원이 국가적 과제
지난 16일 국가데이터처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구직 활동을 6개월 이상 했는데도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장기실업자는 지난달 기준 11만9천명이다. 특히 대학교 졸업 이상 학력을 지난 20~30대 중 장기실업자는 3만5000명으로 집계됐다. 연합뉴스

미국의 밀레니얼 세대(1981~96년)는 성장기에 인터넷과 PC를 경험했다는 사회문화적 특성도 있지만, 베이비부머(1946~64년)의 자녀층이라는 인구학적 특성을 갖는다. 따라서 밀레니얼 세대의 기준을 한국에 단순 적용하는 것은 한계가 존재하는데, 가장 중요한 이유는 한국의 베이비부머가 미국보다 9년 늦게 시작되었고 1차(1955~63년)와 2차로 분절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한국에서는 1980년대 초에서 1990년대 중반생을 일괄적으로 ‘밀레니얼’로 묶기보다, 오버랩이 존재하지만 1차 베이비부머 자녀세대와 2차 베이비부머의 자녀 세대를 독립된 코호트로 이해하는 것이 해당 세대가 직면한 사회경제적 구조를 파악하는 데 더 적합하다.

특히 2차 베이비부머의 자녀인 1990년생 전후 세대는 교육·취업·주거·자산 축적의 모든 영역에서 부모에 대한 경제력 의존도가 절대적으로 높아지는 분기점에 위치한다. 이 세대는 외환위기 직후 구조조정이 마무리되고 경제 회복이 시작된 시기에 초·중등 교육을 받았는데, 바로 그 시기 사교육비의 급격한 증가와 계층 간 교육투자 격차의 구조적 확대가 본격화했다. 내신·비교과·자기소개서 등 다층적 평가 요소가 도입되며 스펙 관리 및 컨설팅 시장이 고액화됐고, 부모의 정보력과 경제력에 따라 대입 준비 수준이 질적으로 나뉘는 비대칭적 교육 환경이 형성되었다.

이 세대가 대학에 입학한 2009년은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파가 노동시장에 전이되기 시작한 시점이기도 하다. 평균 졸업 기간을 6년으로 계산하면 이들은 2015년경 노동시장에 진입하게 된다. 2015년은 한국 사회에서 ‘금수저·흙수저’ ‘수저 계급론’ ‘N포 세대’ ‘청년 고용절벽’ 등이 처음으로 공론장에서 폭발적으로 등장한 상징적인 해이다. 2015년에 이러한 사회적 진단이 분출한 데에는 두 가지 구조적 요인이 있었다.

첫째, 청년 고용 충격이다. 2015년 청년실업률(15~29세)은 9.2%로 역대 최고 수준을 기록했고, 취준생·구직단념자를 포함한 실질 실업률은 30%를 넘어섰다는 분석도 있다. 고용의 탈산업화와 고착화된 노동시장 이중구조의 원인과 함께 정년을 60세로 연장한 제도적 변화 역시 주요한 원인으로 지적된다. 정년을 60세로 연장하는 법안이 2013년 통과된 이후 대기업·공공부문은 2016년 의무시행을 앞두고 수년간 신규채용을 선제적으로 축소한 것이 청년층의 고용절벽을 만드는 데 기여했다는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3일 수석보좌관회의에에서 발언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둘째, 집값이 2014년에 바닥을 다지고 상승 전환하면서 2015년에는 거래량과 가격이 전년 대비 대폭 증가하였다. 또한 2013년까지 주택매매보다 전세 선호 현상이 강했기 때문에 높아진 전세가율을 이용한 갭투자가 급속히 확산했다. 서울 아파트의 평균 매매가는 2015년 7월 5억835만원에서 올해 7월, 10년 만에 2.77배로 뛰어 14억원을 넘어섰다.

더 근본적으로, 우리 청년세대는 유럽형·미국형·신흥국형으로 구분되는 전 세계 청년위기를 동시에 경험하고 있다. 첫째, 연공서열 기반의 경직적 노동시장으로 인한 높은 청년실업률과 지속 불가능한 연금 부담이라는 유럽형 고령화 위기에 직면해있다. 프랑스가 대표적인 예다. 둘째, 대졸자 임금 프리미엄이 붕괴하는 동시에, AI가 질 좋은 청년 일자리를 대체하는 미국형 탈숙련화 기술충격에 노출되어 있다. 탈숙련화(deskilling)는 인공지능의 도입으로 인해 전문적·숙련적 업무 능력이 점차 필요 없어지는 현상을 의미한다. 셋째, 부모의 권력·재력·인맥이 자녀의 교육·취업 기회를 결정짓는 ‘네포 베이비(nepo baby)’ 구조가 9월 네팔의 청년시위에서 드러났듯, 우리 청년세대는 신흥국형 세대 내 불평등에 놓여있다.

따라서 지금 우리 사회가 가장 집중해야 할 정책 대상은 부모세대의 도움을 기대하기 어려운 청년세대다. 규제·금융·공공·연금·교육·노동 등 6대 핵심 영역의 구조개혁이 지향해야 할 목표는 잠재성장률 제고뿐만 아니라, 청년들이 부모 배경과 무관하게 사회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는 구조를 복원하는 일이다. 이것이 조금 더 이른 시기에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유리한 기회를 누린 기성세대가 청년세대에게 져야 할 최소한의 책임이다.

박선영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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