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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펼쳐진 '이건희 컬렉션'…韓 국보급 전시, 세계인이 즐긴다 [outlook]

중앙일보

2025.11.18 12:01 2025.11.18 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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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스미스소니언 국립아시아미술관에서 개막한 이건희 회장 기증품 해외 순회전 ‘한국의 보물: 모으고, 아끼고, 나누다’를 안내하는 황선우 KF한국미술문화 담당 큐레이터. 맨 왼쪽은 체이스 로빈슨 관장. 김병기의 ‘산악’ 7폭 연작(맨 오른쪽 그림)부터 청자와 백자까지 한국의 고미술과 현대미술이 한데 어우러졌다. 사진 강임산 소장

한국의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 미국의 국립아시아미술관(National Museum of Asian Arts) 및 시카고미술관(The Art Institute of Chicago)이 공동 주최한 고(故) 이건희 회장 기증품 해외 순회전 ‘한국의 보물: 모으고, 아끼고, 나누다’ 첫 전시가 지난 15일(현지시간) 워싱턴에서 막을 올렸다. 미국 역사상 최장기간인 43일에 걸친 연방정부 셧다운 해제 직후 맞은 첫 주말, 스미스소니언 국립아시아미술관 앞에는 이미 ‘오픈 런’을 하려는 관람객들로 긴 줄이 늘어서 있었다. 체이스 로빈슨 관장이 문 앞에서 직접 관람객을 맞았고, 국보 '인왕제색도' 앞에서 키스 윌슨 아시아미술부장은 “인왕제색도는 한국의 모나리자”라고 부연하는 등 열띤 분위기였다.
국보 '인왕제색도' 앞에서 키스 윌슨 아시아미술부장(오른쪽)은 “이 그림은 한국의 모나리자”라고 부연했다. 사진 강임산 소장
첫 전시품은 19세기 책가도 병풍, 수집가의 취향을 드러내는 그림이다. 고 이병철 회장으로부터 이어진 삼성가 컬렉션의 깊이와 방대함을 상징한다. 전시 말미의 ‘에필로그’ 공간에는 책가도풍 전시 케이스가 배치되어 수미쌍관(首尾雙關)의 구도를 이루며, 삼성가 컬렉션이 지닌 시대적·장르적 폭넓음을 다시금 일깨워준다. 대를 이어 쌓아 올린 이 컬렉션이 이제 국민 모두의 유산이 되었고, 다시 국경을 넘어 세계 관람객과 만나는 장면은 또 하나의 아름다운 문화적 여정으로 남을 것이다.
책가도 도안으로 꾸민 전시장 입구. 전시 첫 작품도 책가도 병풍이었다. 사진 강임산 소장
이번 전시는 국립중앙박물관의 국보 7건과 보물 15건,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박수근·김환기·이응노 등 한국 근현대미술을 비롯해 총 330점이 한데 모인 대규모 전시다. 전시는 워싱턴을 시작으로 시카고미술관(2026년 3~7월)을 거쳐 영국박물관(2026년 9월~2027년 1월)으로 이어진다.
43일간 이어진 미국 연방정부 셧다운(일시적 업무 중지)에 따라 연기됐던 고 이건희 회장 기증품 국외순회전의 첫 번째 전시가 15일(현지시간) 개막했다. 미국 워싱턴 D.C.의 국립아시아미술관(NMAA) 전경. 사진 NMAA Colleen Dugan
한국미술의 해외 대규모 순회전시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한국전쟁의 참화가 채 아물기도 전인 1957~59년, ‘원조받던 나라’의 국보급 미술품들이 미국 8개 도시를 돌았고, 1961~62년에는 영국·네덜란드·프랑스·독일을 거치며 또 한 차례 순회전이 이어졌다. 이는 전쟁의 트라우마 속에서도 한국의 문화적 존재감을 국제사회에 알리고 인정받고자 하는 의지가 담긴 기획이었다. 이후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성공과 자신감을 토대로 1976~79년 일본·미국·유럽에서 열린 ‘한국미술 5천년전’은 한국미술을 서구에 체계적으로 소개한 첫 본격적 전시로 평가된다. 이러한 노력은 오늘날까지도 꾸준히 이어져 왔다.
'이건희 컬렉션' 워싱턴DC 전시 전경. 가운데 사자 모양 유물은 19세기 법고대. 불교 의식에서 사용하는 북(법고)를 올려놓는 대좌(받침대)다. 사진 NMAA Colleen Dugan
그러나 이번 전시는 그 모든 역사적 전례를 넘어서는, 한마디로 ‘차원이 다른 한국 미술 종합 선물세트’라 부를 만하다. 무엇보다 과거와 확연히 다른 한국에 대한 국제사회의 변화된 인식은 특별하다. 특히 한 개인의 열정으로 모인 컬렉션이 ‘국가 컬렉션’으로 승화된 뒤, 그 첫 해외 공개가 미국 수도 워싱턴에서 시작된다는 서사는 기존의 여느 해외전시와 비교할 수 없는 차별성을 갖는다. 더구나 그 장소가 다름 아닌, 거대 자본가 앤드루 멜론의 명품 컬렉션을 기반으로 설립된 미국 국립미술관과 마주한 공간이라는 점을 떠올리면, 이번 전시의 상징성과 의미는 더욱 깊어진다.
전시장 맨 처음에 나온 19세기 책가도 병풍. 사진 NMAA Colleen Dugan
그러나 특별전시실을 나오자 19세기 말 조선 외교관들의 기록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었다. 1888년 2월, 워싱턴의 한 박물관에서 조선 유물들을 마주한 주미조선공사 박정양은 “갖춰진 것이 그리 많지 않다. 대개 백성들의 견문을 넓히기 위해 모은 것들이나, 조성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일본박물관만 못하다”고 일기에 적었다. 8년 뒤 이곳을 다시 찾은 이범진 공사 또한 “금관조복, 의대, 기명과 가구까지 놓여 있고, 청(淸)국은 따로 국(局)을 두어 순사가 관리했다”며, 방대한 중국 컬렉션에 비해 조선 유물이 처한 초라한 현실을 완곡하게 표현했다.
전시장 마지막에도 책가도 모양 진열장에 실제 유물을 전시했다. 사진 NMAA Colleen Dugan
이번 전시가 특별전시실 두 개 층에 마련되었음에도 이 미술관의 중국·일본 상설전 규모에는 여전히 미치지 못한다. 교실 한 칸 정도 크기인 우리의 상설전시실은 말할 필요조차 없다. 140여 년 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높아진 한국문화의 위상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이어질 대규모 한국미술 해외 순회전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까? 한 수집가의 오랜 열정이 만들어낸 감동을 뒤로하고 전시실을 빠져나오면서, 복잡한 심사가 됐다.

강임산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미국사무소장
◇강임산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미국사무소장= 워싱턴 로건 서클에 위치한 주미 대한제국공사관을 운영하고 있다. 대한제국기 유일의 해외 공관으로 2012년 한국 정부가 사들여 보존 관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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